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팝콘&콜라] ‘흥행’ 좇다 ‘정체성’ 놓친 한국의 국제 영화제들
2006-02-03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오는 5월 개막하는 제59회 칸영화제의 개막작은 <다빈치 코드>다.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올해 할리우드 최고의 기대작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의 상징물인 루브르박물관을 배경으로 하고 프랑스 여배우인 오드리 토투가 출연했지만 전형적인 할리우드 장르 영화인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기까지 주최쪽은 고민을 꽤나 했을 것이다.

칸영화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영화제임에도 불구하고 ‘예술’만으로는 세계인들의 시선을 잡는 데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면서 해마다 할리우드 스타 모시기에 점점 더 열을 올려왔다. 그러나 영화제 기간 중의 상영일정에 맞춰 상영작에 출연하는 스타들이 도착하는 바람에 정작 축포가 터지는 개막식은 썰렁하자 아예 개막작으로 할리우드 대작영화를 선정했다. 지난해에도 <스타워즈 에피소드3:시스의 복수>를 개막작으로 올리려고 하다가 결국 막판에 유럽영화인 <레밍>으로 선회했다. 2000년 니콜 키드먼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물랭 루즈>를 개막작으로 올렸다가 상업주의에 물드는 칸이라고 비판을 받은 뒤 한동안 ‘자제’했으나 올해 결국 칸은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할리우드(와 스타배우들)에 러브콜을 보낸 것이다.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한번 초청받기를 꿈꾸는 영화제라도 ‘흥행’에 대한 고민에서는 예외가 아닌 셈이다.

그런데 2월1일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대한 평가 결과를 보면 한국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 결과에 따르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와 ‘여성’영화로 특화된 서울여성영화제 정도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해 집행부 구성 문제로 진통을 겪었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광주국제영화제는 전해에 비해 관객참여나 만족도에서 많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두 영화제의 집행부, 프로그래머 교체에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하면서 가장 크게 내걸었던 구호가 지역주민의 참여 등 대중성의 확보였다. 새로 임명된 두 영화제의 간부들도 지난해 ‘대중성’의 확대를 전면으로 내걸고 영화제를 열었지만 대중을 잡는 데도 실패했고 나아가 영화제의 정체성까지 모호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분명 부산국제영화제의 ‘흥행’ 성공은 다른 영화제들이 따라하고 싶은 선례가 됐겠지만 이들의 ‘벤치마킹’에는 하나 빠진 게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감독 발굴과 아시아인 영화 교류의 장이라는 차별적인 전략으로 출발했고 이 목적이 달성되면서 세계적인 주목도 받게 됐으며 흥행도 따라와 줬다. 부산 뿐 아니라 로테르담이나 토론토 같은 영화제들도 세계 3대 영화제 따라가기 노선을 벗어남으로써 국제적인 영화제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국제 영화제들은 특화 전략을 포기하면서까지 대중성 확보를 목청 높이면서 두가지 모두 놓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영화제에 대한 정부 지원을 재검토해야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철학의 부재는 전략의 부재를 낳고 전략의 부재는 결국 대중으로부터의 외면으로 이어진다. 국민이 낸 세금을 까먹는다는 비난을 벗어나 건강한 영화제로 자리를 잡으려면 대중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전에 영화제의 철학을 제대로 세우는 것, 그에 따르는 특화된 전략을 세우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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