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현장영화인 20인의 추천도서 [5]
2006-01-26
사진 : 씨네21 사진팀
정리 : 씨네21 취재팀

테크놀로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제기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 R. L. 러츠키 지음/ 김상민·윤원화 외 옮김/ 시공사 펴냄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는 모더니티의 시작부터 현대의 테크노-문화에 이르는 테크놀로지, 예술, 문화의 관계 변환을 고찰함으로써 ‘테크놀로지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책이다. <이론을 위한 전략-마르크스에서 마돈나까지>를 공동 편집했던 R. L. 러츠키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는 프리츠 랑의 영화와 옥타비아 버틀러의 과학소설, 토머스 에디슨의 발명품과 일본 아니메, 구성주의와 사이버스페이스를 전방위적으로 아우르며 새로운 하이테크네의 지형도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기영(달파란)/ 영화음악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가 넘쳐나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테크놀로지라는 단어 자체를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서기 2000년대는 지금의 2000년대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미래를 굳이 테크놀로지와 연관시키며 우리에게 그 많은 정보들을 던져주었던 것일까? 그건 어쩌면 단순히 흥미를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었을까? 이토록 많은 궁금증이 있었던 나에게 R. L. 러츠키의 <하이테크네-포스트휴먼 시대의 예술/디자인/테크놀로지>는 조금이나마 어떤 단서를 전해주었다.

영상 미학 세계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 허버트 제틀 지음/ 박덕춘, 정우근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강종익/ 특수효과

1973년에 초판이 발행된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은 1999년에 두 번째 번역본이 출판되었으며, 다시 2002년에 2판에 비해 새로운 장을 만들고 디지털 시대에 맞춰 새로운 개념들이 추가되어 재출판되었다. 물론 그 지나온 세월 동안 ‘영상’이라는 분야가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고 영상을 만드는 기술 또한 다양해졌지만, 이 책은 우리가 영상제작에 앞서 이해해야만 하는 기본적인 다섯 가지 미학적 요소(빛, 공간, 시간, 동작 그리고 음향)가 어떻게 상호조화를 이루며 텔레비전과 영화에 적용되는지에 관해서 여전히 잘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각 미학적 요소들의 세부적인 구성 요소들을 사진이나 일러스트, 그림 등을 예로 들며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처음 영상을 접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돋보인다.

<영상제작의 미학적 원리와 방법>은 보는 이가 가시적인 메시지의 이면에 존재하는 영상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영상미학의 원칙을 제시하고 다양한 텔레비전과 영화 장르를 경험하고 판단하게 해준다. 또한 이 책은 텔레비전, 컴퓨터, 그리고 영화 영상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하나의 사건(event)을 명료화하고 강조하며 해석하는 방법을 보는 이에게 제시해준다. 다시 말해 ‘사람의 지각작용을 조절하기 위해 어떤 미학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적용시키는가’ 하는 것을 이 책을 접한 이들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럴 때에는 이렇게 촬영해라’ 식의 단편적인 정보 전달이 아닌 좀더 체계적인 영상제작 기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다양한 영상 이론을 바탕으로 실질적이고 응용적인 바탕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영상제작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러 예시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빠르고 즐겁게 이론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음향과 영상과의 결합에 관한 여러 정보들은 영상과 소리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새삼 확인해준다.

어느 광기어린 영화인의 초상

<올리버 스톤1, 2> 제임스 리어단 지음/ 이순호 옮김/ 컬처라인21 펴냄

한동성/ 예고편 제작

<올리버 스톤>은 정확히 말하자면 <내추럴 본 킬러>의 올리버 스톤이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저자 제임스 리어단은 <올리버 스톤>을 쓰기 위해 3년여에 걸쳐 올리버 스톤과 그의 가족, 주변 사람들과 수많은 인터뷰를 했다. 증권브로커 미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 그가 겪는 문화적 혼란, 방황, 베트남 참전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이야기가 한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올리버 스톤>은 기존 감독들의 평전과는 달리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인간 올리버 스톤과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을 파헤친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구로사와 아키라를 비롯한 한 세대를 풍미한 감독들의 평전에는 대부분 상찬으로 가득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한 영화감독을 현미경처럼 해부하는 치밀함을 견지한다. 올리버 스톤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느낄 수 없는 영화를 그는 근본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느낌을 생생히 살리려는 그의 열망은 때때로 극단적이고 과도한 방법을 수반한다.

