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마틴 스코시즈를 만나다 [2]
2006-05-09

“디지털영화의 부상에 주목한다”

이현승: 최근 한국영화의 흐름과 한국영화에 대한 해외의 긍정적 반응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 그리고 세계영화의 흐름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한말씀 해주시지요.

마틴 스코시즈: 저는 영화라는 매체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입니다. 젊은 세대의 영화에 대한 도전은 제게 일종의 설렘마저 줍니다. 테크놀로지의 혁명이랄 수 있는 디지털의 발견과 발전이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가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반기든 그렇지 않든, 젊은 세대들은 손에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만듭니다. 젊은 세대에게 정열이 있다면, 자본의 압력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만들고자 할 것입니다. 자본을 비롯한 여러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최악의 경우, 디지털로 간다”라는 신념으로 영화를 만드는 거죠. 자본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유를 품고 말이지요. 디지털로 만든다 하더라도 결국은 이야기가 중요하고, 동시에 영상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본질은 동일한 것이니까요. 특정 나라나 문화권에서 정치·경제적 압력이 있더라도, 디지털이라는 기술이 있기 때문에 영화를 좀더 쉽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 점이 세계영화의 흐름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음을 저는 느낍니다.

<택시 드라이버>
<분노의 주먹>

올 칸영화제나 그 몇 개월 뒤에 발표할 국제영화재단(International Film Foundation)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군요. 이 재단은 제3세계권의 영화들, 알려지지 못하고 상실된 제3세계권 영화들을 재발굴하고 복원시키고자 합니다. 첫 작품은 에티오피아의 1970년 영화 <하베스트>(Harvest)입니다. 흑백 16mm리 작품이지요. 미국과 영국에서는 오래된 영화들의 복원에 관심이 일고 있고, 프랑스도 관여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문화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그리고 상호교류입니다. 또 중요한 점은 이 세상에서 특정 문화권이 ‘제3세계’라 불리는 이 이상하고도 비극적인 현실이 없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왜 제3세계입니까? 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크게 웃음) 왜 숫자로 문화를 규정하냐는 말이지요. 사람들이 다른 다양한 세계의 영화들을 보고 다른 문화를 보고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는 모든 이들의 공유물이니까요. 한국영화의 경우, 오래된 옛 한국영화들의 복원이 중요합니다. 전 오래된 예전의 한국영화들도 보고 싶습니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대만도 마찬가지입니다.

“<디파티드>는 ‘스코시즈 버전’의 <무간도>”

이현승: 현재 제작 중인 <디파티드>에 대해 한말씀 해주시지요. 홍콩영화 <무간도>의 리메이크 작품이지요?

마틴 스코시즈: (웃음) 그래요. 우선 <디파티드>는 갱영화입니다. 일단 아이디어가 좋았어요. 상반된 두 인물을 축으로 한 이야기. 물론, 제가 만드는 영화는 홍콩영화 스타일과는 아주 다를 것입니다. 빠르고 스타일리시한 원작과는 다를 것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우선, 영화 속 인물들에 좀더 깊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의 미국 갱을 다룹니다. 제가 바라보는, 저만의 버전이 될 것이기 때문에, 원작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왕가위 감독을 위시한 홍콩영화들과는 아주 다른 영화가 나올 것 같아요. 제 전작들처럼 이 영화 역시 철저히 인물 중심입니다. 그리고 <디파티드>는 본질적으로 ‘거짓(말)’에 관한 영화가 될 것입니다. 인물들이 서로 속고 속입니다. 거짓된 관계 때문에 모두 비극적 결말, 죽음을 맞게 됩니다. 신뢰와 배신에 관한 이야기죠. 전 이 점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에 관련된 인종 차별주의 대목도 있지요. <무간도>에서 아이디어만 얻어오고 더 스케일이 큰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크게 웃음) 물론 <무간도>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지요.

