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야구치 시노부를 만나다 [1]
2006-03-22
글 : 김나형

2002년. 심상치 않은 다섯명의 꽃총각들이 한국에 상륙했다. 섹시하기보단 어딘지 안쓰러운 몸을 흔들어대며, 수중발레를 하겠다고 고집하던 그들은, 야구치 시노부라는 한 감독의 이름을 한국에 알리고 돌아갔다. 야구치 시노부는 첫 장편 <맨발의 피크닉>으로 데뷔한 뒤 일련의 짝패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스즈키 다쿠지와 공동 작업한 <원피스 프로젝트>와 <파르코 픽션>, 소심한 남녀와 돈가방을 둘러싼 사건을 그린 <비밀의 화원>과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그리고 코믹 학원 청춘물이라 할 <워터 보이즈>와 <스윙걸즈>다. <워터 보이즈>를 재미있게 보았던 이에겐 그 소녀 버전이라는 <스윙걸즈>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스윙걸즈> 국내 개봉은 일본 현지보다 2년이나 늦었지만, 한국 시사회장은 단박에 웃음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번엔 꽃처녀들이, 야구치 시노부가 코믹 청춘물의 강자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스윙걸즈> 국내 개봉을 앞두고 도쿄로 날아가 제작사 포니캐넌 사무실에서 야구치 시노부를 만났다. 그는 일본을 찾은 한국 기자들을 보고 대뜸 “우와!”라고 했다. 자신이 청춘물을 만들었다고 전혀 생각지 않는 그에게, 그가 만든 청춘물에 대해 물었다. 그는 예의 바르면서도 의뭉스러운 대답을 들려주었다.

야구치 시노부는 동안이다. 긴장한 듯 입술을 오므리고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쥔 그의 모습은, 마흔이 다 되어가는 감독이라기보다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을 잔뜩 숨겨놓은 소년 같다. 그러나 그는 결코 녹록지 않다. 예의 바른 태도로 질문을 경청하는 소년은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아아∼! 으음∼! 오오∼! 따위의 반응을 보인다. 질문자는 대단히 만족한다. 열심히 이해했으니 적절한 대답을 내놓으리라. 그러나 막상 입을 연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아, 그렇습니까?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이거야 원, 파의 조리법을 물어보려고 “당신이 만든 볶음밥, 파의 향이 참 오묘하네요” 했더니, “그렇습니까? 제가 파를 넣었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군요!” 하는 셈이다. 그는, 다루기도 속내를 알기도 어려운 인물이다.

달려라! 청춘들아

야구치 시노부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거창한 가치관이 없다는 듯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유일한 가치가 있다면 “재밌으니까” 정도다. 하지만 야구치 시노부는 충동적이거나 저돌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는 늘 관찰하고 있고, 관찰은 착상을 부른다. 일단 구상을 하고 나면 주도면밀하게 일을 추진한다. <스윙걸즈>를 만들 때도 그랬다. 일군의 여학생들이 재즈 밴드를 꾸렸다는 얘기를 들은 그는, 달려가 취재부터 시작했다. “여고생들이 스윙 밴드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 대여섯명쯤 되겠지 생각했는데 찾아가 보니 20명도 넘는 빅밴드였다. 재즈라고 하면 어두컴컴한 데서 오타쿠들이나 듣는 음악으로 생각하는데 전혀 고리타분한 분위기가 아니더라. 아이들은 재즈를 접하고 연주하는 걸 새롭게 여기고 있었다.”

그가 보고 들은 것은 영화 속에 고스란히 자리를 잡는다. <스윙걸즈>에서 소녀들이 폐활량을 늘리려고 티슈와 페트병으로 트레이닝하는 장면, 연습할 공간이 없어 가라오케에서 연습하는 장면은 실제 여고생들이 겪은 일을 재구성한 것이다. 성인 남자인 그가, 여고생들의 감수성과 행동을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세심한 관찰 덕분이다.

<스윙 걸즈>
<워터 보이즈>

“영화 속 소녀들을 캐스팅하기 위해 1천명이 넘는 아이들을 오디션했다.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그는 농담처럼 말하지만, 힘들어 죽을 뻔했다는 건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는 머릿속에 다섯 주인공의 캐릭터를 분명히 정해둔 터였다(드럼을 치는 나오미는 뚱뚱해야 하고 만사 개의치 않는 듯한 성격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게다가 악기까지 다룰 줄 알아야 했으니 더욱 골치 아팠을 것이다.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캐릭터는 살리고 악기는 포기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야구치 시노부는 악기라곤 다뤄 본 적 없는 열댓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스윙걸즈>를 찍기 시작했다. 영화 말미 밴드가 들려주는 괄목할 만한 연주는 놀랍게도 가짜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영화를 찍는 동안, 색소폰·트럼펫이라곤 불어본 적 없는 아이들을 진짜 스윙 재즈 연주자로 만들었다. “개봉하기 전에 밴드를 버스에 태우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공연했다. 아주 히트했다. 이 이벤트를 하기 전에는 시사회를 본 사람들이 더빙 아니냐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직접 보더니 다들 ‘놀랐다, 감동했다’고 하더라.”

