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사라진 여인을 찾아 떠난 고통스런 여행, <천상고원>
2006-04-30
글 : 이영진

천상고원 Heavenly Path
감독 김응수/한국/2006/75분/디지털 스펙트럼

K는 갑자기 사라진 연인 E로부터 엽서를 받아든다.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가장 잔인했던 나를 용서하지 않길 바란다”며 종적을 감춘 E.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떠나버린 것일까. 엽서가 일러주는 대로, 델리에서 히말라야를 거쳐 고원 라다크로 향한 그녀를, K는 뒤쫒기 시작한다. 그러나 증발한 궤적을 따르는 여정은 만만치 않다. K는 고산병에 시달리고 차는 멈춰서길 반복한다. 고통스런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하는 K의 물음은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동행자에게 길의 끝이 어딘지를 수시로 묻던 K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K는 어느새 길의 시작이 어딘지 침묵으로 추궁한다. 로드무비 <천상고원>은 보는 이들까지도 좀처럼 내키지 않는 여정에 동행하게 만든다. 고지대 평원에서 자신의 그림자 위에 토사물을 게워내는 K의 자기 부정은 덜컹거리는 차 안을 들여다 보는 관객에게 점점 전염된다. 대상에 대한 응시를 거두고 내면을 들여다보는 K의 초점 잃은 동공을 카메라가 클로즈업할 때 연민의 감정도 생겨난다. 오르기 위해선 덜어내야 하고, 나아가기 위해선 버려야 한다는 깨달음. 그 깨달음을 체득하고 나서야 K와 또다른‘K’들은 라다크에서 웃을 수 있다. K가 라다크 사람들에게 3년전 찍었던 사진을 나눠주는 후반부에 이르면 엽서의 발신자가 E가 아닌 바로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다. 코발트 빛 하늘로 인물의 고통을 씻어내는 카메라, 편두통과 환청을 유발하는 사운드 등도 K의 심리적 여정을 풍성하게 그려내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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