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최고의 악당 베스트 10 [2]
2006-03-27
글 : 김현정 (객원기자)

5위 <피도 눈물도 없이>의 독불이

선정 이유: 엘리트 악당이 판을 치는 요즈음, 참으로 단순하고 무식하여 돋보이는 악당. 더불어 작명 또한 독창적이다.

그는 누구인가: 한때 권투선수였던 독불이는 투견꾼이 되어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대박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기다리다 못해 직접 대박을 만들기로 결심하면서 단순하고 난폭하기만 했던 독불의 인생은 함정과 사기가 뒤엉킨 미로처럼 변해버린다. 주먹밖에 없는 독불이가 어찌 미로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투견장의 개처럼 날뛰는 모습이 고색창연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남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여자 패는 깡패는 영화 속에서 많이 보았지만, 독불이처럼 스펙터클할 정도로 주먹을 날리는 남자는 많지 않았다.

경쟁자: <나쁜 남자>의 한기. 돈이든 여자든 한번 꽂히면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는 남자들은 역시 무섭다.

4위 <배트맨2>의 펭귄맨

선정 이유: 펭귄 닮은 외모가 왠지 마음에 든다.

그는 누구인가: 옛날 옛적 고담시의 평화로운 가정에서 괴물 같은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누가 볼세라 황급히 버려진 아이는 하수도에서 펭귄을 벗삼아 자랐고, 어느 날 아장아장 지상으로 걸어나와, ‘펭귄맨’이라고 불리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비정한 배트맨이 그의 가면을 벗기고 정체를 폭로하였으니 펭귄맨은 (어차피 이용할 뿐이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받아본 사랑을 모두 잃고 말았다. 가엾은 펭귄맨은 오랜 세월 한을 품고 꾸며낸 음모마저 실패하여 검은 피를 토하며 펭귄들에게 둘러싸여 죽고 만다. 말없이 턱시도를 차려입은 펭귄들만 그를 받아주었던 것이다. 불쌍한 펭귄맨. 그렇다면, 이 영화의 악당은 혹시 배트맨이 아니었을까?

경쟁자: 고양이 vs 펭귄, 누가 이길 것인가? <배트맨2>의 캣우먼.

3위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조씨 부인

선정 이유: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사대부 가문의 여인인데도 요조숙녀가 아니라 악녀다.

그녀는 누구인가: 유 판서의 정실 부인인 조씨(이미숙)는 오래전에 사촌동생 조원(배용준)과 첫사랑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세도가끼리의 정혼과 사촌지간이라는 천륜은 두 사람을 갈라놓았고, 조씨 부인과 조원은 모두 방탕한 호색가로 살아가는 길을 택해야만 했다. 조씨 부인은 비련의 여인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정숙한 척하면서 세상을 조롱하는 요부가 되기로 했다. 시앗으로 들어온 소옥(이소연)이 이웃집 권 도령(조현재)에게 처녀를 주도록 계획을 짜고, 조원에겐 열녀로 이름난 숙 부인(전도연)을 유혹하도록 사주하는 조씨 부인. 그녀가 조원을 향한 사랑 앞에 굴복했다는 것이 완전무결한 악녀 조씨 부인의 옥에 티다.

경쟁자: 바다 건너 <위험한 관계>의 메르테이유 부인. 미모는 조씨 부인이 위지만 악랄하기로 치면 그녀가 한수 아래다.

2위 <킬 빌>의 오렌 이시이

선정 이유: 기모노 입고 걷기도 힘들 텐데 결투까지 벌이는 투혼 그리고 잊지 못할 마지막 모습.

그녀는 누구인가: 중국과 일본인의 피가 섞인 오렌 이시이(루시 리우)는 어린 시절 조직의 보스에게 부모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침대 아래로 꽃처럼 떨어지는 어머니의 피를 맞았던 그녀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하는 보스의 성적 취향을 이용해 일본도로 그의 배를 갈라 살해하고, 일본 최고의 킬러가 된다. 빌의 여인들과 함께 브라이드(우마 서먼)와 그녀의 하객을 살해한 오렌은 일본으로 돌아가 온갖 조직을 통합하여 최고의 보스 자리에 오른다. 독하고 우아하고 예의도 차릴 줄 아는 악당. 오렌은 핫토리 한조의 검을 들고 찾아온 브라이드를 비웃지만, 그녀의 실력을 깨닫고 난 다음엔 아까 했던 말을 사과하겠다며 진정한 악당의 면모를 보여준다. 게다를 한쪽으로 벗어둔 채 눈처럼 하얀 기모노 차림으로 일본도를 잡은 오렌은 <킬 빌> 1, 2편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악당의 모습이라 할 만하다.

경쟁자: 코피가 터질 정도로 섹시하다는 복수극 <코피>의 코피(팸 그리어).

1위 <해리 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선정 이유: 세대를 넘나드는 장수 악당.

그는 누구인가: 톰 리들리는 외로운 아이였다. 머글(사람)이지만 마법사의 재능을 가지고 있던 톰은 자기 부모를 살해했고, 어둠의 마법을 불러들여, 볼드모트라는 가장 강력한 마법사가 되었다. 볼드모트는 절대악이므로 어떤 악당이라도 이에 범접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법사들이 이름을 부르기도 무서워서 보통 ‘그’라고만 칭하는 악당. 그러나 어린 해리를 죽이려다가 그 이마에 번개모양의 흉터만 남겨놓은 채 볼드모트 자신은 육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유일한 흠은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시절부터 유지해온 해골에 비닐 씌어놓은 듯한 각이 안 잡히는 외모였지만,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육체를 얻었으니 다음 편을 기대해볼 만하다. 게다가 가늘고 우아한 손가락을 가진 배우 랠프 파인즈가 볼드모트 역으로 캐스팅되지 않았는가!

경쟁자: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사우론. 불타는 눈동자가 멋있지만, 불타는 눈동자밖에 없기에 리스트에서 탈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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