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판타지가 가장 판타지스럽다”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이즈음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수년 전 <쥬만지>를 필두로 <폴라 익스프레스> <자투라: 스페이스 어드벤처>가 영화화됐으며, <The Widow’s Broom> <Sweetest Pig> 등도 영화제작이 결정된 상태. 조각가로 활동하면서 취미 삼아 그림을 그렸다는 그는 자신의 그림에 동화책 삽화 스타일의 ‘내러티브’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림에서 서사적 영감을 얻어” <압둘가자지의 정원>부터 <자투라…>에 이르기까지 십수편의 소설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떠올리는 만큼 시각적 상상력이 뛰어나며, 일상 탈출이나 꿈 이야기 등 현실에 기반한 판타지를 즐겨 다룬다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이 인터뷰는 LA 프레스 정킷이 있은 지 두어달 뒤, 소니픽쳐스릴리징코리아 사무실에서 전화로 이뤄졌다.
-영화화된 <자투라…>는 원작과 어떻게 다른가.
=책은 아주 단순하고 짧은 스토리다. 영화의 도입부 정도만을 제시한다고 해야 할까. 영화화 과정에 없던 캐릭터가 생겨났고 형제 관계를 깊게 다루는 등 디테일이 더해졌다. 하지만 책과 영화 모두 다투기만 하던 어린 형제가 위험한 모험을 겪으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테마를 다룬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영화화된 <쥬만지>나 <폴라 익스프레스>와 비교해 <자투라…>의 영화화 과정이 어떻게 달랐다고 느끼나.
=<쥬만지>는 두 아이가 신비한 게임을 통해 모험을 겪는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야기였다. 위험한 사건들을 겪으며, 두 주인공은 게임을 완수하여 현실로 돌아갈지 포기할지 기로에 선다. 어른의 도움없이 위험을 극복하는 어린이들의 용기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쥬만지>는 소수의 등장인물만으로 스토리를 꾸려나가므로 영화화될 만한 디테일이 충분치 않았다. <폴라 익스프레스> 또한 <쥬만지>와 비슷한 어려움을 안고 시작했다. 주인공은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 꼬마인데, 그의 ‘의혹’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때문에, 이야기를 완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투라…>는 형제간의 대립과 갈등, 갈등 해소 등 영화화하기에 충분한 플롯과 갈등 소재를 갖고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자투라…>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스토리가 떠오를 때 나는 화면 속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머릿속의 상상을 ‘본다’. 이런 상상의 시각화 방식은 내 스토리에서도 비주얼이 부각되는 쪽으로 영향을 끼친다. 그러한 비주얼적 요소 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느낌은 ‘생경함’, 다시 말해 ‘생뚱맞은’ 느낌이다. <쥬만지>를 보라. 평범한 집에서 정글과 아프리카 동물이 튀어나온다니,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없는 사물들의 만남이다. <자투라…> 또한 이러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집과 우주를 연결하기에 이르렀다. 집은 매우 일상적이고 안전한 공간이다. 그런 공간이 갑자기 미지의 ‘우주’라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떨어지게 된다. 일상적인 안락과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위험, 이런 극도의 부조화를 통해 독특한 감상을 주고 싶었다.
-책을 구상하던 단계에 영화화 논의를 시작했다고 하던데, 처음부터 영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것인가.
=처음부터 책으로 낼 계획으로 시작되었으며, 영화화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소설 <쥬만지>는 두 주인공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쥬만지’ 게임을 계속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후 많은 꼬마 독자들로부터 “그들이 어떻게 되었냐”고 묻는 편지를 받았다. 나는 속편을 쓰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답장을 쓸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도 두 꼬마의 향방에 호기심이 생겨 <자투라…>를 쓰게 되었다. 또 ‘쥬만지’ 보드게임을 한다는 설정은 지루할 것 같았고, 그래서 ‘자투라’ 게임으로 바꾼 것이다. 한창 <자투라…>의 아우트라인을 잡고 이야기를 진행했을 무렵 윌리엄 타이틀러(<쥬만지> <폴라 익스프레스>의 프로듀서)와 만나 ‘<쥬만지> 2부’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가 관심을 보이며 스튜디오에 알리고 싶어했고, 그렇게 영화화 작업이 진행됐다.
-가상세계에 빠진 아이들의 모험담을 즐겨 다루는 이유는? 마법이나 초현실의 가상세계가 아니라 일상에 기반한 판타지에 주력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예컨대 <쥬만지>나 <자투라…>, 두 이야기의 주요한 상상적 소재는 ‘보드게임’이다. 보드게임은 어린이들이 즐겨 하는 것이지만 지금 성인인 이들도 어려서 보드게임을 하면서 자랐고, 나는 그러한 보드게임이 현실로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 것뿐이다. 성인과 어린이, 어느 한쪽에 국한할 수 없는 일반적 소재인 것이다. 내 생각엔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판타지’가 ‘판타지 세계에서 일어나는 판타지’보다 훨씬 ‘판타지’스럽다. 일상 속의 평범한 집이 갑자기 우주로 날아간다는 건 무척 기괴한 사건이다. 용과 공주님이 등장하는 이야기보다 충격적이고 환상적이지 않겠는가. 나는 무엇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관심이 많고, 일상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 상황을 조합하는 게 재밌다.
-<쥬만지>를 필두로, 최근 들어 <폴라 익스프레스> <자투라…>가 영화화되었고, 다른 책들도 영화화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의 원작 동화가 자주 영화화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영상으로 옮기기에 적합한 비주얼이 있는 그림책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책 작가로서, 내겐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한 비주얼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비주얼을 통해 이야기가 비롯되는 구조는 영화와도 상통하는 맥락이 있으니, 그림책은 영화화하기에 어렵지 않은 재료일 것이다. 다만 그림책의 약점이라면 서사를 이끌어나가기엔 이야기가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림책 작가로서 컴퓨터 시대의 아이들을 어떻게 느끼고 접근하나.
=비디오나 컴퓨터 게임이 주는 정서적 자극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것이다. 이런 자극의 문제는 아이들이 ‘리얼’하지 않은 세계에 빠져 더이상 상상력을 쓰지 않고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모조된 세계에 밀어넣어 상상력을 말려버리는 비디오 게임 등으로부터 아이를 떨어뜨리고, 현실 세계의 삶을 통해 자신만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키워나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