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월7일(토) 밤 11시30분
감옥과 관련된 영화들은 대개 어떤 닮은꼴을 취하곤 한다. 탈옥의 모티브를 응용하는 경우가 있고, 감옥이라는 폐쇄공간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일상을 그려내기도 한다. <그린 마일>은 어떤 견지에선, 감옥이라는 소재를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영화다. 여기에선 범죄와 단죄라는 과정에 초현실적 상황을 덧입힌다. 흥미롭게도, <그린 마일>을 만든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전작 <쇼생크 탈출>에서도 엇비슷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영화화한 적 있다. 노인이 된 폴 에지콤이 60년 전인 1935년 교도소 사형수 감방의 간수장을 지낼 때의 일을 회상한다. 어느 날 백인 쌍둥이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흑인 ‘코피’가 이송된다. 코피는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인물로서, 쌍둥이 자매를 살려보려고 하다가 범인으로 몰린 것이다. 폴이 하는 일은 사형수들을 감독하고 그들을 전기의자가 놓여 있는 사형집행장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폴은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린 마일’은 사형수가 감방에서 나와 사형집행실까지 가는 복도에 깔린 초록색 리놀륨을 가리키는 은어. 영화는 간수장인 폴 에지콤과 사형수인 코피,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다. 폴은 거구의 코피가 죄명과는 달리 어리숙하게 보일 정도로 순진한 인물이라는 점에 의아해한다. 코피는 폴을 괴롭히던 방광염을 낫게 하고, 교도소장 부인이 앓고 있는 뇌종양을 치료해주는 등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 여기서 알수 있듯 영화 <그린 마일>은 두 사람의 중심 캐릭터를 통해 삶과 죽음, 인종을 초월한 우정, 그리고 기발하고 초현실적 상상력에 관심을 보인다. 영화는 인간적 영역에서 벗어나 종교나 신화적 영역에 근접하는 인물이 겪는 고난의 과정을 빗대고 있기도 하다. 영화를 만든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혹은 간디와 같은 성인들을 불행한 죽음으로 이끌었을까? 마치 현자와 성인들은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매우 불행한 이들처럼 보이기도 한다”라며 영화를 설명한 적이 있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전작 <쇼생크 탈출>에서 그랬듯 논쟁적이거나 적극적인 문제제기의 영역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다. 휴머니즘, 그리고 프랭크 카프라를 자신의 영화적 아버지로 칭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다. <그린 마일> 역시 사형제도의 불합리함, 인종 갈등보다는 인본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영화는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에도 데이비드 모스, 게리 시니즈 등 연기파 조연들의 호연으로 인해 지루함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쇼생크 탈출>과 마찬가지로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화한 <그린 마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의 무게라는 것, 그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이외의 또 다른 세계에 대해 알려준다. 영화 속 ‘코피’의 순수한 표정과 말투는 기억에서 쉽게 털어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