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은 2006년 2월 말 현재 4445편의 극영화필름과 6만1694권의 시나리오, 16만1638점의 스틸, 1만5390점의 포스터를 보유하고 있다. 필름을 가득 실은 선반이 한없이 줄지은 필름 보관고를 비롯해서 자료원의 각종 자료 보관고에 들어서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놀라운 것은 이 자료 중에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들은 이제 막 50%를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자료를 DB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복원상태 때문이 아니라, 개별 자료를 분류하고 각각의 영화와 연결시키는 작업이 미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상자료원이 게을렀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한국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가 워낙 부족한 현실, 나아가 기록과 보존에 유난히 서툰 우리의 문화 자체가 문제다. 수집을 게을리하지 않는 아카이브가 미확인 자료에 상시적으로 시달리는 것 역시 당연하다. 예산과 인원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미확인 자료가 많다는 것은 한국 영화사 연구에 아직도 많은 여지가 존재한다는 의미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자료원의 연구원이 자료분석을 통해 한국 영화사의 사실들을 확인하는 실제 과정을 탐사보도 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한 것은, 이를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추론 60분>은 오는 5월 이만희 감독 전작전을 준비 중인 영상자료원이 그의 필모그래피를 확인하는 과정을 취재했습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이만희 감독의 회고전이 열릴 때까지만 해도 그의 연출작은 1961년작 <주마등>부터 1975년작 <삼포가는 길>까지 51편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영상자료원쪽은 그의 연출작이 50편이라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만들어졌다고 여겼으나 그렇지 않았던 한편의 영화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왜 여지껏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문제가 되고 있는 작품은 1967년작 <흙바람>과 1968년작 <외출>입니다. 둘 중 하나는 실제 영화로 이어지지 않았거나, 사실은 동일한 영화였다는 것이죠. 이만희 감독의 연출작 중 자료원이 어떤 형태로든 영상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23편입니다. 그리고 위의 두편은 현재로선 시나리오로만 존재하는 영화입니다. 영상자료원이 이 두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197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개봉했던 영화에 대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한국영화총서>와 등급위원회의 심의자료가 존재합니다. <외출>은 심의자료에 심의를 받았던 날짜가 남아 있고, 개봉 당시의 포스터도 자료원에서 보관 중입니다. <흙바람>은 여성지 <여원>에 개봉과 관련한 짧은 기사가 수록된 바 있습니다. 문제는 <흙바람>과 <외출>, 연이어 만들어졌다는 두 영화 사이에 무시 못할 공통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범죄조직에 속한 남자와 한 여인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신병원 등이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는 줄거리는 물론이고, <주간 한국> 추리소설 당선작가인 최수원의 원작을 토대로 한 추리활극이라는 장르, 등장인물의 이름, 주연배우와 촬영감독 등 주요 스탭까지 일치합니다. 이만희 감독은 과연 이 두편의 영화를 모두 완성했을까요.
이만희 감독의 <흙바람>과 <외출>은 동일한 영화?
일단 영상자료원이 소장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비교해봅시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작가 한우정이 쓴 <흙바람> 시나리오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주요 크레딧이 기재된 앞부분을 보면 등장인물 밑에 배우의 이름은 볼펜으로 필기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깨끗합니다. 그러나 후기 이만희 감독의 브레인이었던 백결이 집필한 <외출> 시나리오는 다릅니다. 대삭(대사삭제), 화삭(화면삭제) 등 색연필로 갈겨 쓴 당시의 검열용어와 각종 표시가 눈에 띕니다. ‘공갈’이라는 큼직한 메모도 보이는군요. 말이 안 되는 허황된 내용이라 문제가 됐다는 것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당시의 허술한 검열기준을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국의 엄격했던 영화검열은 영상자료원의 자료분류, 검색작업을 방해하는 커다란 요인 중 하나입니다. 검열당국은 완성된 작품은 물론이고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가위질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1977년 통계에 의하면 한해 동안 접수된 202편의 시나리오 중 반려된 것이 4편, 전면개작과 개작을 요구한 것이 각각 15편과 22편에 달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A라는 제목의 시나리오가 검열을 거쳐 B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고, 완성된 영화가 또다시 검열 이후 C라는 제목을 달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감독이며 제작사 이름까지 바꾸는 대명제작의 성행도 결정적인 문제입니다.
