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마틴 스코시즈를 만나다 [1]
2006-05-09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한국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올드보이>와 <나쁜 남자>를 스탭들과 함께 보며 영화 스타일에 관해 의논하고, <질투는 나의 힘>을 좋아하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자막 번역이 잘된 35mm 필름으로 꼭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가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지지 서한을 한국영화감독조합으로 보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현승 감독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지지 서한을 보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신작 <디파티드>의 편집에 한창인 스코시즈 감독을 찾았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진오 감독의 통역 속에 이루어진 만남은 스코시즈 감독은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한국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들에 애정을 유감없이 드러냈고, 홍콩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인 <디파티드>를 기대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월13일, 이현승 감독이 뉴욕 맨해튼에 자리한 미국감독협회(DGA: Directors Guild of America) 건물 안의 한층을 사용 중인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한국영화감독조합의 대표 자격으로 마틴 스코시즈가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지지 서한을 한국영화감독조합으로 보낸 것에 대한 답방이었다. 마틴 스코시즈는 홍콩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작인 <디파티드>(The Departed)의 편집작업에 한창이었다. 이현승 감독이 마틴 스코시즈를 위해 준비한 많은 한국영화 DVD와 선물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대화는 시작되었다.

“한국영화의 힘은 다양성”

이현승: 스크린쿼터 문제에 관해 한국 영화계를 지지해주신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감독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감독님의 지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아, 별 말씀을요, 감사합니다.

이현승: 감독님 말씀처럼 저도 문화교류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독님께서 보내주신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지지 글이 실린 한국의 영화잡지(<씨네21>)를 가져왔습니다. (잡지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기사를 읽어주다가 마지막 구절을 말해주며) 이 구절을 보면 (웃음) “어쩌면 한국의 대통령보다 미국의 감독, 마틴 스코시즈가 한국 영화계와 영화를 더욱 사랑하고 지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틴 스코시즈: (크게 웃음)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 한국영화가 아주 독창적이고 힘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 인물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제게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새로움과 독특함을 느낍니다. 저는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는데, 한국영화에서 접하는 새로운 문화, 종교, 영화 속 인물들의 행동양식, 관계 등을 통해 제 정체성에 질문을 많이 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 갱영화인 <디파티드>를 만들고 있는데, 얼마 전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를 보게 되었는데 제게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너무나 독창적인 영화였죠. 상당히 거칠고 위험하기까지 한 영화죠. (웃음) 날것의 느낌이랄까, 그런 의미에서의 위험성. 제 영화 스탭들에게 <나쁜 남자>를 보여줬어요. <올드보이>도 스탭들에게 보여줬는데, <나쁜 남자>와 <올드보이>는 굉장히 다른 영화들이지요. <올드보이>가 거대한 오페라 같다면 <나쁜 남자>는 아주 기이한 세계를 보여주는, 묘하고 이상하기까지 한 영화입니다. 그것이 <나쁜 남자>의 힘입니다. 어떤 영화가 더 좋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한국영화의 힘은 바로 다양성에 있다는 겁니다. 영화의 스타일과 내용이 저마다 확연히 다르고 독특하게 구별된다는 점이 강점이지요. 저는 제법 오랜 세월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영화를 보고 쉽게 감동받거나 흥분하지 않지요. (크게 웃음) 좋은 영화를 보면, “또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됩니다. 영감을 받기 때문이죠. 그것이 중요합니다. 지난 주말에 김기덕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수취인불명>을 보았습니다. (진지한 표정을 잠시 짓다가 장난기 있게 한숨을 내쉬며 웃는다) 정말, 거칠고 묘한 영화였어요, 역시. (웃음)

한 가지 중요한 얘기를 할게요. 저도 어느새 63살입니다. 더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지요. 저를 흥분시키지 않거나 영감을 주지 않는 영화들을 보며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20분 정도 보다가 아무런 영감을 받지 못하면 더이상 보지 않습니다. 한국영화를 보면 “나도 어서 빨리 영화를 만들어야지” 하는 자극과 영감을 받아요. 이제는 만드는 작품마다 힘있는 좋은 작품이거나 독창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객으로서도 약간은 이기적이 되는 겁니다. 뭔가 제게 도움을 주는 영화만 볼 가치가 있다는 의미에서의 이기심이 작동합니다.