명백한 학원 청춘물을 두편이나 만들었지만, 야구치 시노부는 스스로를 청춘물 작가로 여기지 않는다. 심지어 <워터 보이즈>와 <스윙걸즈>가 딱히 청춘물이라 생각지도 않는 눈치다. “취재를 갔는데 임신부들이 스윙 밴드를 하고 있었다면 그 이야기를 만들었을 거다”라니, 청춘물을 만들겠다는 사명감도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은 돈을 벌지 않는, 돈에 얽매이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만들기 좋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만들 때는 월급이 얼마고, 애들에겐 용돈을 얼마나 주고, 직장은 어떻게 땡땡이쳐야 하는가 등등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더군다나 이 두 영화의 아이들은 수험에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보러 온 관객도 ‘정말 재밌게 살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그가 얘기하는 청춘물의 매력은 이 정도다.

그러나 그의 무심한 태도에도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는 근본이 청춘물이다. 이는 비단 <스윙걸즈>나 <워터 보이즈>뿐 아니라 전작 <비밀의 화원>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도 그러하다.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모두 어딘가 결여되어 있는, 무기력한 삶을 사는 젊은이다. 그들은 이상한 사건에 말려들어 모험을 겪게 되고, 그를 통해 자신 안에 잠자고 있던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불완전한 젊음이 한 돋움 성장하여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 청춘의 이야기다.

모두 다 못난 배역의 인물들

남자면 스즈키, 여자면 시즈코. 야구치 시노부는 자기 영화의 주인공에게 흔하디 흔한 이름을 붙인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만큼이나 별 볼일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렌터카 직원 스즈키는 짜증스럽게 구는 상사에게 화 한번 내지 못하고, 간호사 시즈코는 동료 간호사들에게 ‘지겨운 범생’ 취급을 당한다(<아드레날린 드라이브>). 어릴 때부터 돈을 밝히는 사키코는 친구도 애인도 없다. 돈 세는 게 좋아서 은행에 취직하지만 정작 자신이 왜 돈이 갖고 싶은지조차 모른다(<비밀의 화원>). <워터 보이즈> 스즈키 일행도 마찬가지다. 잘나가는 다른 체육부 남학생들이 “똘아이들이 뭘 하겠어? 잘하는 게 있어야지” 할 때, 그들은 가만히 듣고 서 있을 따름이다. <스윙걸즈>의 소녀들은 누가 왕따고 할 것 없이 다 문제다. 그녀들은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도 해야겠다는 마음도 평생 품어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야구치 시노부는 일본 청춘 만화의 수장 아다치 미쓰루와 대척점에 서 있다. 두명의 스포츠 천재와 야무진 소녀. 그들의 열정과 우정, 그리고 아릿한 사랑의 감정. <H2> <터치> <러프> 등의 작품에서 아다치 미쓰루가 그려낸 청춘은 그야말로 건강한, 비뚤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아다치 미쓰루의 것과 같은, 완벽하고 재능있는 캐릭터들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는커녕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인물을 만드는 게 내 특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이 확실한 인물보다 어정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좋다. 그런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야말로 정말 멋있는 거라 생각한다.”

<비밀의 화원>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아무것도 아니던 이들이 한 가지를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그저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경쟁도 없다. <워터 보이즈>의 소년들도 <스윙걸즈>의 소녀들도 학교 축제나 지역 음악 발표회에 나가는 것뿐, 이긴다 진다의 개념이 없다. 굳이 그들의 승리를 말한다면, 애정을 갖고 뭔가를 처음으로 이루어낸 일, 그것이 그들이 얻게 된 인생의 작은 승리다.

이들 주인공의 삶이 활기를 얻게 되는 것은 갑자기 침투한 틈입자 때문이다. 틈입자는 무기력한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단단한 소심과 무심의 껍질을 깨뜨린다. 야구치 시노부는 틈입자를 고를 때도 논리적으로 다듬어진 것을 택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면 재즈도 그렇고 수중발레도 그렇고 아이들이 찾으려고 찾은 게 아니다. 그냥 나타나서 ‘뭐야? 뭐야?’ 하고 시작하게 되는 거다. 얼떨결에 끌려갔다가 점점 즐기게 되는 그 과정이 재밌지 않은가.”

그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그런 식이었다. 도쿄 조형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영화를 찍기 시작한 것은 그저 ‘문득’이다. 선배 스즈키 다쿠지의 영향으로 몇편의 단편을 찍은 그는 1990년 <우녀>로 피아필름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92년 피아쪽의 지원으로 첫 장편 <맨발의 피크닉>을 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엔 영화는 그냥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진짜 특별한 사람들이나 만드는 거라고. 그런데 대학에 갔더니 학생이란 학생은 다 영화를 만들고 있더라. 그걸 보고 ‘아, 그냥 찍으면 되는 거구나’ 생각하고 나도 만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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