다음으로 시나리오의 내용을 직접 확인해보았습니다. 디테일과 사건 순서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동일한 시나리오를 다듬는 과정에서 변모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시나리오가 퇴고를 거듭하면서 달라지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과정이죠. 예를 들어 유난히 여러 버전의 시나리오를 썼던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비슷한 내용으로 제목만 다른 시나리오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고, 관계자는 증언합니다. 이런 배경들이, 시나리오의 존재만으로는 영화화까지 이어졌는지, 어떤 영화로 완성됐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낳은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두 시나리오가 동일한 영화를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흙바람>은 영화제작 전 제출된 심의용 대본이고, <외출>은 완성된 영화의 심의를 위해 제출한 녹음대본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외출> 시나리오에는 녹음실에서 단순히 대사를 정리하거나 삭제한 빨간 볼펜의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유일하게 <흙바람>의 존재를 증명했던 잡지 기사는 영화의 제목이 바뀐 팩트를 미처 기록하지 못한 오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자료원은 이만희 감독의 연출작을 총 51편에서 50편으로 수정하고, <흙바람>은 필모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우리는 <외출>의 시나리오 작가 백결 선생님을 인터뷰한 영상자료원 연구원과의 통화를 통해, 워낙 오래된 일이라 본인이 확실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러한 추론이 거의 사실임을 확인 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영상자료원쪽은 현재 제작 정보가 입력되지 않은 채 기타로 분류되어 있는 5천여권의 시나리오에 대해 올 하반기 안으로 전면적인 실사에 들어갈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막막하고 까다로운 작업이 되겠지만, 이를 통해 한국 영화사가 좀더 내실을 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필름자료 분석현황
자료원에는 뤼미에르 영화 프린트가 있다?
영상자료원이 뤼미에르 형제가 찍은 기록영화 프린트를 보유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장광헌 팀장은 자신의 초년 시절인 1990년대 중반, 일상적인 실사 작업 중 튀어나온 뤼미에르 필름을 회고하며 웃는다. 필름캔에 불어로 뤼미에르라고 적힌 걸 보고 영사기에 걸어보았는데, 그것이 진짜 뤼미에르 형제의 것인지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후 영화서적에 수록된 스틸을 통해 이를 확인했지만, 러닝타임도 짧고 일반인들에게 공개할 만한 여유도 없었기에 그냥 보관 중이라고 그는 말한다. 현재 자료원은 2002년 프랑스로부터 기증받은 것을 포함하여 두벌의 뤼미에르 필름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그처럼 미처 존재여부도 몰랐던 자료가 나타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기타 항목으로 분류된 자료, 따라서 앞으로 정리, 분석해야 할 미확인 자료는 차고 넘친다. 수량만으로는 시나리오가 최고겠지만, 시급함과 막막함 면에선 필름을 따를 수 없다. 복원하는 데 필요한 자금도 문제고, 특수한 필름은 영사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크레딧을 확인할 수 없거나, 기존 문헌자료 등에서 제작과 개봉 정보를 찾을 수 없어 제작연도는 물론이고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한 영화가 100편이 넘는다. 대부분이 1970년대 초·중반 테크니스코프 방식(2.35:1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 한 프레임을 두 프레임으로 촬영한 방식)으로 제작된 영화들이나 1960, 70년대 지방 순회상영을 노린 16mm영화들이다. 테크니스코프영화는 액션영화나 B급영화가 대부분이어서 당시 대중영화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임에도 영사기가 없어 상영 자체가 어렵다. 16mm영화는 프린트를 확인하긴 했으나 정식 개봉작이 아니어서 제작연도가 없고, 출연한 배우나 감독의 이름 역시 무명에 가까워 별다른 정보가 되지 못한다. 한 자료원은 제목이 <대장화홍련전>인 16mm영화가 수집됐을 당시 정창화 감독의 <대장화홍련전>이 발굴됐나 싶어 흥분했다가 무명감독의 동명영화임을 확인하고 실망했던 일화를 들려준다. 확보된 필름의 제작연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다. 엘리어스 버튼 홈스가 한국의 풍속을 촬영한 <한국-Korea Elias Burton Holmes의 기행기록영화>가 그 예. 전차를 타고 동대문 부근을 찍은 것이 분명한 컷을 바탕으로, 그의 한국 방문 일정, 서울에서 전차를 운행했던 기록을 대조한 결과 현재는 1899년작으로 확정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