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스크린쿼터 수호가 강자독식 풍토 면죄부는 아니다
2006-02-23
글 : 허문영 (영화평론가)
허문영 영화평론가

스크린쿼터 수호를 위한 1인 시위의 세 번째 주자로 나온 장동건의 피켓에는 이런 구호가 씌어있었다. “스크린쿼터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세계에 태극기를 휘날리겠습니다.” 그가 주연을 맡았고 최고 흥행작 대열에 든 두 영화의 제목을 이용한 이 재치 있는 구호는 그러나 좀 찜찜했다. 스크린쿼터가 수호하려는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는, 이 구호가 말하는 ‘한국영화의 힘을 세계에 떨치자’는 뜻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3주째 계속되고 있는 스크린쿼터 수호 시위에 이런 애국주의적이며 산업적 욕망이 담긴 언어가 과다했던 건 사실이다. 이번 주 <씨네21>에는 스크린쿼터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글이 다섯 편 실렸다. 영화산업 종사자에겐 쓴 소리로 들릴 이 글들은 논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문화다양성을 보존하려면 스크린쿼터 수호뿐만 아니라 승자독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영화산업 내부의 풍토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강준만 교수의 지적은 가장 신랄한데, 그는 “대박의 주인공들이 제작자건 감독이건 스타건 국내적 다양성과 상생을 위해 무슨 기여를 했다는 말을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고 썼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은 아니다. 누구보다 장동건은 <친구>로 최고 수준의 출연료를 받을 수 있었던 2002년,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 자청해서 아주 낮은 개런티로 출연했다. 움직이는 기업이라고 해도 좋을 스타들이 수억원의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이런 결단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종종 그렇게 한다. 지난해 어떤 배우는 신인감독의 비상업적인 데뷔작에 ‘시나리오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평소 몸값의 20% 정도만 받고 출연했다. 이나영은 무보수로 단편영화 <우리집>에 출연하기도 했다.

제작자나 스탭들의 노력도 있었다. 한국에서 잘 나간다는 제작사들은 대부분 상업성이 낮은 영화에 투자하거나 직접 제작한 경험을 갖고 있다. 김형구 촬영감독은 한국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스탭 중의 한사람이지만, 다른 영화에서보다 훨씬 낮은 개런티로 홍상수 감독과 세 번째 영화를 만들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더욱 악화돼 왔다는 데 있다. 관객 천만시대가 도래한 시점을 전후해 임권택, 홍상수, 김기덕의 관객은 현저하게 줄었다. 김기덕 감독은 아예 한국 관객을 떠나버렸고 임권택 감독의 신작에 스타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자자가 투자 결정을 번복한 소동도 있었다. 시네마테크 관객도 급감했으며, 예술영화 시장이 죽었다는 탄식은 오래전에 터져 나왔다. 한국영화계에서 승자독식 혹은 독과점을 동반한 산업화는 거역할 수 없는 대세가 된 것처럼 보인다.

2000년을 지나면서 개봉 전 기선 제압은 영화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고 영화 자체보다는 사전 프로모션과 개봉 규모가 더 중요한 요소가 됐다. 매체들은 이 전략에 포위돼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에게 과잉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1993년 단관 개봉해 8개월만에 서울 1백만 관객을 모은 <서편제>도 이런 상황에서라면 10만도 들지 않을 것이다. 승자 독식 풍토는 이런 규모와 속도 전쟁 아래서 만들어진다. 어떤 특정인의 잘못도 아니지만 여기엔 저널리즘을 포함해 영화 종사자 모두가 연루돼 있다.

스크린쿼터는 시급하다. 쿼터가 줄어들수록 소수자의 영화들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문화다양성 확보는 한국영화계 내부의 신사협정 작성 및 수행 능력에 달려있다고 본다. 그 협정에는 프린트 수나 개봉관 수 제한, 마이너 쿼터 등 초전박살식 프로모션 및 배급 관행을 제어하는 방식이 우선 검토돼야 한다. 불가피하게 초시장적인 협정이 될 것이며 수행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시급하다. 한국영화계가 쿼터만으로 문화다양성을 보존하기 힘든 지점까지 떠밀려 와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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