이현승: 저도 사실 <강호>라는 홍콩 갱영화의 한국 버전을 만들 계획인데, 많이 고민 중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주로 여성적이고 섬세한 멜로드라마적인 영화들을 세편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스타일적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어 어떻게 제 스타일로 녹여낼지, 동시에 한국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등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감독님의 경우도 역시 표면적으로는 갱영화지만, 내부적으로는 인물 중심의, 사람과 관계에 대한 영화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를 포함한 한국의 대다수 젊은 감독들이 감독님의 영화, 특히 <택시 드라이버> <비열한 거리> <분노의 주먹>을 보며 공부했고, 또 그러한 감독님의 작품들을 접하며 미국에도 상업적인 할리우드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느꼈다는 것입니다.

마틴 스코시즈: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이번 제 작품의 경우, 저도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가장 큰 고민은 인물 위주의 영화이다보니 바로 그 점이 이야기를 방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겁니다. 단적으로 말해 캐릭터들의 묘사가 플롯을 거스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저는 갱영화를 많이 만들어왔는데, 전작 <갱스 오브 뉴욕>도 마찬가지였지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가 중요했으니까요. 그때도 제 고민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내는가였는데 그것이 이야기를 방해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갈등했어요. 결론적으로 저는 플롯 중심의 영화를 만드는 것 같지는 않아요. (크게 웃음) 그런데 어떤 홍콩영화를 리메이크합니까?

이현승: <강호>라는 영화인데, 아이디어가 재미있고 영화가 좋아서 고려하게 되었지요.

마틴 스코시즈: 지금 이 감독님의 작품 <시월애>가 <일 마레(Lake House)>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어 6월 개봉을 앞두고 있지요. 제 생각에 이 감독님은 멜로드라마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아직 젊으니까, 남아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아무튼 제 생각에는 이 감독님이 그 홍콩 갱영화를 만드실때, 이 감독님이 갖고 있는 자신의 고유한 개성, 그러니까 멜로적인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갱영화의 요소와 멜로적 요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가 아주 흥미로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감독님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멜로적 갱스터 또는 스릴러영화 말입니다.

“문화 교류가 해답이다”

이현승: 말씀 감사합니다. 리메이크 작업도 잘 이루어진다면 서로 다른 문화권끼리의 교류와 소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오늘 감독님과 말씀을 나누면서 느꼈습니다. 저 또한, 감독님이 말씀하셨듯이 특정 나라나 문화권의 영화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경우는 아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크린쿼터 문제도 우리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지키자는 점도 있지만 다양한 문화, 영화를 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오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환기하게 됩니다. 혹시 앞으로 문화 교류적 측면에서 감독님께서 가까운 미래에 한국영화를 리메이크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디파티드>
<디파티드>

마틴 스코시즈: 물론이죠. (웃음) 저도 문화 교류라는 면에 동의해요. 비록 홍콩영화에 기초하고 있지만, 제 영화는 많이 다를 겁니다. 그들의 장점을 받아들여 우리만의 새로운 언어를 재창조해내는 것, 그것이 중요하죠. 참고로, <디파티드>는 매우 스케일이 크고, 걱정도 많이 됩니다. 언제까지 할리우드에서 이렇게 대자본을 들이면서 인물 묘사 중심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이번 영화에는 스타들이 많이 등장하고 그러다보니 자본이 너무 많이 들어갔습니다. 위험하지요. 과연 제 모험과 도전이 이 비싼 영화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만들 이야기와 주제를 택하는 것도 더욱 조심스러워지지요. 어쨌든 한국영화들을 제가 좋아하고, 또 제게 많은 영감을 주기 때문에 리메이크를 하게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단순히 ‘리메이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리메이크’가 아니라, 사실, ‘누구 누구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표현하고 인식하고 싶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의 경우가 좋은 예이지요. 많은 다른 버전의 영화들이 한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나올 수도 있고, 그 작품 또한 다른 문화권에서 창조적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작품은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고 그 감독의 고유한 버전인 셈이죠(참고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천국과 지옥>은 에드 맥베인이 쓴 스릴러 소설 <King’s Ransom>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현승: 저도 공감합니다. 그리고 제가 LA의 미국감독협회(DGA)를 방문했을 때, 문화 교류의 차원에서 한국 감독들의 영화를 초청 상영하는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혹시 한국 감독들이 감독님을 한국으로 초청하면 와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군요.

