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남자라면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든다 기자라면 경찰서 출입을 해봐야 한다든가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 뭐뭐라면 뭐쯤은 해봐야 하는 말은 실은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빚어진 권위주의의 소산일 가능성이 크다.
배우라면 연극을 해봐야 한다는 말에는 약간 다른 맥락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뭔가 와일드한 냄새는 나지 않는다- 범‘뭐뭐쯤은 뭐뭐하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연극인 출신 배우나 연극인들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편견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솟곤 했다.
그런데 요새는 약간 헷갈린다. 영화배우들에게 뭐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내 귀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는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태풍>과 <야수>를 보면서 계속 옆사람에게 “뭐라고?” “지금 뭐라 그랬어?”라고 계속 묻다가 지쳐버린 것이다.
사실 출연배우들의 연기력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두 영화의 주인공인 장동건, 이정재, 권상우, 유지태 모두 연기적으로 자기 몫을 했다는 데 비토를 걸고 싶지는 않다. 표정과 액션 뭐 그 정도면 굳∼굳∼!이라고 본다. 문제는 이분들께서 감정이 고조되고 언성이 높아지는 장면만 등장하면 그때부터 통역이나 자막이 아주 절실해진다는 데 있다. 나만 그런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태풍> 때 대사 전달이 가장 잘된 장면은 외국어가 등장하는 자막 화면이라는 약간의 비아냥섞인 농담을 여러 사람에게 들었다. 나도 그랬다. 영어나 일어는 안 되지만 한국어라도 잘 익혀놓은 게 얼마나 큰 보람으로 느껴지던지.
<야수>를 보면서 비슷한 경험을 두 번째로 하면서 ‘배우라면 역시 연극을 해봐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로지 배우들의 발성 문제 때문이다. 연극판 출신 배우들을 보면 연기력은 차치하고 아무리 꽥꽥 지르는 장면에서도 대사가 들리지 않아서 짜증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방법은 세 가지다. 배우들이 발성연습을 좀더 충실하게 하거나, 배우의 목소리가 몇 데시빌 이상 올라갈 때면 화면에 자막을 띄우거나, 아니면 <씨네21>의 제작진행표를 책상 앞에 붙여두고 개봉 시기와 맞춰 특정배우의 목소리와 발음습관 등을 철저하게 분석, 연구해 극장에 가는 것이다. 아마도 현실 가능한 선택은 돈없고 시간 많은 내가 세 번째 방법을 추진하는 걸 거다. 그러나 게으른 내가 그런 시도를 할 가능성은 전무하니 슬프지만 계속 양옆 사람을 괴롭히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