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진심 전하기
후끈녀: 리즈(<오만>)는 바보같이 기다리기만 하고, 마리안(<센스>)은 얼굴에 좋아한다는 게 벌써 다 써 있고, 어디 ‘센쑤’있게 진심을 전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오스틴: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지 않겠어요? 게다가 리즈는 마음을 열어놓고 기다리잖아요. 리즈는 다시가 슬며시 마차에 올라탈 때 손을 잡아주는 걸 눈여겨보고, 춤출 때 좋아하는 음악이 같은 걸 확인하잖아요(<오만>). 마리안처럼 솔직한 것도 좋죠. 남자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16번을 함께 외울 수 있는 것에 감격해 하잖아요. 자기 자신을 다 보여줬다고 창피해하지 마세요. 진심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솔직한 태도를 더 사랑스러워 할 겁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야지, 후회도 덜 하고 다치기도 덜 다치겠죠. 어설프게 남 흉내내다가 상처받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해요. 다만 먼저 유혹하기보다는 유혹하게끔 만드는 게 더 현명한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엠마>의 엠마, <클루리스>의 셰어가 변신 컨설턴트인 건 까닭이 다 있죠. 셰어가 크리스천으로 하여금 데이트 신청을 하게 하는 걸 보세요.
제5강. 오해 풀기
수렁녀: 진도 잘 나간다 싶으면 엉뚱한 오해로 깨지는 게 다반사예요. 이놈의 지긋지긋한 오해, 이해로 바꿔주면 안 될까요?
오스틴: 좋아한다, 싫어한다, 뭐 이걸 가지에 붙은 나뭇잎 떼어가며 점칠 수도 없고, 연애하면서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이죠. 제 작품에 악인이 별로 등장하지 않는 건, 연인들 사이의 사소한 오해가 어떤 악인보다 더 악인 노릇을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비 온 뒤에 땅 굳고, 오해 뒤에 이해가 익어가는 게 순리 아닐까요. 이해란, 오해라는 샛길을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 이란 생각을 해요. 답답하시면 편지를 써보세요. <오만>에서 다시가 보낸 편지 한통이 리즈의 닫힌 마음을 다시 열잖아요. 윌러비가 마리안에게 진작에 솔직한 편지를 보냈더라면 어땠을까요. 쉽게 내뱉은 말은 주워담기 어렵지만 고치고 또 고쳐 쓴 편지엔 진심이 담길 여력이 더 많지 않을까요. 너무 고루해요? 확실히 내가 늙긴 늙었군요! 하지만 왜 내 영화에 여러분들은 아직도 흥분하는 거죠? 사랑이란 감정은 늙으나 젊으나 똑같으니까!
제6강. 소양 갖추기
교양녀: <오만>에서 다시가 아주 건방지게도 ‘여자는 6가지 교양을 갖춰야 한다’고 하는데 무시하고 싶지만 살짝 마음에 걸려요. 뭘 갖춰야 사랑을 더 잘 할 수 있는 거죠?
오스틴: 다시는 말만 그렇게 할뿐 진심은 그렇지 않아요. ‘변화가 왔을 때 변절하거나/변절자가 변절할 때 흔들리면/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폭풍우에도 흔들리지 않는/오, 사랑은 영원히 버티고 서 있는 등대’라고 읊조리는 로맨틱한 윌러비 스타일은 멋있어 보이지만 결국 여자들 뒤통수나 치잖아요? 말없이 사람을 배려하고 아팠을 때 돌봐주는 브랜든 대령 같은 사람을 만나야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그 사람의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자기만의 진심이에요. 셰익스피어를 외우고, <엠마>에서 프랭크 처칠처럼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면 뭐 하나요.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봐주고 돌봐주는 행동은 그런 것보다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럽고 그래서 더 아름답지 않나요.
교양녀: 그거 너무 올드하다, 언니. 마리안은 피아노 치고 노래도 하고(<센스>), 엠마는 그림을 잘 그리잖아요(<엠마>). 그래서 남자들한테 더 인기를 끈 거 아닌가요?
오스틴: 키스를 피아노 위나 그림 위에서 할 필요는 없죠!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황홀하게 할 수 있다니까요. 살짝 귀띔하자면, 왜 마리안이 피아노를 쳤냐 하면요, 남자들이 자기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좋은지를 미리 알려주기 위해서죠. 흠, 농담이구요. 자기 취향과 색깔을 스스로 잘 안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겠죠.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 상대방이 더 힘들어하지 않을까요.
제7강. 상대와 친해지기
소심녀: 그런데요. 좋아하는 사람과 어떻게 하면 친해지나요. 이젠 소개팅도 지겨워요. 서로 좋아할 사람끼리 첫눈에 알아보게 바코드를 이마에 딱, 찍어서 다니면 안 될까요?
오스틴: 호호호. 제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도 선을 안 보는데 200년 젊은 사람들이 오히려 소개팅이다 선이다 커플매니저다 해가며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군요. 어맛! 죄송. 이렇게 놀릴 마음은 없었는데. 물론 제 작품 주인공들은 신분 차이, 지참금, 유산상속 같은 데 얽매여 있기는 하지만, 파티다 야유회다 해서 뻔질나게 모여서 춤을 추잖아요(<오만>). 거기서 자연스레 손도 잡고 스킨십도 할 수 있으니까.
소심녀: 지금 염장 지르세요? 여기가 무슨 미국이나 영국인 줄 아세요?
오스틴: 호호. 자꾸 나도 모르게 놀리게 되는군요. 서로 모여서 낭송회도 하고, 피아노도 같이 치고(<센스>) 그런 기회를 만드세요. 뻘쭘하게 술만 마시는 것보단 더 나을 거예요. 그런 모임이 힘들면 잔머리, 아니 지혜를 짜내보세요. 괜히 연필도 떨어뜨리고 자기한테 선물도 해서 인기있는 사람처럼 위장도 해보고(<클루리스>), 자기 이름을 넣은 손수건 같은 걸 꺼내서 옷에 묻은 걸 털어주는 척도 해보세요. 조금 나쁜 방법이기는 하지만, 다리를 삐끗해서 그 앞에 쓰러지는 것도(<센스>) 괜찮으실지 모르겠어요.
소심녀: 저처럼 소심한 애가 그런 가증스런 짓을 어떻게! 흑.
오스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센스>의 마리안-브랜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센스>의 엘리노-에드워드), 심지어는 춤추자고 리지가 먼저 제안을 할 때(<오만>의 리지-다시) 남자들의 마음이 흔들렸죠. 자신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때 남자들도 용기를 얻는답니다. 알고 보면 남자들이 더 소심해요. 다만 그들이 용기를 내게끔 그 앞으로까지는 가줘야 하겠죠? 근처에 가지도 않고서 마음만 두근두근대면 그 소리를 상대방이 어떻게 듣겠어요? 어머, 벌써 차 마실 시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