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열흘만에 108만명 동원 <달콤, 살벌한 연인> 손재곤 감독
2006-04-17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사진 : 이정용 (한겨레 기자)

로맨틱코미디와 스릴러를 독특하게 엮은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은 지난 15일 개봉 2주만에 전국 108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순제작비 10억원 안짝의 작은 예산과 신인 감독에 톱스타 없는 캐스팅으로 제작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며 18살 이상 관람가 등급까지 받은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성공이다.

<왕의 남자>처럼 일반 시사회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 흥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타성은 크지 않지만 찰떡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캐스팅과 엽기적이면서도 ‘오버’하지 않고 재기발랄한 대사들이 주효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첫 연출까지 맡은 손재곤(34) 감독은 한겨레영화학교 동기들과 팀을 이뤄 찍었던 <너무 많이 본 사나이>가 2000년 부천국제영화제에 초청받으면서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재밌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도 했다. 둘다 코미디다.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대사를 태연하고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녹이는 유머감각은 손 감독과 <달콤, 살벌한 연인>의 특출난 재주다. “특별하다기 보다는 슬랩스틱을 빼고 모든 종류의 농담이나 코미디를 다 넣은 거죠. 이를테면 도스토예프스키를 카레이스키로 착각하는 장면은 영어 단어로 말장난을 만드는 조폭코미디와 비슷하죠. 다만 웃기면서도 이상한 불쾌감이나 거북함을 주는 건 피하려고 했어요.”

어린 시절 문고판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고 우디 앨런을 좋아한다는 손 감독은 첫 영화를 코미디로 만들려고 했지만 로맨틱코미디는 그의 ‘소관’이 아니었다. “감독을 준비하면서 건네받았던 시나리오 중에 로맨틱코미디가 여러편 있었는데 별로 맘에 들지 않았어요. 좀 다르게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한번 도전해본 거죠.” 그래서 남자가 주인공인 로맨틱코미디를 구상하다가 <탐정을 찾아라>라는 외국 추리소설에서 여주인공의 캐릭터를 빌려와 합친 게 <달콤, 살벌한 연인>의 얼개가 짜인 과정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는 “내가 한 건 없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공이 크다”라고 말하는 신인 감독들의 인터뷰를 보며 ‘괜한 겸손이 아닐까’생각했는데 영화를 찍고 나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다고 한다. “경험이 적으니 거의 매순간이 예측불능이고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예요. 속은 어리벙벙하고 새까맣게 타들어가는데 겉으로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감독을 ‘연기’한 셈이죠.” 박용우가 여러 인터뷰에서 멍석을 깔아준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에 대해서도 “연기연출에 뾰족한 대책도 없고 손 놓을 수밖에 없어서 본의 아니게 자유를 허용했다”며 영화만큼이나 능청스러운 농담으로 대응했다. 다만 손 감독이 주인공 황대우와 비슷하다고 박용우가 흘리고 다니는 말은 “절대 사실이 아니며 나는 연애 못해 본 황대우와 달리 20세기에 2번, 21세기에 한번, 합해서 세번이나 연애를 한 사람”이라고 반박한다.

싸이더스에프엔에이치에서 두번째 작품도 준비중이다. ‘범죄자가 범죄를 모의하는 과정에서 겪는 사건’을 그리는 영화로 <달콤, 살벌한 연인>과 마찬가지로 “외형은 장르의 틀을 빌려오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하게 변주를 하는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그러면서 부지런히 빨리빨리 만들어서 김기덕 감독의 작품 “수”를 따라가는 게 장기적인 목표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포부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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