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객잔]
옛 영화의 경이로운 발견, <미몽> <반도의 봄>
2006-03-29
글 :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영상자료원이 발굴한 일제강점기 영화 <미몽>과 <반도의 봄>을 보다

중국전영자료관에서 한국영상자료원에 도착한 세편의 일제강점기 영화, <미몽>(죽음의 자장가)(양주남, 1936), <반도의 봄>(이병일, 1941), <조선해협>(박기채, 1943)을 보았다. 지난 3월2일부터 5일까지 상영되었고 이중 <미몽>은 재상영할 것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약 160편의 영화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볼 수 있는 영화는 11편 정도다. 한국영화에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 일제강점기 영화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아! 식민지 아카이브!, 텅 빈 아카이브를 사무쳐하며 한국영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눈으로 그 영화들을 확인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활약에 감사할 일이다.

신여성에 대한 사회적 흥분, <미몽>

이중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필름으로 자리매김한 <미몽>에는 <빨치산 처녀>로 북한의 공훈 배우로 알려진, 1930, 40년대 지명도 있었던 영화배우 문예봉이 출연한다.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영화인 <지원병>(안석영, 1941)과 <군용열차>(서광제, 1938), <조선해협>에서도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앙각으로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부드러운 이마의 융기와 섬세하지만 어떤 날카로움이 들어 있는 얼굴선 그리고 눈과 입술의 미묘한 곡선은 저절로 탄식을 토하게 한다. 위의 영화들에선 당시 대중에게 사랑받을 참한 역할을 한 데 비해 <미몽>에선 “나는 새장의 새가 아니에요!”라며 집을 뛰쳐나간 뒤 호텔에서 연인과 함께 생활하는, 딸을 둔 기혼녀 애순 역을 맡는다. 이 영화는 조선어, 일본어 발성판 두 가지로 제작됐다고 하며 당시 광고문은 다음과 같다. “어떤 방탕녀의 이면을 묘파(描破)한 행장기(行狀記)요 상괘를 벗어난 인생의 고백록이다.”

<미몽>

이 센세이셔널한 1936년 광고문을 이해하기 위해선 20년대 이후 신여성과 모던 걸이 식민지 경성을 뒤흔드는 근대의 초감각적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신여성 나혜석이 1934년 <삼천리>에 <이혼 고백장>을 발표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혼 고백장>의 사회적 파장 2년 뒤 만들어진 영화에서 애순 역의 문예봉이 또 한 차례 ‘방탕녀’의 인생의 고백을 강요받는 셈이다. 1956년 <자유부인>과의 차이점은 ‘자유부인’의 성적 자유 추구권이 여성 관객의 감응을 비교적 양가적으로 도발시키고 있다면, <미몽>은 딸을 두고 집을 나간 애순을 철저하게 단죄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타고 가던 택시에 부딪쳐 딸이 차사고를 당하자 애순은 음독자살을 한다. 딸을 두고 집을 나가 다른 남자와 호텔에 기거하는 여자의 욕망이 분출된 것을 두고 <자유부인>과의 비교를 시도할 수 있으나 그보다는 20, 30년대 신여성과 모던 걸에 대한 사회적 흥분과 그 뒤에 따른 질책이나 고백담의 강요라는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편이 생산적일 것이다.

시대적 인터(간) 텍스트적 성격과 더불어 텍스트로서의 <미몽>의 흥미로운 점은 적응 불가능한 템포, 초기 발성영화로서의 고약한 녹음에서 나오는 고음, 몽타주 그리고 여배우 문예봉의 산만한 연기(바로 다음해인 1937년 <인생항로>에서 문예봉이 영화 후반에 사라졌다 하여 <조선일보>의 L. P. K라는 평자는 그녀를 영화계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질타한다), 원인과 효과를 잇는 서사 진행 시간의 불균질한 배분 등으로 히스테릭한 기운과 징후를 처음부터 끝까지 발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1926년 <아리랑>에서 영진(나운규)의 영화 속 악몽과 광기가 곧 민족적 분노로 번역될 수 있는 것이라면(영화를 볼 수 없는 관계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로부터 10년 뒤 <미몽>의 광기는 소비지향적이고 여성적인 것으로 분출되고 처단된다.