“젊은 영화인이여, 영화에 더 애정을!”

많은 DVD들 중 한편을 유심히 보는 스코시즈. 그 DVD 케이스 위에 붙여진 짧은 메모를 진지하게 읽고 있다.

마틴 스코시즈: (장윤철 감독이 말아톤 DVD에 써놓은 메모를 읽던 중 웃음을 띠며 한 구절을 소리내어 읽는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크게 웃으며) 좋지요, 근데 나도 한번도 못 받았어요. (자리에 앉으며) 저는 매주 일요일 집에서 큰 스크린으로 DVD를 봅니다. 한국영화도 많이 보게 되었죠. 이곳 감독협회 건물 안 사무실에서보다 집중해서 볼 수 있죠. (테이블 위에 놓인 풍성한 한국영화 DVD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아, 이 작품(<장화, 홍련>) 봤어요.

이현승: 동료 감독들이 직접 사인한 DVD들도 있고, 또 바빠서 못 만난 감독들의 작품들은 제가 직접 사왔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아, 그래요, 정말 고마워요. (계속해서 DVD들을 살펴보며) 이 작품, 정말 좋아요, 정말 좋아요. (<바람난 가족>을 지목하며), 임상수 감독 맞지요? (생각하며) 대통령 저격하는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던가, <그때 그사람들> 맞지요?

이현승: 예. <그때 그사람들>은 어떻게 보셨나요?

마틴 스코시즈: <바람난 가족>과 <그때 그사람들>은 각각 두번씩 봤어요. 아주 좋았어요. <그때 그사람들>은 제 아내에게도 보여줬어요. 또 제 편집자에게 보여주며 편집 스타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요. 개인적으로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을 가장 좋아해요. 아름다운 영화라 두세번 보았죠. 아주 힘이 있는 영화예요. <질투는 나의 힘>이 박찬옥 감독의 데뷔작인가요?

이현승: 예.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보셨나요?

마틴 스코시즈: 아주 힘있는 영화들이에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도 모두 봤어요. 그런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불행히 미국에 수입된 DVD의 영문자막 번역이 잘된 것 같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번역 때문에 영화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안타깝더군요. 소위 쉬운 영화가 아닌데,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자막으로 보니 영화에 빠져들지 못하고 어느 순간 자막을 이해하려고 애쓰게 되더군요. (웃음) 그래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기회가 닿으면 꼭 35mm 프린트로 보고 싶어요.

테이블 위에 놓인 DVD들을 계속 살펴보는 마틴 스코시즈. 이윽고, 그의 손길이 한 DVD 위에 닿자, 이현승 감독이 말을 건넨다.

이현승: (웃음) 그 작품, <너는 내 운명>의 감독은 통역하고 있는 박진오 감독과 형제관계입니다.

마틴 스코시즈: 형제? 오, 좋아요. (크게 웃으며 <너는 내 운명>의 DVD 위에 ‘Brother’라고 적는 마틴 스코시즈)

이현승: (테이블 위 많은 DVD들 중 <용서받지 못한 자>를 지목하며) 그 작품은 제 (중앙대) 제자가 만든 저예산영화로, 한국 군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그래요?

이현승: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었죠.

