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오다기리 조를 만나다 [1]
2006-03-28
글 : 정재혁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네이버 지식검색에 ‘오다기리 조’를 치면, ‘<메종 드 히미코>의 하루히코가 <박치기!>의 사카자키 맞나요?’라는 질문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아무리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좀 심하다. 게이 청년 하루히코(<메종…>)와 히피 패션의 사카자키(<박치기!>), 그리고 지식검색의 몇 페이지를 더 넘겨 <밝은 미래>의 ‘해파리 소년 니무라’까지. 배우 오다기리 조가 궁금해진다. 그는 하루히코일까, 사카자키일까, 아니면 니무라일까? 이누도 잇신 감독과 함께 <메종 드 히미코> 홍보차 한국을 방문한 오다기리 조를 만났다.

2005년 6월, 일본의 영화잡지 <키네마준보>는 오다기리 조 특집 기사에서 조니 뎁의 이름을 자주 언급했다. 어두운 내면을 연기하면서도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와 같은 유쾌한 캐릭터를 선보이는 조니 뎁이 당시 <밝은 미래> <스크랩 헤븐>을 마치고 <시노비>를 준비하는 오다기리 조의 모습과 겹친다고 했다. 일본 저널의 자기 배우 치켜세우기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오다기리 조가 연기한 하루히코(<메종 드 히미코>)와 사카자키(<박치기!>)의 ‘터무니없는 차이’를 생각해보면 위의 비유가 꼭 틀린 것만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음지에서는 빛을 내고, 양지에서는 어둠을 보이는 남자. 이것이 조니 뎁을 수식하는 말이라면, 오다기리 조는 조니 뎁과 닮았다.

감독을 꿈꾸던 소년, 배우 공부를 시작하다

오다기리 조, 그에게 ‘영화관은 탁아소’ 같았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해 어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된 그는 어머니가 외출할 때마다 영화관에서 지내야 했다. 다른 아이들이 친구들과 지내는 동안 그는 영화의 재미에 빠져들었고, “뭐가 되더라도 영화에 관계된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대학 입학 뒤, 그는 할리우드로 건너갔다. 처음엔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 한번의 실수는 그를 배우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유학원서에 지망 학과를 표기하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필름이나 디렉터 같은 단어가 없었어요. 그러다 시어터라는 말이 있기에 ‘TV드라마 만드는 곳이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그건 연기코스였다. 어처구니없게 배우 공부를 시작한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친 뒤 다시 2년간 일본에서 배우 수업을 받았다. “배우 양성소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아, 이런 배우 같은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커가기도 하고요. 저에겐 그 대상이 아사노 다다노부였어요. 당시 양성소의 모든 친구들이 그를 목표로 삼기도 했죠.” 이후 연극 무대와 TV드라마에서 작은 역을 맡기 시작한 그는 2000년 TV드라마 <가면 라이더 쿠우가>에 출연했다. 당시 이 드라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히트를 했고, 오다기리 조는 ‘유명인’이 되었다. “<가면 라이더 쿠우가>는 확실히 저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이에요. 하지만 대표작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가면 라이더 쿠우가=오다기리 조’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 두려웠어요.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역할을 연기해도 그전의 캐릭터를 지울 수 없다면, 차라리 배우라는 직업을 관두고 싶어요.” 그리고 그는 열심히 ‘지우기 작업’에 돌입한다. 영화 <플라토닉 섹스>의 고독한 디제이 토시, 드라마 <천체관측>의 방황하는 청춘 키자키는 <가면 라이더 쿠우가>의 천진난만하고 바보스러운 유스케와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이제 ‘쿠우가 가면’에 가렸던 어둠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03년, 그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밝은 미래>에 캐스팅됐다.

<밝은 미래>, 연기하지 않는 연기를 배우다

<밝은 미래>는 오다기리 조에게 제2의 데뷔작이다. 그는 <밝은 미래>에서 ‘표현하지 않고 연기하는 법’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저는 연기에 너무 몰입을 하는 편이었어요. 정말 많은 준비를 하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기를 했죠. 하지만 구로사와 감독에겐 이게 오버로 느껴졌나봐요. 감독님은 저에게 ‘넌 거기 그냥 서 있기만 하면 돼’라고 말하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열심히 하다가도, ‘이렇게까지 할 필욘 없나?’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힘들었어요.” <밝은 미래>에서 오다기리 조는 테크닉을 버린다. 그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는 20대 청년의 이미지 그대로다. 독을 품은 해파리처럼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감정들이 영화 속 오락실과 회사 사무실을 배회한다.

<밝은 미래>
<밝은 미래>

그리고 이 영화에서 아리타(아사노 다다노부)와 유지(오다기리 조)는 유사 부자 관계다. 아리타는 유지에게 ‘가라’와 ‘기다려라’는 신호를 보낸다.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꿈속에서 헤매던 유지에게 아리타의 신호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그 자체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 아리타는 유지에게 ‘가라’는 신호를 남긴 채 감옥에서 자살한다. 영화가 공개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밝은 미래>는 마치 오다기리 조의 영화인생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아사노 다다노부를 목표로 삼았던 그는 이제 오다기리 조, 자기 자신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예전의 목표는 이제 어떻게 돼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 그냥 재미없어졌다고 할까요. 어떤 한 배우를 목표로 삼는 건 아니라고 봐요. 예를 들어, 조니 뎁을 생각하면, 정말 제가 보기에도 분할 정도로 연기를 잘하거든요. 할리우드에서 저런 연기가 나오다니, 정말 존경해요. 하지만 그 사람 자체가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저런 연기도 있을 수 있구나’하는 거죠. 제 연기를 보고도 누군가가 ‘저런 연기도 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면 좋겠어요. 그게 제 꿈이에요.” 당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영화 속 유지의 변화 과정과 실제 배우로서 오다기리 조의 변화 과정이 묘하게 겹친다고 얘기한다. “신인이기 때문에 처음엔 배우로서의 포지션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촬영장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니무라 유지의 본질과 매우 닯았다.” 그런 의미에서 오다기리 조는 영화 속 니무라와 함께 성장했다. 현실과 꿈속에서 좌충우돌하며 방향을 잃고 있었던 니무라, 혹은 오다기리 조는 이제 자신의 방향을 찾아 나아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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