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세계 영화계를 주도하던 독일은 나치의 유대계 영화인 추방으로 한동안 공황기를 겪었다. 독일영화가 다시금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60년대 후반 뉴저먼 시네마 덕분이었지만, 작가주의 예술영화 외에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96년 톰 티크베어 감독의 <롤라 런>은 ‘저먼필름미라클’의 시대를 열었다. 이 시대의 대표주자는 티크베어와 <굿바이 레닌>의 볼프강 베커, 2005년 <추커씨에 올인>으로 평단의 호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대니 레비다.
세 감독은 ‘독일 영화계의 삼총사’로 불린다. 여기에 제작자 슈테판 아른트가 더해진 네명이 영화사 X-Film의 공동사장이었다.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가슴에 비해 턱없이 가벼운 주머니가 늘 원망스러웠던 세 감독은 “카메라가 열받아 팍팍 김을 낼 때까지 영화를 찍어봤으면…”했지만, 투자자를 찾고 방송사에 지원금을 요청하는 데는 영 숙맥이었다. 이들은 결국 각자 주머니를 탈탈 털어 1994년 일종의 가족기업인 X-Film 간판을 내걸었다.
저예산영화 <롤라런>으로 출발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어 베커의 대박영화 <굿바이 레닌>이 바통을 물려받았다. X-Film의 미래는 장밋빛이라고 믿었다. 힘이 솟으니 아이디어도 줄줄 이어졌다. 그러나 감독들의 개인재산을 담보로 한 은행융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X-Film은 독일 굴지의 영화사 제나토어와 손을 잡았다. 제나토어는 감독들의 창작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약속하에 X-Film의 지분 51%를 챙겼다.
두 회사의 공생관계는 3년 뒤인 2003년 제나토어의 어이없는 파산으로 끝장이 났다. 계속된 대박에도 불구하고 제나토어의 파산으로 X-Film이 떠맡게 된 채무는 무려 1천4백만유로(약 170억원). 결국 세 감독의 요람도 파산선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세 감독은 은행과 투자자들을 찾아다니며 2년여를 허비해야 했다. 인내는 결국 한계에 달했다. 그리고 넉넉한 제작비보다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환경에서 작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최종 결론은 더 이상 X-Film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 스스로 일구고 가꾸어온 회사를 포기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이었지만, 계속 영화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삼총사는 X대신 Y-Film을 창립했다. 레비는 히틀러를 주제로 한 코미디물 촬영에 곧 들어갈 계획이고, 베커와 함께 2007년 제작할 신작의 시나리오를 집필 중이기도 하다. 이제 재산은 아이디어뿐이다. 그러나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X-Film을 보란 듯 키워냈듯이, Y-Film 역시 자신들의 독창적 영화세계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전진기지가 되어줄 것이라고 삼총사는 굳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