마틴 스코시즈: 훌륭해요. (진지하게)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미국 관객은 다른 문화, 다양한 다른 스타일의 영화들을 즐기는 것 같아요. 아시아권 영화들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접하죠. 한국영화는 미국과 매우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통로이지요. 그런 맥락에서 저는 현재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에 관한 한국 영화계와 정부의 마찰이 걱정됩니다. 한국의 영화와 문화에 대한 보호는 물론이고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해 더 많은 미국영화들만 상영되는 상황이 닥치면 어쩌나 하는 겁니다. 다양한 나라들의 다양한 영화들도 아닌 미국의 영화들만이 상영된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이지요. 전 미국인이고 미국에서 영화를 만듭니다. 하지만 제가 영화학교를 다닐 때(그땐 뉴욕대의 티시 예술 단과대가 아니라 아주 작은 규모의 워싱턴 스퀘어 단과대학으로 불렸죠) 제게 가장 중요했던 건, 다른 문화권의 영화들을 다양하게 접하는 거였어요. 다양한 문화적 경험은 제게 중요했을 뿐 아니라 미국에 필요한 겁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지요.

사람으로서, 영화인으로서, 예술인으로서 자신의 문화와 정체성을 항상 반추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국 고유의 문화를 끊임없이 재창조할 수 있지요. 아시아영화들은 미국의 독립영화권과 거대한 할리우드 상업영화권이라는 상반되는 양쪽에 영감을 주었어요. 예를 들어, 최근 한국영화들이 미국 영화계에 주는 창조적 영감 혹은 영향을 할리우드 상업영화권에서 살펴볼까요? 바로 리메이크의 유행입니다. (웃음) 거대한 자본으로 할리우드는 아시아, 한국영화들을 다시 만듭니다. 독립영화권은 어떨까요. 바로 뉴욕, 샌프란시스코, LA 등지의 젊은 영화인들이 아시아영화에서 창조적 에너지를 공급받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문화권의 다양한 영화들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배우고, 영감을 얻는 것,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경험들에서 자신들을 돌아보고, 자신들의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아시아권 영화에 대해 할 말은 더 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접한 외국영화들은 서유럽과 동유럽 위주였죠. 아시아영화를 접하기는 매우 힘들었어요.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정도가 고작이었어요. 이후 일본영화의 상징적 감독들인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등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아시아영화는 드물었어요. 8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중국영화들이 조금씩 알려졌지요. 박찬욱 감독을 만났을 때, 한국의 많은 고전영화들이 유실되었다는 안타까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현승: 고전영화의 유실은 한국 영화계에서도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마틴 스코시즈: 중국영화들도 마찬가지라 들었는데, 저는 젊은 영화인들이 영화에 더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영화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만 해도, 영화사라고 하면 약간의 독일영화, 1920년대 러시아영화 정도였습니다. 미국 무성영화의 경우 전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1960년대에는 무성영화를 영사하는 온전한 기술이 없었으니까요. 대부분의 무성영화들이 유실되어버린 게 현실이었고. 결국 당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은 영화의 역사를 배울 때 약간의 미국영화, 약간의 영국영화, 약간의 이탈리아영화… 그렇게 1930년에서 1960년 사이의 영화 역사를 공부한 셈이죠. 그러면서 조금씩 일본영화를 기점으로 아시아영화를 접했어요. 그런데 지금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100년 가까운 영화사를 접할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영화를 좀더 쉽게 접함은 물론이고 많은 옛 무성영화들이 복원되었고, 복원된 작품들이 영사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지요. 그럼에도 약 90%의 무성영화들이 사라졌습니다만. 지금의 영화과 학생들은 복원된 무성영화들과 아시아와 남미영화들, 70년대의 독일영화들, 남아프리카권 영화 등을 애정을 갖고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는 극장만이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통로였지만(웃음), 지금은 DVD를 비롯한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를 접할 수 있지요. 제가 다양한 문화권의 영화들에 대한 애정, 영화 역사에 대한 근본적 애정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의 아시아영화들, 특히 한국영화의 힘을 얘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한국 영화계의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가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 안에서의 자국 문화 보호는 물론, 진정한 문화다양성, 더 나아가 최근 한국영화들이 보여주는 독톡한 힘과 에너지, 또 그것이 다른 나라의 젊은 영화인들에게 끼치는 긍정적 영향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한국 정부가 바람직한 판단을 내리기를 희망합니다.

