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무림의 고수 이연걸을 말하다 [1]
2006-03-14
글 : 손주연 (런던 통신원)

무림에서 대결이란, 승패를 가려 지위 고하를 나누는 데 목적이 있다. 갖은 노력 끝에 얻은‘무승부’는 당연히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파이터들은 비록 그 끝이 죽음일지라도 대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기고도 또 도전하고, 지고도 다시 일어선다. 중국 최고의 무술 실력을 자랑하는 배우 이연걸을 통해 태어난 고수들도 그랬다. 그들은 사부의 복수를 위해 싸우고(<정무문>), 부를 위해 싸우고<리쎌 웨폰4>), 명예를 위해 싸우다(<무인 곽원갑>) 담담하게 죽어갔다.

한데 2006년 실존인물 ‘곽원갑’으로 분한 이연걸은 “그런 것들(승리)이 모두 부질없는 일”이라고 고백했다. “몸으로 이기는 것보다 마음으로 누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무인은 싸움질만 해선 안 된다”는 곽원갑 선생의 말씀이 오버랩되던 순간, 이연걸은 곽원갑이 바로 자신이라고 순순히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 영화를 끝으로 ‘무술’이 중심이 되는 작품에는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혹자는 그의 깨달음에 찬사를 보냈고, 혹자는 무술을 하지 않는 이연걸은 매력이 없다고 혹평을 하기도 했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다시 출발선에 선 그에게 영화와 함께한 지난 세월과 (이제) 무술영화 밖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미래에 관해 물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단호하게)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줄 순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그는 비록 직설화법으로 과거를 설명하진 않았지만, 이야기 곳곳에 과거에 대한 따사로운 애정이 깃들어 있다. 또 당장 내일의 일조차 정해둔 게 없다며 역시 답을 회피한 미래에 관해서도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10년 전 입문한 불교의 영향일까, 실제 만나본 이연걸은 해탈의 경지에 오른 무도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황비홍은 사하파의 소굴에 갔다가 사하파의 사주를 받은 엄진동과 대결을 벌인다. 엄진동을 쓰러뜨리기 위해 사다리를 부수는 특단의 조취까지 취한다. 하나 엄진동의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이어지는 황비홍의 반격. 엄진동은 거대한 저울과 추에 부딪히지만 꿋꿋하게 견딘다. 이렇게 서로 주먹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두 사람은 사다리 양끝에 서 위태로운 마지막 공격을 벌인다. 강한 상대를 만난 황비홍은 온갖 권법을 동원해 결국 승리한다. <황비홍>/ 1991년/ 감독 서극/ 주연 이연걸, 관지림, 원표

남아당자강(男兒當自强), 사내는 모름지기 강해야 할까

정통 소림 무술과 무영각(無影脚·그림자도 없을 정도로 빠른 발차기)에 능했던 황비홍. 당연히 그 앞에 실패란 없었다. 어떤 열악한 결투에서도 반드시 승리를 일궈내고야 말았던 그에게 대중은 열광했다. 황비홍의 이야기가 중국에서만 80번이 넘게 만들진 까닭이다. 혹자는 소림 무술과 무영각에 특히 능했던 이연걸을 보고 황비홍이 살아 돌아왔다고도 하고, 이연걸 최고의 영화로 <황비홍>을 꼽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이연걸의 이후 출연작은 <황비홍>을 연상케 하는(민족애와 조국애를 뜨겁게 자극하는 ‘남자 영화’) 작품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 뒤, 15년이 흐르는 사이 이연걸은 자신에게 남아 있던, 폭력으로 물든 황비홍의 자취를 조금씩 지워내고 있었다.

<무인 곽원갑>
<동방불패>

“폭력 대 폭력, 복수 대 복수가 얼마나 의미있는지 모르겠다. 육체로 상대를 이길 순 있지만 그건 진짜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힌 무술을 이용해 남을 때려눕히는데만 연연한다. 그래서 정작 자신의 좌절 앞에선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거다. 그런 순간에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면, 남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곽원갑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않는 이유이며, 진짜 강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무인 곽원갑>을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고.”

영호충은 피비린내 진동하는 강호가 싫다. 그래서 출중한 실력 덕분에 호의호식할 수도 있지만 강호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다. 강호에 자신이 바라는 평화가 있을 리 만무해서다. 하지만 사부가 동방불패 손에 모진 고문을 받은 것을 알게 되고, 동료들이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자 영호충은 다시 목숨을 건 결투에 내몰린다. <동방불패>/ 1992년/ 감독 정소동/ 주연 이연걸, 임청하

이소룡 vs 성룡 vs 이연걸

이소룡은 죽었다. 성룡은 지쳤다. 이연걸은 약하다?

당신도 이소룡, 성룡, 이연걸 중 절대강자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마련했다. 중국 무술영화를 이끄는 이들의 장단점 분석표를. 과연 무림의 최고수는 누구일까. 언제나 그렇듯, 결정은 당신의 몫이다.

절권도의 창시자-이소룡

무술 실력/ 쌍절곤 하면 이소룡, 이소룡 하면 쌍절곤이다. 그는 3단날라차기도 가능하고, 쿼스트 펀치(10초 동안 펀치하는 횟수)가 101회라고 하니, 무술에서만큼은 절대 강자일 듯. 절권도를 창시하기도 했다.
유머/ ‘아뵤~’ 기합 넣는 소리를 처음 들으면 조금 웃길지도 모름
외모/ 노란 ‘츄리닝’의 포스가 외모에 관한 생각을 잊게 해줌. 그닥 못생긴 편은 아님
대표작/ <용쟁호투>

운동의 고수-성룡

무술 실력/ 스턴트맨을 쓰지 않고 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인지 그가 싸움을 가장 잘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음. 그리 틀린 말이 아님.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것은 틀림없음. 합기도와 쿵푸를 배웠다고 알려짐. 스피드가 뛰어남
유머/ 셋 중 최고. ‘코믹 무협영화’의 창시자라고 할 수도 있음.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아이디어 넘치는 싸움장면이 특히 압권.
외모/ 많이 늙으셨음.--:; 주름 자글자글한 눈웃음도 자꾸 보면 멋져 보일지도 모름
대표작/ <취권>

무술의 천재 - 이연걸

무술 실력/ 현재 중국 10대 무인 중 하나로 꼽힘(중국 60억명 가운데 10명 안에 든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중국 무술인들은 그를 중국 역사상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무술천재로 받들고 있음. 우슈와 복싱, 번자권, 태극권, 소림권에 모두 능함
유머/ 진지하고 예의 바르게 보이는 외모 때문에 다소 안 어울리기도 함. <동방불패>의 영호충처럼 가벼운 인물을 연기할 땐 가끔 웃기기도 함
외모/ 셋 중 단연 최고. 키가 작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셋 중에선 그리 작은 편도 아님
대표작/ <황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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