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맨>의 두 배우가 다소 생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항상 똑소리나게 바른 말만 하거나 악을 쓰고 자식을 지키던 조디 포스터는 ‘돈’ 좋아하는 로비스트로,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는데도 정의롭고 신사적인 이미지가 여전한 덴젤 워싱턴은 말을 랩처럼 주절거리는 협상가로 등장한다. 매번 다른 영화를 통해 다른 인생을 살지만, 관객은 저마다 배우에게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는 법. 이번에는 그 기대와 달리 뜻밖의 배역을 맡아 온몸으로 승화시킨 배우들을 꼽아본다.
5위는 <씬 시티>의 미키 루크. ‘할리우드 섹시 가이’였던 미키 루크가 <나인 하프 위크>(1986)에서 맡았던 존은 ‘귀공자 타입’의 증권 브로커. 약 20년 뒤 그는 비대한 몸과 망가진 얼굴을 이끌고 <씬 시티>의 스트리트 파이터 마브로 나타났다. 그의 얼굴을 망가뜨렸다는 복싱이, 지나간 세월이 미워서 5위.
4위는 <이터널 선샤인>의 짐 캐리.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먼의 일대기를 그린 <맨 온 더 문>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좀더 내면연기에 치중했더라도 코미디언을 연기했다는 점에서 은근슬쩍 넘어간다고 치면, 쿨럭, <이터널 선샤인>의 조엘 역은 대중들에게 새로운 배우를 발견한 듯한 기쁨을 주는 영화였다. 부시시하게 내린 앞머리(<에이스 벤츄라> 시절과 비교해보라), 퀭한 두 눈 (그의 코미디 연기에서 힘을 준 동그란 눈동자는 꽤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른하고 심약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보여준 그 연기에 박수치며 4위!
3위는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가 7명을 죽인 창녀 에일린으로 나온다는 사실로도 뉴스거리였지만, 30파운드를 늘인 몸무게로 ‘괴물’처럼 스크린에 나타났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그러나 막 찌운 살과 지저분한 헤어스타일로도 가릴 수 없는 것은 그녀의 또렷한 눈빛. 흠잡을 데 없는 연기였지만, 그 예쁜 눈마저 감출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3위.
2위는 <디 아워스>의 니콜 키드먼. 다양한 역을 맡아왔던 그녀이기에 배역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는 없지만, 대부분 미모가 큰 비중을 차지했던 건 엄연한 사실. 그러나 니콜 키드먼이 작가 버지니아 울프로 분한 <디 아워스>에서만은 외모가 아닌 버지니아 울프의 불안한 내면과 심리상태를 완벽하게 재현한 연기력에 있었다.
1위는 <달콤, 살벌한 연인>의 박용우. <쉬리>의 어리버리한 신입요원이건 <혈의 누>의 정의의 사도 김인권이건 자연스럽게 소화할 만큼 그의 이미지는 아직 몇 글자 적지 않은 하얀 연습장 같다. 그래도 그가, 소심하고 쫌생이 같고 치사하고 유치하고 귀여운 대우를 그리 능청맞게 연기할 줄이야. 뜻밖의 배역, 의외의 어울림. 박용우의 변신이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