경이로운 발견, <반도의 봄>

<미몽>이 히스테릭하다고 한다면, 이번에 소개된 일제강점기 영화 중 경이로운 발견은 <반도의 봄>이다. 통상적으로 1940년대 조선 영화계를 암흑기라고 하는데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가 가속화하던 1939년에는 일본 영화령이, 1940년 8월에는 조선 영화령이 발표된다. 그리고 1941년 일본이 2차대전에 가담하면서 전시체제는 더욱 심화하는데 <반도의 봄>을 감독한 이병일은 조선 영화령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선영화제작자협회에 속한 10개 제작사 중 명보영화합자회사의 대표이기도 하다. 나운규 영화에 계급의식이 없다고 강렬히 비판하던 서광제가 위의 <군용열차> 같은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들던 시기 <반도의 봄>은 반도영화사와 동아레코드 같은 당시의 대중문화 생산 공간을 영화 내로 가져와 영화 <춘향전>의 제작과정에 개입하는 자본과 새로운 스타의 탄생 그에 따르는 남녀관계의 오해와 화해 등을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감독 이병일은 1956년 <시집가는 날>(맹진사댁 경사)로 전후 한국 영화사에 명감독으로 남는데, 일본 닛카쓰 영화사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배운 이력이 있다. <춘향전>을 완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반도의 봄>은 자기 반영(self-reflexive)적으로 가져오고 있으며, 영화는 <춘향전>의 한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있던 노인 관객이 옆에서 “이거 뭐야? <춘향전>이네”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에서 평양 출신으로 영화배우와 가수를 꿈꾸며 경성에 올라온 정희 역의 배우 김소영에게 예의 당대의 여배우 문예봉은 최정희가 진행한 <삼천리>의 김소영, 김신재, 지경순이 참석한 대담에서, “소영씨의 연기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에 “<반도의 봄>에서도 소영씨는 지나친 연기를 했다고 봐요”라고 지적한다. 이어진 <반도의 봄>에 대한 대화에서 김신재는 “화면이 퍽 깨끗하지요”라고 평하고 기자로 참석한 작가 최정희가 “거기 나오는 구름이 퍽 좋더군요. 오래 봐도 싫지 않을 구름이더군요. 서양영화에서도 별로 못 보는 구름이 아닐까요?”라고 감탄하자 김신재는 “<역마차>에도 좋은 구름이 있지요. 무슨 일이 금방 터질 것 같은 구름이”라고 답한다.

김신재의 지적처럼 <반도의 봄>은 심도(depth of field)촬영이라든가 얼굴의 클로즈업,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쫓는 트래킹 숏, 프레이밍 등의 짜임새가 상당히 정밀한 영화다. 거리를 걷는 두 사람을 따라가는 트래킹 숏이나 발의 클로즈업에서 드러나는 관계나 심리묘사, 심도 깊은 촬영으로 포착된 실내 풍경 그리고 심리적 풍경으로서의 구름의 인서트 등은 이후의 신상옥이나 이만희 감독의 작품을 충분히 예견하게 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진행되는 <춘향전>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몸의 기호학- 춘향과 향단이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해 서로를 안고 있는 장면, 정자 기둥에 기대선 춘향의 기다림의 몸짓, 가야금 연주장면, 면경과 옥지환을 교환할 때의 춘향과 몽룡- 과 공간의 기호학-, 정자 주변의 인물과 공간의 배치, 실내에서 세명의 남녀가 앉아 있을 때의 배열 등- TV나 영화의 시대극들이 참조 문헌으로 들여다볼 만한 몸과 공간을 표현하는 독특한 문화적 특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사 벽에 붙어 있는 갖가지 영화 포스터 중 독일 파시즘의 아이콘이었던 자라의 모습은 당시 조선 문화계에도 침투한 파시즘 문화를 일별할 수 있다.

