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발전하려면 누군가 사고를 쳐야 한다”
<궁>의 황실 세트가 지어진 경기도 오산에서 만난 황인뢰 PD.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캐주얼한 옷차림이며, 푹 눌러쓴 모자 아래 자유분방하게 뻗어 있는 머리칼만 보면 여전히 청년처럼 보이지만, 1954년생 그도 이제 쉰셋이라는 나이에 이르렀다. “황 감독의 작품을 보고 나서 찍은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동시녹음을 따라서 채택했다”는 유광욱 동시녹음 감독의 증언대로 대한민국 드라마가 내용적, 형식적, 기술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에 늘 황인뢰가 있었다. 연애의 기초를 말하고,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질문하고, 고개 숙인 남자들을 응시하고, 도시인의 고독에 귀를 기울이던 그가 돌연 만화를 원작으로 한 <궁>을 연출한다고 발표했을 때 그것은 쉽게 그려지는 조합이 아니었다. <궁>은 황인뢰의 연출인생에 어떤 포인트인가. 황인뢰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그간 어떻게 지냈나. <한뼘 드라마>를 통해 반가운 인사를 건네긴 했지만, 미니시리즈로만 치자면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1990) 이후 거의 16년 만이다.
=주 2회의 미니시리즈가 대세가 되어버린 지금 방송시스템을 볼 때 일의 속도나 취향 면에서 내가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미니시리즈는 시대의 트렌드를 잘 좇아가야 하는데, 위에서 보기에 뭔가 대중적이지 않다고 찍힌 부분도 있었고(웃음), 나 역시 왜 나까지 그 판에 껴?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원래 <궁>도 제작총괄로만 참여하기로 했는데, 그간 제작의 우여곡절도 있었고 회사 살림을 생각해볼 때 “누가 나처럼 돈 아끼면서 찍을 수 있을까?” 하는 맘에 하기로 결정했다. <궁>으로 방송국쪽에 신뢰를 회복해야 할 텐데. (웃음)
-그래도 결국 연출을 결정했을 때, <궁>의 원작이 가지는 나름의 장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워낙 미덕이 많은 원작이다. 나로서는 먼저 ‘궁’이라는 갇힌 공간을 주목했다. 군대나 학교처럼 틀과 규범이 분명한 곳이 주무대가 되었을 때의 재미는 결국 그 규범과 틀을 조금씩 깨가는 데서 나온다. <궁>은 채경이라는 소녀의 영웅담이다. 평범하게 자라던 아이가 운명의 부름을 받게 되고, 그것을 거부하고, 결국 발을 담그고, 가혹한 시련을 맞이하고, 그 문턱들을 넘어서 괴물과 맞닥뜨려서 이겨낸다는 영웅담의 기본 골격을 가진 드라마.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여러 이야기들을 깔고 가거나 끌어들일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이야기다.
-제작 초기 캐스팅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규모가 큰 드라마에 검증받지 않은 신인을 내세운 두려움은 없었나.
=캐스팅에 대한 대중적 안티는 채경(윤은혜)이 많았는데, 오히려 내 걱정은 신(주지훈)이었다. 모델을 하던 친구라 감정을 푸는 게 어려웠다. 처음엔 “장작개비 같다”고 야단도 많이 쳤다. (웃음) 하지만 그 사이 본인도 노력을 많이 했고 이제는 스스로 캐릭터에 감을 잡은 것 같다. 만약 중간중간 어색한 느낌이 든다면 미리 촬영해놓은 초반 부분과 이후 촬영분이 섞여서일 거다. 윤은혜는 이 녀석 삶이 그냥 채경 그 자체더라. 처음 만났을 때 자기는 “여태까지 살면서 잘한다는 소리는 한번도 못 들었다”고 말하는데 내 가슴을 치는 게 있었다. 정 같은 게 느껴졌다. 드라마와 비슷한 남동생이 있고, 부모님 연령도 비슷하고 채경 부분은 그냥 다큐멘터리 찍는 마음으로 찍는다. (웃음)
-만화 <궁>은 여전히 연재 중이다. 완결된 만화가 아니기 때문에 20부작 드라마의 결말이나 이후 진행은 작가와 PD의 몫이 아닌가.
=나도 그렇고 인은아 작가도 대본을 쓰면서 자연적으로 궁이나 궁중에서 행해진 것들에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보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점점 많아진다. 만화 팬들도 많고, 계속 원작과의 밀접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겠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선보일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해피엔딩이다. 물론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간 연극 <불 좀 꺼주세요> <졸업>, 뮤지컬 <하드록 카페> 등 TV연출 이외의 작업을 했다. 그런 외도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기다림이랄까? 예전에는 촬영 들어가기 전 콘티를 대충 머릿속으로 그려가서 빨리빨리 찍곤 했다. 하지만 연극은 그런 방식으로 할 수 없으니까 기다리는 데 익숙해졌다. 요즘은 내 콘티를 들이밀기 전에 일단 배우들이 어떻게 준비했는지 마스터 숏으로 찍으면서 보는 편이다. 내가 생각 못해왔던 느낌을 주기도 하고, 상상치 못했던 동선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치 중계연출을 하는 기분이다. 공이 내야로 가면 내야로 가고, 외야로 떨어지면 또 그걸 따라가는. 현장의 재미와 배우들과의 호흡을 즐기고 있다.
-<궁>을 찍겠다고 나선 것은 또 한명의 한류감독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선언인가? 혹은 <한뼘 드라마> 같은 시도를 계속 해나가기 위한 보험 같은 것인가.
=제작비가 상승하고, 시장이 커졌으니 뭔가 여유가 생기고 자유를 얻은 것 같지만 사실 드라마 제작환경은 예전보다 훨씬 열악하다. 매주 70분가량 되는 드라마를 2편씩 그 스케일에 맞게 뽑아내려면 죽어난다. 그러니 자꾸 편하고 익숙한 것만을 하려고 한다. 문제아들을 길러내야 하는데 기술자들만 길러내는 상황이다. 드라마가 발전하기 위해선 계속 누군가가 사고를 치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홍콩영화가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졌듯 우리의 드라마가 외면받는 날이 곧 올 거라고 생각한다. 연출이야 언제나 재밌지만 그 욕심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포맷을 개발하는 데 역할모델로서, 선배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 악조건들을 개선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최근 드라마 <아줌마>를 연출했던 안판석 PD가 영화 <국경의 남쪽>을 찍고 있다. 방송 PD의 충무로행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여전히 영화연출에 대한 생각이 있나.
=영화라. <꽃을 든 남자>를 들고 나갔을 때는 단순히 ‘영화’에 대한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 사운드나 사이즈나 스크린으로 내 작품이 보여진다는 것이 탐났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열망은 사라진 것 같다. 영화에 맞는 이야기가 있고, TV에 맞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이 영화에 더 어울리는 것이라면 영화를 다시 할 수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