[스페셜1]
미술로 미리 보는 <음란서생> [1]
2006-01-04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아라비안나이트>는 성기를 묘사하는 단어만으로 몇 페이지를 채우고야 체위로 넘어가는 성(性)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 책에서 여인의 성기는 향기로운 허브고 거친 동물이며 천국의 문이기도 하지만, 문장이 은유의 일가를 이루었기에, 부끄러운 짓이라 욕하는 이가 없다. 그렇다면 수백년 전 조선의 선비는 어떠했을까. 음란서적을 제조하고 배포하는 <음란서생>의 황가의 말에 따르자면 “이쪽 관례가 제목은 점잖게 짓는 거라서…”라고 전해진다. 그 말은 <음란서생>의 점잖은 태도와도 통하지 않을까 싶다. 권세에 몸을 팔지 않는 꼿꼿한 사대부가 어쩌다 난잡한 소설에 혹하여 밤마다 자세를 연구하나, 그것이 가능한 자세인지 혹여 해보셨는지 물으면, 문득 화를 낸다. “우리 집안을 어찌 보고 그런 질문을 하시오.” 그러므로 <음란서생>은 그림 또한 점잖고 우아해야만 할 것이다. <반칙왕>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작가이기도 했던 김대우 감독은 이 영화가 “콘트라스트가 강한 누아르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화면은 심각하지만 그 내용은 코미디인” 영화를 원했던 그는 색감이 진한 검정과 적색을 기본으로 삼아 제목이 전하는 웃기는 느낌과 사뭇 다른 그림을 완성해가고 있다.

그 그림엔 어찌보면 평범한 기준 하나가 적용되었다. 김대우 감독과 조근현 미술감독은 조선시대 물건이 예쁘더라며 고증에 기반한 의상과 세트를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현대의 시선으로 다시 만든 모조품이 아니라 정말 그 시절 썼던 옛 물건을. 조선의 미(美)에 매혹되어 한옥답사동호회에 몸담기도 했던 조근현 미술감독은 “잘 지은 한옥에서 하룻밤 자고나면 몸이 개운해진다”며 엄격한 실용성을 추구하다보면 닿게 되는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음란서생>은 다만 조선일 뿐 몇 세기인지조차 애매한 영화이기는 하다. 그러나 김대우 감독은 “당쟁이 일어났고 가식이 자리를 잡은 시대”라면 조선 중기 이후가 아닐까 단서를 던진다. 당쟁과 가식은 <음란서생>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비겁하다고 욕을 먹어도 속세의 다툼엔 뜻을 두지 않던 선비 윤서(한석규)는 몇 문장 설핏 들여다본 음란서적을 잊지 못해 스스로 작가가 되고, 정적인 의금부 도사 광헌(이범수)에게 삽화를 청한다. 그리고 겹겹이 지어입은 가식의 옷이 하나씩 어깨 아래로 허리 아래로 벗겨져 떨어진다.

텃밭도 일구어낼 넓은 도포 자락으로 허위를 덮던 시대. <음란서생>의 미술은 그 시대를 재현하여 관객을 설득하고 드라마의 정조를 더하는, 꼭 필요한 그릇이 되고 있다. 게다가 그 그릇은 예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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