마틴 스코시즈: 아, 물론이죠. 언젠가 꼭 그럴 수 있으리라 봅니다. 개인적으로 여행 다니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아내와 어린아이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지요. 하지만 한 작품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계획하는 사이에 저는 여행이나 개인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아시아권에서 제 작품을 홍보할 기회가 생기면 한국을 방문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비행기 타는 것을 그리 안 좋아합니다. (일동, 특히 스코시즈, 크게 웃음) 어쨌든 감사드리고, 또 더 많은 한국영화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이현승: 지난해 한국에서도 영화감독 조합을 결성했는데, 앞으로 혹시 감독님이 한국에 오시고 싶으면, 제게 꼭 연락을 주십시오. 저희 감독들이 직접 돈을 모아서 (일동 웃음) 감독님을 초대하겠습니다.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마틴 스코시즈: 감사합니다. 앞으로 1년에서 2년 사이에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편집을 상당히 오래 하는 편이에요. 지금도 저는 꼼짝없이 편집에 매달려 있는데, <에비에이터>나 <갱스 오브 뉴욕> 때는 편집기간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길었습니다. <디파티드>의 편집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데 정말 오래 걸리네요. 제작사와 배급사에서는 빨리 끝내라고 독촉이고. 사실, 오늘도 조금 있다가 제작사에서 보러 옵니다. (웃음) 무얼 어떻게 잘라내야 할지 저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이현승 감독을 바라보며) 이 감독님이 와서 편집해줄래요? (일동, 특히 스코시즈 크게 웃음)

이현승: 다시 한번,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좋은 시간 내주시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마틴 스코시즈: 감사합니다. 참, 여기 자료실에 영화들이 많은데 뭐 갖고 싶으신 작품들 있으면 얘기해요, 뭐든지. 꽤 많거든요.

이현승: (잠시 생각에 잠기며) <택시 드라이버>에 직접 사인을 해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크게 웃음) 물론이죠. 그 영화는 폴 슈레이더의 각본이 정말 훌륭했죠. 드 니로(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도 훌륭했고요. 그리고 제 변호사에게 들은 건데, 얼마 전 어떤 설문조사에서 지난 3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화로 <택시 드라이버>가 뽑혔다더군요.

이현승: 한국의 다른 많은 감독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택시 드라이버>를 보면서 영화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웃으며) 감사합니다.

이현승 감독이 마틴 스코시즈 감독에게 한국에서 갖고 온 영화와 선물들을 전했고, 마틴 스코시즈 감독은 직접 사인한 <택시 드라이버> DVD를 이현승 감독에게 전해주며 약 2시간에 걸친 뜻깊은 대화를 마감했다. 사진 촬영을 한 뒤, 두 사람은 편집실에 들렀고, 스코시즈 감독은 자신의 지난 작품들의 검열에 관련된 많은 에피소드들을 들려주었다. 편집실에 걸려 있는 많은 사진들(많은 배우들 및 감독들, 특히 자신이 가장 존경했던 감독들 중 한 사람인 존 카사베츠 감독과의 사진)을 일일이 보여주며 설명해주는 그의 얼굴에는 지난 세월을 잠시, 아주 잠시 회상하는 설렘이 가득했다.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정열과 지식에 대한 목마름은 그에게 있어 분명, 여전히 진행형인 듯하다.

사진·통역·정리 박진오 감독(<런치> <리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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