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폐쇄공간을 여행하는 팀 로빈스를 위한 안내서 [1]
2006-03-07
글 : 정재혁

<쇼생크 탈출>의 앤디, 팀 로빈스가 감옥을 탈출한 것도 어언 10여 년. 강산도 변했을 시간인데도, 이런저런 까닭으로 세상엔 아직 감금되는 사람도, 감금하는 사람도 많다. 그 종류도 다양해 변태 오야지는 애견을 기르듯 여고생을 사육하고(<완전한 사육-신주쿠 여고생 납치사건>), 멀쩡해 보이는 엄마 아빠는 ‘옆집 순이’를 땅속에 파묻으며(<아임 낫 스케어드>), 희대의 살인마라는 녀석은 애써 사람을 가둬놓고 게임이나 한판 하자고 덤빈다(<쏘우2>). 어디 이뿐이랴. 21세기의 감금은 시간과 공간도 초월하여, 17,576개의 미로 속(<큐브>)에 사람을 가두는가 하면, 누군지도 모르는 놈이 난데없이 전화해 하루종일 전화질이나 하자고 협박한다(<폰부스>). 아무리 탈출의 고수 팀 로빈스라 해도 10여년 간의 기술적, 시대적 변화에 버퍼링이 심할 터. 이에 ME 여행사가 팀 로빈스를 위한 ‘폐쇄공간 투어’를 기획했다. 1999년 <큐브>부터 2006년 <쏘우2>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 여기 그 안내서를 제시한다.

하이, 팀 로빈스씨. 어서 오세요. 일단 타이레놀 두알과 우황청심환과 물 한병은 챙기셨나요? 이동 중에는 종종 무중력 상태가 되기도 하니, 미리 준비해두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이번 투어는 일종의 체험여행이기 때문에, 각종 감금 상태에서 오는 다양한 쇼크에는 알아서 대처하셔야 합니다. 참고로, 저희 여행사에서 응급조치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뭐, 그 악명높은 쇼생크 감옥에서도 견뎌내신 분인데, 강인한 체력이야 굳이 말로 안 해도 될 거라 생각합니다.

자, 일단 여행지는 총 다섯곳입니다. 40년 간 한 감옥에서만 지내셨던 것에 비하면 꽤나 다양한 옵션이죠? 여행지의 순서에 따라 총 120가지의 루트가 있고요. 뭐, 여행 시작 전부터 이것저것 고르느라 머리가 아프시면, TG(Tour Guide)가 강력 추천하는 루트도 있답니다. 대체로 많이 선택하시는 경로는 ‘시간순이긴 합니다. 시간 간격에서 오는 두통을 줄여준다는 최대의 장점이 있죠. 아, 좋으시다고요? 그럼 시간순으로 가보죠. 자, 안전벨트는 매셨나요? 기체가 안정적이 되기 전에는 자리를 이동하시면 안 됩니다. 미지의 폐쇄공간으로 빠져버리는 수가 있거든요. 그럼 출발합니다.