“인간의 마음이 중요하다”

이현승: 어떤 구체적인 계기로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마틴 스코시즈: (고개를 숙여 아주 잠시 생각에 잠긴다. 곧 고개를 들고 다소 힘차게) 일단, 제목. (의미심장하게)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정말 독특합니다. (크게 웃음) 그리고 언젠가 선댄스 채널에서 본 영화인데 음식이 나오고….

이현승: <301·302>.

마틴 스코시즈: 예, <301·302>. 정말 놀라운 영화였어요.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인물들의 독특한 행동, 관계 그리고 편집 등 매우 생소하면서도 독특한 영화였어요. <301·302> 속 인물 묘사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제겐 너무나 새로웠고, 독특한 체험이었어요. 한번도 보지 못한 세상을 보게 했다고 할까요. 특히 <질투는 나의 힘>이 갖고 있는 독특한 힘과 홍상수 감독의 작품들은 진실로 독창적이고 집중을 요한다는 것. 이런 영화들은 감정적, 심리적으로 관객의 정서를 크게 자극합니다.

이현승: 감독님의 경우 뉴요커인 동시에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는 이중 정체성을 갖고 계신데, 지역적 의미에서의 영화 만들기에 대한 생각은 어떠하신가요.

마틴 스코시즈: 의심할 여지없이 저는 이탈리아영화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TV에서 방영하는 이탈리아영화들을 5살 때부터 보기 시작했지요. 1945년경부터 금요일마다 이탈리아영화들을 방영해주는 채널이 있었는데,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영화들이나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을 방영해주었어요. 당시 뉴욕에는 지역적으로 이탈리아 시실리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육체적 의미로서 제 정체성의 뿌리는 아주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자라면서 점차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지요. 저는 미국인이지만 동시에 이탈리아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제가 이탈리아라는 나라에 대해 무조건 동화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했고, 현재 이탈리아의 문화·정치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기 때문이지요. 또한,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고, 물론 지금은 심히 의심스럽지만, 불행히도. (일동 크게 웃음) 어쨌든 이탈리아의 문화적인 면은 영화를 통해 많이 배우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밀감이 생긴 거죠. 영화를 통해. 하지만 결론적으로 저는 미국인입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뉴요커입니다. 맨해튼을 중심으로 한 뉴욕은 굉장히 상징적인 곳입니다. 미국 안에 있지만, 미국 안에서도 가장 독특하고 구별되는 곳이지요. 수많은 다양한 인종과 이민족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 다양한 이민족들이 항상 긍정적으로 어울려 사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다양성이 강점이 되는 곳. 미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도시입니다. 개인이 의견을 자유롭게 낼 수 있고 다른 이들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자유의 도시.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제 이탈리아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네오리얼리즘이라는 표현보다 휴머니즘, 그러니까 인본주의라는 표현이 좋아요. 사람을 위한, 사람 자체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애정.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박진오 감독: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무척 젊어 보이십니다. (일동, 특히 스코시즈 크게 웃음)

마틴 스코시즈: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를 제가 만들 수는 없지만, 어린 나이부터 무의식, 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은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휴머니즘적인 사고가 제 의식에 살아 있기를 희망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영화들을 통해 인간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표출해내는 것이 제 희망이고, 계속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만일 내가 상류층 가정에서 자랐다면, 만일 내가 자랄 때 집에 책이 많았다면, 내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교육을 많이 받으신 분들이었다면, 1960년대 대학 재학 시절에 보았던 프랑스의 지적인 영화들을,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와 같은 감독들을 더 좋아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보다는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더 선호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죠.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서민층 출신이셨고, 교육도 많이 못 받으셨고 또 책보다는 TV와 영화를 많이 보신 분들이었죠. 저도 그 영향으로 TV와 영화를 많이 접했던 거죠. 프랑스영화에서 스타일과 지성을 배웠지만, 제 마음은 지상에 가까운,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시카의 이탈리아 영화감독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해요.

사진·통역·정리 박진오 감독(<런치> <리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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