<스카페이스>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그는 실제로 코카인과 헤로인에 중독되어 많은 범죄자들과 어울리며 생생한 대사와 리얼한 상황을 얻어냈고 이를 여과없이 반영했다. 소재의 위험성 때문에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JFK> 제작 당시 에피소드를 읽는다면 그의 영화적 의지에 대해 존경심을 품게 될 것이다. 그의 논쟁적 작품들이 어떻게 발생했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예술적 광기와 동력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올리버 스톤>은 보여준다. 마이클 더글러스는 <올리버 스톤>의 추천사를 이렇게 적었다. “올리버는 할리우드를 감동시키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며 돈을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세상에 영향을 주려고 예술을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는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즉 그 자신의 악마를 정복하지 많으면, 광기를 이겨내지 않으면 그리고 격발적인 성향과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영화를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한국 영화인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술자리에서 “흔히 할리우드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이다. 나도 거기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쉽게 말하는 이들에게 <올리버 스톤>을 권하고 싶다. 한국에서도 못하는 일이라면 그곳에서는 더욱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올리버 스톤>을 읽어보면 실감할 것이다. 참고로 서점에서 <올리버 스톤>은 영화가 아닌 인문서적 인물 코너에서 만날 수 있다.

영화적인 사진이란?

<Philip-Lorca Di Corcia>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피터 갈라시/ Museum of Modern Art 펴냄

<A Story Book Life>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 Twin Palms Publishers 펴냄

임훈/ 현장스틸기사

영화의 스틸을 찍는 것이 사진을 하는 사람으로서 창의력(혹은 더 거창하게 예술성)을 발휘하는 데 제한적 작업이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같은 영화를 다른 사진가가 스틸을 찍는다면, 분명 서로 다른 결과물을 낼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의 스틸이더라도, 사진은 역시 피사체와의 교감이 중요하고, 상대(즉 극중 캐릭터)와 그의 인생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찍어내는 인물과 그의 인생은 물론 가상의 것이지만, 진짜인 것만 같은 순간을 마주할 때는 배우가 아닌 극중 그 인물을 만난 것만 같아서 가슴이 설렌다.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는 일반인을 모델로 ‘영화적’인 사진을 찍어온 작가로, 미리 선정된 일반인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임의로 거리를 지나는 행인들이 적절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할리우드> 연작 시리즈를 내놓았고, 나아가 세계 도시들의 거리 위에서 ‘거리 장면’(street scenes)들을 보여주었다. 영화의 스틸이 가상의 인물의 삶을 담는다면, 디 코르시아의 작품들은 거꾸로 현재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실제 삶을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들은 마치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누구나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그런 흔한 말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사진은 순간의 이미지이다. 좋은 사진은 대상의 그럴듯한 외형적 멋이 아니라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에 담긴 이야기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 코르시아의 사진 안에서 배경과 자연스럽게 융화된 인물은 사전에 합의된 어느 정도의 연출에도 불구하고- 혹은 반대로 그러한 연출에 의해서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다.

<Philip-Lorca Di Corcia>와 <A Story Book Life>는 필립 로르카 디 코르시아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사진집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많이 찍어보는 연습도 필요하지만, 좋은 작품을 많이 보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사체에 대한 이해와 설득력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디 코르시아 작품은 하나의 모범과도 같은 사진이다. 수년 전에 본 그의 작품은 아직도 나에게는 큰 자극이고 영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