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인터뷰] 전주국제영화제 유운성 프로그래머
2006-04-27
글 : 오정연
사진 : 이혜정
“새로움에 집착하기보다는, 꾸준히 내공을 쌓겠다”

“아무래도 두 번째니까 작년보다는 편하다.”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특유의 여유있는 웃음을 짓는다. 그는 올해로 프로그래머 2년차를 맞았다. 각종 잡일을 처리하느라 아침 9시에 퇴근했다가 4시간 만에 출근했음에도 피곤한 기색은 없다. 전주 영화제의 특징 중 하나는 두 명의 프로그래머가 일체의 역할 분담없이 모든 영화를 함께 본 뒤에 상영작을 결정한다는 점. 영화제의 위상이 높아지고 출품작이 많아지면서 그런 체제가 더욱 힘들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프로그램이 안정적인 통일성을 지닐 수 있기에” 당분간은 이를 고수할 예정이다.

그가 올해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낯선 영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계획한 각종 행사들. 실험영화 섹션인‘영화보다 낯선’에서 특별전을 갖는 피터 체르카스키 강연회, 리트윅 가탁의 영화에 대해 그의 아들이자 배우인 리타반 가탁과 자칭‘가탁 애호가’인 영화이론가 조너선 로젠봄이 대화하는 시네토크 등이 그것이다. 지난해 실험영화 감독 피터 쿠벨카의 쉽고 재미있는 강연회가 영화학도는 물론이고 초보 관객들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에서 용기를 얻어 학구적인 세미나를 줄이고, 다양한 관객체험이 가능한 행사를 늘린 결과물이다. 그런 시도가 이미 모종의 효과를 거둔 것일까. 그는‘영화보다 낯선’섹션이 장편 두편을 제외하곤 전회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며 놀라워한다.

올해 상영작 중에는 중국 본토에서 만들어진 영화가 한 편도 없다. 이는 자신있게 관객들에게 내보일만한 작품을 향한 유 프로그래머의 엄격한 기준을 보여준다. “정말 많은 중국영화를 봤지만 마땅한 작품이 없었다”는 그는 중국 본토 영화를 한편이라도 포함시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초청을 포기했다. 올해 영화제의 특징을 묻자, 그는 최소 3,4년 간 현재의 틀을 유지하며 각 섹션의 특성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래밍으로 내실을 갖출 계획이라고 답한다. 새로움에 집착하기보다는, 꾸준히 내공을 쌓는 것. 이는 전주 영화제의 미래를 위한 그의 해법이기도 하다.

내가 관객이라면 이 영화 본다.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상영작 BEST 10

평범한 연인들(필립 가렐, 2005) 타임머신을 타고 68혁명 시기로 돌아가서 찍은 듯한 영화.
퍼펙트 커플(스와 노부히로, 2005) 프랑스 영화의 전통과 일본 영화의 매너, 감독의 스타일이 완벽하게 결합됐다.
두오로 강의 노동자들(마뇰 드 올리베이라, 1931) 올리베이라의 초기작. 요즘 그의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깜짝 놀랄만한 스타일.
콘크리트 컨스트럭션(요리스 이벤스, 1930)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음악적으로 편집되어 일종의 실험 영화같다.
사이트 스페시픽 삼부작(올리보 바르비에리, 2004~5) 일단 보면 절대 후회 안 할, 아방가르드 블럭버스터. 로마, 상하이, 라스베가스, 익숙한 세 도시에 대한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노동자의 죽음(미카엘 글라보거, 2005) 영화제 시작 전, 모든 매체에 추천작으로 꼽았지만 그 어떤 매체도 소개하려 하지 않았던 비운의 걸작. 그러나 작년 최고의 다큐멘터리.
폴리스 비트(로빈슨 드버, 2005) 첫 10분 동안 받았던 인상을 완전히 뒤엎는다. 세상에는 이런 영화도 있다.
검은밤, 1961년10월17일(알랭 타스마, 2005) 오늘날에도 의의를 지니는 파리 대학살을 소재로 한 극영화. 수많은 등장인물을 초반부에 확실히 정리하는 구조가 인상적이다.
사이에서(이창재, 2005) 무당이라는 소재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지만, 다큐멘터리로서 등장 인물의 드라마를 이처럼 정갈하게 살렸다는 것이 놀랍다.
천상고원(김응수, 2006)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에서 감지된 김응수 감독의 비전에 대한 일종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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