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친구 하나가 울면서 왔다. 이유인즉슨 골목길에서 동네 깡패들이 돈을 뺏어갔다나…. 한동안 친구들은 그 골목을 피해다녔고, 그 와중에도 몇몇은 같은 경우를 또 당했다. 선생님도 경찰아저씨도 다들 조심히 다니라고만 했지 아무도 그 깡패들을 혼내주지도, 우리의 돈을 돌려주지도 못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덧 그 기억이 가물해질 정도로 성장했을 때 같은 모습을 또 목격했다. 이번에는 내 주변이 아니라 TV에서 나오는 얘기였다. 어느 사람이 너무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알면서도 못 잡는다는 것이었다. 악당을 잡는 것은 고사하고 TV에 나온 사람이 보복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엉뚱한 얘기로 서두를 열어버렸다. 회사일로 바쁘던 어느날 비디오가게 아저씨가 꽤 재미있다고 권해준 영화가 <분닥 세인트>였다. 예전에 <펄프픽션>을 접한 뒤에 정서적 충격이 커서 한동안 타란티노 계열의 영화들만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 연출도 훌륭했지만 양아치 같은 놈들이 나와서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지껄이며 만들어내는 껄렁한 분위기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수많은 좋은 작품들 중에 <분닥 세인트>를 굳이 꼽는 이유는, 젊은 신인감독이 던지는 과감한 질문이 꽤 충격적이었기 때문.
평범한 아일랜드계 미국인 코너와 머치는 사이비 같지만 나름대로 신앙심이 두터운 의좋은 형제다. 하지만 어느 술집에서 벌어진 싸움에 연루되고 우연히 벌인 살인극이 주민들의 갈채를 받으면서 성스러운 경지의 의적으로 대접받게 된다. 스스로 도취되어 이때부터 죽음의 사도가 돼버린 이들은 속칭 쓰레기라 불리는 악당들을 사정없이 죽여버린다. 공교롭게도 세상은 이들의 구원을 기다렸다는 듯이 경찰까지 나서서 돕는다. 법의 힘으로 구속하지 못하는 이탈리아 마피아 두목을 법정 한가운데서 살인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특이한 점은 엔딩타이틀이 오를 때 검은 바탕이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한 시민들의 인터뷰가 나온다는 점이다.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인터뷰 결과, 예상은 했지만 긍정과 부정의 비율이 비슷했다. 영화감상이 끝나고 빗발칠 항의들을 미리 예견한 감독의 배려인가? 마치 당신들이 할 얘기는 다 알고 있으니 미리 다 보여주겠다는 식이다. 만약 잘 모르는 어떤 사람이 신앙이라는 신념에 이끌려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없이 세상의 쓰레기 같은 악당들을 살인하고 다닌다면 선과 악을 떠나,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다. 처벌보다는 살인이라는 점에서 윤리의식이 먼저 발동하리라는 생각에서.
저녁뉴스를 보면서 기쁜 소식보다는 나쁜 소식을 더 많이 전해 듣는다. 강간, 살인, 사기, 마약, 부정부패 등 온갖 범죄들에 분노한다. 특히나 질 나쁜 인간들이 나와서 활개를 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을 때, 더구나 이런 족속들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고 할 때, 우리는 분통을 터뜨리며 한번쯤 생각해본다. 누가 저런 놈들 잡아다 혼쭐을 내줬으면 하고. 억지스럽게 비쳐질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영화에서 두 주인공은 끊임없이 이건 현실이라고 얘기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다. 재미난 것은, 신앙은 잘 몰라도 신념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고 처단하는, 예로부터 이런 일을 전담으로 행하는 영웅들이 있었으니 바로 슈퍼맨, 배트맨 같은 아메리카 스타일의 슈퍼 히어로들이다. 슈퍼맨이 악당을 돌로 쳐 죽이든 빛나는 두눈에서 나오는 레이저로 지져 죽이든 사람들은 박수치고 열광하지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지 않았다. 왜냐면 그곳에는 현실이란 느낌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쇼를 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업 탓인지 시나리오 고민을 하다보면 늘 부딪히는 문제가 있다. 도대체 작품 속에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래저래 모두가 수긍할 만큼의 작업을 하다보면 늘 배가 산으로 가 있다. 그것은 마치 작품 속에 대단한 가치관이 있어야만 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명쾌하게 전달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쾌락만을 선사하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직관적인 언어들을 얘기하기 위함인지 혼동 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의 시나리오가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끝날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감독이 하고 싶은 얘기를 직설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면서 또 거기에 관객이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도록 적당한 유머를 섞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독특한 연출방식을 지닌 <분닥 세인트>는, 사회정의니 종교니 윤리니 하는 여러 가지 화두를 복잡하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본능에 가까운 언어로, 감독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원하게 내질렀다는 데서 의미가 컸던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확실한 대안 한 가지를 찾기도 했다. 현실도 복잡하고 어지러운데 영화 속에서마저 타협하지 않으리라는 굳건한 의지 말이다. <분닥 세인트>가 한국형 <분당 세인트>로 승화되는 순간이군…. 하지만 여전히 꿀꿀하게 남아 있는 생각은… 세상에 그런 놈들이 있다면… 내 대답은 ‘오 마이 갓!’이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