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소식]
[포럼] <천상고원>의 김응수 감독과 박기웅 촬영감독, 관객과 대화
2006-05-01
글 : 이영진
모두가 함께한 ‘고행’의 시간

“아. 머리 아파∼”천상고원을 다녀온 이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어지럼증부터 호소했다. 30일 오후 3시15분, 메가박스 6관에서 열린 <천상고원> GV(게스트와의 만남). 184개 좌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뿐 아니라 다시 영화를 관람한 김응수 감독과 박기웅 촬영감독, 그리고 "큰 스크린으로 본 건 처음"이라는 유운성 프로그래머까지 모두들 끝없이 ‘황량한 풍경’을 맛본 후유증을 호소했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일부러 흔들리게 촬영한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관객석에서 맨 먼저 터져나온 것은 당연한 일. 김응수 감독이 슬쩍 넘긴 마이크를 얼떨결에 건네 받은 박기웅 촬영감독은 “안 흔들고 싶었다. 꽉 잡는다고 잡았는데 흔들렸다(웃음)”면서 “편집하면서 감독과 관객들도 같이 멀미를 해야 한다는 말을 나눈 적이 있다. 미안하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치는 않는다”고 말했다.

<천상고원>은 갑자기 사라진 연인을 찾아 K가 히말라야 고원의 한 마을 라다크로 향하는 로드무비. 극중 K를 직접 연기한 김응수 감독은 영화 속에서 고산병과 여독으로 인해 끊임없이 구토를 한다. 그리고 그의 구토는 점점 관객들에게 전이된다. 김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냐는 한 관객의 질문에 “토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지금도 멀미가 난다”는 농담으로 받더니 “(라다크로 가는 고행은) 지금까지 저질렀던 내 위선과 가식들에 대한 처벌이기도 하다”며, “누구나 한번쯤 사라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사실 그걸 행하기엔 좀 무섭지 않나. <천상고원>을 통해 난 대리충족을 한 셈”이라고 뒤이어 설명했다.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는 한 외국관객의 질문에는 “주인공은 (침묵하고 있지만 실은) 자연과 대화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상고원> GV는 다른 만남의 자리보다 훨씬 길어졌다. 끊임없이 질문이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관객들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박기웅 촬영감독의 욕심 때문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구스 반 산트의 <게리>에 바치는 오마쥬라고 생각한다”고 운을 뗀 박기웅 촬영 감독은 자연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인간의 시도는 결국 실현되지 못하고 실제 촬영 때도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라다크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들은 “이물질 같다”는 생각을 떼내지 못했다고 ‘오랫동안’ 털어놨다. “교수님이어서 어쩔 수 없다”는 김응수 감독의 재담에 이어 긴 발언을 빠뜨리지 않고 통역한 스탭에게 관객들은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방식에 대한 의문도 잇따랐다. “대화를 할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 풍경들이 끊임없이 펼쳐졌다. 후반부 장면 또한 전에 보고 찍어둔 것이 아니다. 모두 한 테이크로 찍을 수밖에 없었다”는 박기웅 촬영감독의 답변이 끝나자, 김응수 감독은 “촬영감독과 사전에 이야기 한 것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모두 쓸모가 없어졌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가만 있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게리>는 구스 반 산트 영화의 계기였다. <천상고원>도 김응수 감독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바램으로 이날 GV는 끝이 났다. 많은 관객들과의 만남 때문인지 홍조를 감추지 못한 김응수 감독은 극장을 빠져나가면서 20년전 민주화를 외치며 분신을 택한 이재호, 김세진 열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라고 귀뜸했다.

사진 장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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