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브이 포 벤데타> 읽기 [1] - 자극적이지만 공허한 영웅담
2006-04-12
글 : 짐 호버먼 (칼럼니스트 영화평론가)
철저하게 무책임한 피날레

앨런 무어의 그래픽 소설을 워쇼스키 형제가 각색하고 <매트릭스> 조감독 제임스 맥티그가 만든 <브이 포 벤데타>는 가장 자극적인 펄프픽션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무정부주의 테러를 보여주는 영화를 보기는 힘들 테니까.

<브이 포 벤데타>는 주제의식을 빼면 별 볼일 없는 영화다. 가짜 뉴스가 범람하고 외국인에 대한 공포가 가득 찬 전체주의적 런던을 배경으로 영화는 펼쳐진다. 하지만 영화는 역사적으로 더 긴 안목을 견지한다. 크레딧이 오르기 전 장면들은 17세기 가이 포크스와 가톨릭 광신자 결사단이 영국 정부를 전복할 목적으로 의사당 밑에 숨겨둔 ‘36배럴의 화약사건’을 보여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V(휴고 위빙)가 가이 포크스의 마스크를 쓰고 런던을 공포로 모는, 이 취향없는 <브이 포 벤데타>는 가이 포크스의 날 400주년이 되는 지난해 11월에 개봉될 예정이었으나 런던 지하철 폭파사건으로 개봉이 밀렸다. 무어의 원작과 비교해 워쇼스키의 시나리오가 가진 장점은 포크스 가면을 쓰고 다니는 일종의 자살 폭파범을 혁명의 주체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잡다한 만화적 수사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숨겨진 정체, 화려하게 맞춘 두운법적 대사와 명언의 집합을 보여준다. V는 장대하게 설명한다. “우연이란 없어. 우연의 환상이 있을 뿐이야.” 다시 말해 줄거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인데, 사회적 기능이 기괴하게 현대적인 반면에 <몬테 크리스토 백작>처럼 브이는 부분적으로 19세기 상상에 근거하고 있다.

조롱조의 웃음을 띤 영웅은 배트맨인 자신에게 스스로 조커가 된다. 마스크는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이 쓰던 스키 마스크를 떠올리고 그가 남기는 표시는 거꾸로 하면 무정부주의자의 A가 된다(붉은 여단은 70년대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 극좌테러단체- 역주). 이 공허한 표시는 공포를 조장하는데 기호학자에게도 상징에 대한 공격이 될 듯하다. 거기에 춤의 혁명적 중요성에 대한 에마 골드먼의 말을 빌리고 있다(에마 골드먼은 페미니스트 개척자로 추앙받는 반폭력 공산주의적 무정부주의자- 역주). 지하에는 골동품 주크박스가 있어서 낭만적인 브이는 줄리 런던의 <Cry Me a River>를 듣는다.

무어의 이야기는 80년대 대처시대의 영국과 조지 오웰식 디스토피아를 융합해 3차대전 뒤 나치 스타일의 집단수용소에 근거한 정권을 상상하며 나왔다. 워쇼스키 형제는 이 전제를 약간 바꾼다. 2040년 영국은 혼돈에 빠져 있다. 비밀교도소와 생물학 무기로 뒤덮인 영국은 파시스트 국가로 총리는 커다랗게 부풀린 비디오 이미지로 나타난다. 한편 사회운동가 부부의 딸인 이비(내털리 포트먼)는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다. V라는 배역의 추상성을 생각할 때 이비는 영화에서 가장 인간으로 느껴지는 인물이다. 포트먼은 잔다르크 요소를 배역에 불어넣고 있다. 경찰에 잡혀 고문당한 뒤엔 조그만 토끼눈의 마리아 팔코네티처럼 보인다(팔코네티는 1928년 무성영화 <잔다르크의 열정>에서 잔다르크 역을 연기한 배우- 역주).

사회를 조정하는 수단에는 런던의 목소리로 알려진 빌 오라일리 같은 배역이 포함된다(빌 오라일리는 미국 <팍스 뉴스>의 사회자로 독설적이고 보수적인 정치 발언으로 유명하다- 역주). 그 반대편엔 불온한 토크쇼 호스트(스티븐 프라이)가 있는데 총리를 조롱하고 결국 그 값을 치르게 된다. 분명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의 아이디어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V가 런던의 형사재판소인 올드 베일리를 폭파시키자 정부는 예정된 건물 폭파라며 가짜 뉴스를 내보낸다. 안개 도시에 가득한 음모들로, 테러리스트를 쫓는 수사관(스티븐 레아)은 자기 자신을 수사해야 할 판이다.

<매트릭스>를 통해 워쇼스키가 장 보드리야르에 대한 지식을 배반했다면 <브이 포 벤데타>는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를 추구하고 있다. <지배와 사보타지>를 쓴 오래된 극좌 안토니오 네그리와 <제국과 다중>을 마이클 하트와 공저한 네그리 둘 다(<제국과 다중>은 심지어 제국이 어떻게 피지배 계급의 창의적인 ‘사회적 생산성’을 키우는지에 대한 예로 <매트릭스>를 언급한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V의 선언은, 네그리와 하트식 민주주의에 대한 소비문화적 발언이다. 이론가들이야 V를 레닌식 혁명 엘리트에 대한 대립으로 승인할 것이다(네그리와 하트는 사회주의 사상가이다- 역주).

이 영웅은 이름만 없는 게 아니라 개성도 없다(왜 휴고 위빙을 캐스팅했을까? 차라리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버리지). <브이 포 벤데타>의 중요한 장면에서 대중은 신비하게 연락을 받고 우습게도 자신들의 지도자와 같은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다. “1812년 서곡”, 롤링 스톤스 , 말콤 엑스와 글로리아 스타이넴을 섞어놓은 듯한 철저하게 무책임한 피날레가 그들을 맞이한다. <브이 포 벤데타>는 그 자체의 모순 속에서 낡고 인기있는 신화를 새롭게 만들고 있다. 그러니 웃지 않을 수 없다. 그저 그 발상이 기특하다고 해야겠다.

번역 이담형| 2006. 3. 14.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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