이 방도 저 방 같고, 저 방도 이 방 같은 시추에이션

<큐브 제로>

아, 로빈스씨. 저 잘 보이시죠? 첫 여행지 <큐브>입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말을 좀 아낄 겁니다. 이곳의 컨셉은 ‘미스터리’이기 때문이죠. 물론 아예 말을 않겠다는 건 아니니 안심하십쇼. 다만, 좀 더 ‘큐브적인 폐쇄감’을 선사해드리고자,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삼가겠습니다. 아, 팀 로빈스씨. 매우 어리둥절해하시는군요. 단지 1년 거슬러왔는데, 엄청난 변화라구요? 그렇게 절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저도 이곳을 100번도 더 와봤지만 올 때마다 충격을 받습니다. 매번 비슷하게 생긴 방구석에 떨어지니까요. 이 방이 저 방 같고, 저 방이 이 방 같으니, 이게 어찌 보면 눈에 보이는 변화보다 더 충격적이긴 할 겁니다. 아, 팀 로빈스씨. 수학은 좀 잘하시나요? 이곳에선 머리가 좀 필요하답니다. 힌트 약간를 드리면,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이곳엔 지금 이 방과 똑같은 정사각형의 방이 17,576개나 있답니다. (문 옆의 숫자를 유심히 보는 로빈스씨) 아, 문 옆에 숫자요? 역시 예리하시군요. 그 숫자들이 이 큐브를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힌트랍니다. 물론 그 방법을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죠. (표정이 굳어진 팀 로빈스씨) 왜 그리 얼어 계시죠? 아, 나가는 방법이오?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답니다. 저희 여행사에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쪽문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 문을 통하면 다음 여행지까지 무사히 가실 수 있답니다. 그전에 잠시 옆방으로 가볼까요? 헉(깜짝 놀라는 팀 로빈스씨). 괜찮답니다. 물론, 이곳에서 잘못 문을 열었다간 사지가 절단되고, 사방으로 피가 튀기는 불상사를 당할수도 있죠. 그러니 알아서 머리 잘 굴리시며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아, 팀 로빈스씨. 그 문을 어떻게? 그건 바로 저희 여행사만이 아는 쪽문인데. 암튼, 이번 여행지는 무사히 통과하게 됐군요. 이 사실을 밖에 누설하시면 안됩니다.

Tip/ 데카르트의 좌표, 치환벡터를 비롯해서 수십개의 숫자를 보고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는 수학적 센스가 필요하다. 내큐브와 외큐브, 이 둘을 연결해주는 큐브까지, 이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기 때문에 균형을 유지하려면 튼튼한 달팽이관도 필수조건.

아무 말 말고 전화 받어~, 내 번호 뜨니? 왜 안 받어~♪

<폰부스>

따르릉~, 따르릉~. 네, 전화받으시면 됩니다. 물론 요즘엔 아무나 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다니죠. 지금 이 공중전화박스도 조금 있으면 철거될 예정이랍니다. 사실 저희 여행사로서는 이 공중전화 박스가 인기 아이템인데, 요즘 이를 대신할 만한 장소를 물색하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깜짝 놀라는 팀 로빈스씨) 하하~. 매우 놀라셨죠? 난데없이 전화를 끊으면 죽이겠다고 하니. 하지만 그 재미가 좀 색다르지 않습니까? 전화 박스에 갇혀 있는 느낌,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아마 그렇게 전화통을 계속 붙잡고 계시면 팔이 좀 저려오긴 할 겁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곳을 여행하시는 모든 분들게 미리 평소에 근력운동을 충분히 해두라고 말씀드리고 있답니다. 수화기의 무게가 얼마 안 될 것 같지만, 이게 1시간, 2시간 지나면 점점 벽돌 2장의 무게로 느껴지거든요. 뭐, 팔을 바꾸는 건 상관없습니다. 뭐라고요? 협박이 장난 같다고요? 그럼 한번 밖으로 나가는 척해보세요. 팀 로빈스씨 생애 최악의 전화통화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이때 전화박스 옆 쓰레기통이 펑~ 하고 터진다.) 저희 여행사를 너무 만만하게 보셨군요. 장난이나 하자고 한달에 수백만원에 이르는 전화비를 부담하진 않는답니다. 네? 상대방 목소리가 지겹다고요? 그럼 9번과 우물 정자를 눌러보세요. 총 1,391가지 목소리를 선택할 수 있답니다. 그럼 은밀한 대화를 즐기시기 바라며, 저는 잠시.

Tip/ 기본적인 전화 예절 필수. 상대방의 말을 신중히 듣고 믿음을 주는 자세가 중요하다. 또 장시간 공중전화를 사용할 때는 뒷사람의 방해에 대처하는 능력은 플러스. 그리고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휴대전화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버리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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