이중의 자기 성찰적 순간 보여주는 <반도의 봄>

<반도의 봄>

이 모든 것과 더불어 <반도의 봄>의 가장 의미심장한 장면은, 두겹의 이중의 자기 성찰적 순간에 있다. 재정난으로 <춘향전>이 위기에 처하자 공금 횡령이라는 방법을 동원해 자본을 구하고, 여자주인공 안나 -춘향이 정희-춘향으로 바뀌어 영화의 제작은 계속된다. 남원의 광한루로 설정된 정자에서 춘향과 몽룡, 향단과 방자의 감정의 교류가 있은 뒤 카메라는 뒤로 빠지면서 조명을 위한 리플렉터를 들고 있는 포졸 복장의 남자 스탭을 보여준다. 스탭과 제작자, 배우들은 한복과 양장을 입은 채 뒤섞여 있다. 이제 촬영이 종료되고 사람들은 기자재를 챙겨 광한루를 떠난다. 놀랍게도 카메라는 떠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한동안 보여준다. 뒤에서 관찰된 영화 촬영을 마치고 돌아서 걸어가는 일군의 사람들의 모습. 바로 이 순간이 나는 식민지적 근대성에 대한 성찰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내내 일본어와 조선어가 뒤섞여 있고, 한복과 기모노 양장이 공존하고 있으며 영화의 종결부는 근대적 주식회사로 바뀌게 되는 반도영화사의 속내와 <춘향전> 이야기가 병행된다.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처리된 텍스트의 배열 속에서 포졸 복장의 스탭(엑스트라나 단역으로 출연했을 법한)이 조명을 처리하고 있다. 이후 양장과 한복을 뒤섞어 입은 사람들이 광한루를 뒤로하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카메라가 후면에서 오래 관찰하는 장면을, 70년 만에 중국을 우회해 한국영상자료원으로 돌아온 <반도의 봄>을 통해 지켜보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미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의 흑인 인권가였던 두 보이스(W. E. B. Du Bois)가 1903년 고전 <흑인의 영혼들>(The Souls of Black Folk)에서 이야기했던 ‘어떤 미묘한 감흥’, ‘피큘리어 센세이션’(A peculiar sensation)과 감응을 일으킨다. 이 미묘한 감흥을 두 보이스는 ‘이중의 의식’으로 진단하면서 타자의 눈을 통해 자신의 들여다보고, 미국인이자 니그로인 이중성과 싸워야 하는 검은 육체라는 전쟁터를 이야기한다. 프란츠 파농 역시 피식민지인, 흑인에게 부가된 이중의 참조틀 이라는 존재론적 곤궁을 이야기한다.

영화적으로 잘 짜여진 <반도의 봄>을 볼 때 관객을 파고드는 이중의 의식 그리고 영화의 이중 삼중의 장치들- 영화제작의 전면과 이면에서 전개되는 영화, 영화 안의 거울 구조(미장 아빔), 반도영화사라는 영화 속 성공담이 일본 자본이 조선 영화계에 완벽하게 침투하는 조선 영화계의 실패의 순간이라는 역설, 성공적 개봉을 마치고 마지막 일본 영화계 견문을 위해 떠나는 남녀주인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어리는 착잡한 표정- 은 영화의 빛나는 텍스트적 순간에도 현재의 관객을 파고든다. 또 당시 <심청전>의 여배우 김신재와 작가 최정희가 마치 뜬구름 잡기처럼 위의 대화, “거기(<반도의 봄>) 나오는 구름이 퍽 좋더군요. 오래 봐도 싫지 않을 구름이더군요. 서양영화에서도 별로 못 보는 구름이 아닐까요?”를 나눌 때 최정희는 반일(이규환 감독은 얽히기 싫어 만주로 도망갔다)과 친일로 양분될 수밖에 없는 당시의 정황 속에서 또 다른 의미의 어떤 미묘한 감흥을 일으키는 구름에 눈을 준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누가 구름처럼 살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있기를 바랐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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