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프사이드>로 전주영화제 찾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
2006-05-12
글 : 오정연
사진 : 이혜정

올해의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오프사이드>는 이란과 바레인의 월드컵 예선전이 벌어지는 동안, 금녀(禁女)의 장소인 축구경기장에 들어가려는 소녀들의 고군분투를 그렸다. 그들은 경기가 진행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울타리 안에 갇혀서 자신들을 감시하는 군인들과 티격태격하면서 맞선다. 그러나 작은 버스에 실려 어디론가 향하던 소녀들과 이들을 호송하던 군인들은 결국, 이란이 바레인을 이겼다는 소식에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속에 한마음으로 축제를 즐긴다.

<오프사이드>를 연출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키아로스타미의 연출부 출신이다.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모습을 담은 그의 데뷔작 <하얀 풍선>에는 대선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후 그는 사회의 모순을 정직하게 바라보거나(<순환> <붉은 황금>)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거울>)을 선보이면서 자신의 영화가 단순히 선배의 전략을 답습한 것이 아님을 쉼없이 증명했다. 다큐멘터리의 화법을 지닌 채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 영화는,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어린이의 속성을 페이크다큐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거울>과 이란 여성의 제한된 삶을 정공법으로 공략한 <순환>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축제의 열기가 한창인 전주에서 두 차례에 걸쳐 파나히 감독을 만났다. 그는 영화만큼이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녔으되 자신의 영화는 물론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고국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서는 사뭇 엄격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거울>의 첫 장면에선 한국과 이란의 축구경기 중계가 계속해서 흘러나오더라. 개인적으로도 축구를 좋아하나.
=대학교 때까지 아마추어 축구선수였다. <거울>의 그 경기는 이란이 6:0으로 한국을 이겨서 화제가 됐다. (웃음) 하지만 한국이 지난 월드컵에서 보여준 경기는 정말 훌륭했다. 독일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한국과 이란 두팀 모두에 행운이 있길 바란다.

-이란에선 여성에게 금지하고 있는 것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축구장 출입 문제를 다룬 이유는 뭔가.
=사실 이 문제는 이란 여성들이 하지 못하는 숱한 것 중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종교적인 관습법에 의하면 여성 혼자서는 어떤 사건의 증인도 될 수 없다. 두명 이상의 여성이 필요하다. 여성 두명이 한명의 남성과 동등하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슬람 혁명 전에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이란인은 3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정도로 비합리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이번에는 아주 작은 자유마저도 제한된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금지된 더 큰 자유를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나 월드컵이라는 건 전세계 국가가 평등한 경쟁을 통해 화합하는 자리가 아닌가. 영화 속 소녀들 역시 자유로운 사회 속에서, 다른 나라의 여성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물론 이 영화를 통해 여성이 축구장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도 있었다. 실제로 며칠 전에는 대통령이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여성도 축구장 입장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인터넷을 검색한 결과 현재 성직자들이 대통령의 출입금지 해제 발표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더라.

-<오프사이드>의 이란 개봉은 언제인가.
=이란에선 모든 영화가 엄격한 검열을 거쳐야 하는데, 아직까지 국내 상영허가를 받지 못했다. 그간 내 영화는 모두 이란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하얀 풍선>을 제외한 나의 영화들은 국내에서 개봉한 적이 없다. 예를 들어 <순환>은 여자가 감옥으로 향하는 마지막 부분을 포함해서 18분을 잘라야 개봉할 수 있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다. 만일 그 장면을 생략하면 여성의 고달픈 삶의 순환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에 빈 공간이 생긴다. 이란 정부는 자국 여성들이 그렇게 제한된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걸 원하지 않는다.

-이란의 검열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
=먼저 시나리오를 제출하면 거기에서 어디를 자르고 무엇을 바꾸라고 말한다. 그대로 영화를 만든 뒤, 완성본을 가지고 다시 수정사항을 지시한다.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면 상영의 기회를 갖게 된다.

-국내에서 상영할 목적이 아니라면, 마음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인가.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때때로 그런 경우는 있다. 아예 다른 시나리오를 보여줘서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고, 원래 찍고 싶은 영화를 찍는 거다. 나도 이번에는 아예 다른 시나리오에, 감독 이름도 스탭 중 하나를 빌려서 썼는데, 나중에 그것이 들통나서 상영권리를 박탈당했다. 예전에는 완성된 시나리오가 아니라, 이상이 없을 만한 정도의 것을 보여주긴 했다. 하지만 한번 썼던 속임수를 다시 쓰지는 않는다. (웃음)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렸던 <거울>은 그런 문제가 없었을 것 같은데 왜 개봉하지 못했나.
=<거울>은 검열 때문이 아니라 나와 배급사간의 문제가 있었다.

-이 영화가 개봉된다면 이란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이길 바라나.
=우선은 즐겁게 영화를 본 뒤, 이란이 바레인을 이긴 다음 모든 이란인들이 기뻐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했으면 좋겠다. 그 노래의 가사는 60년 전 골레 골럽이라는 시인이 쓴 시에서 딴 것이다. 외세에 대한 이란인의 항거를 그린 시인데, 그전까지 이란을 찬양하는 시들이 왕이나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것은 정치나 종교를 초월해서 이란인의 단결을 다룬다. 실제로 세달 전 베를린영화제에서 그 영화를 본 많은 이란 기자들이 마지막 장면에서 환호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이란 남성들은 여성들의 축구장 금지 조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나 역시 이란 남자다. 대부분 내 생각과 같다. (웃음) 물론 이란은 배우 보수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종교단체나 보수주의자들은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다르다. <오프사이드> 첫 장면에는 남자 행세를 하는 소녀를 그냥 묵인하는 소년이 나온다. 그게 바로 젊은이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여성의 삶에 간섭하고 싶어하지 않고, 여성들이 알아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길 바란다. 더이상 여성들에게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여성들에게도 자신의 삶을 살 만한 권리를 줘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남장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가려는 여자들이 있나.
=그런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경기가 있던 그날도, 남편이 부인을 남장시켜서 데려온 것을 봤다. 영화에서 잠깐 언급되는, 경기장에서 압사했다는 그 소녀는 아버지를 따라 들어간 케이스였다.

-하지만 실제 이란과 바레인의 경기 결과가 지금과 같지 않았다면, 소녀들이 자신의 권리를 제한한 군인들과 한마음으로 기뻐하지 못했을 거다. 상당히 험악한 결말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다 같이 즐겁게 축제 분위기를 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란인들이 어떻게 즐거워하고 얼마나 축구를 사랑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이란이 이기길 바랐지만, 결과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이란이 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소녀들이 축구장에 들어가려 했으나, 발각되어 밖에서 구경만 하게 된다는 것까지만 생각했다. 아마도 이란이 졌으면 해피엔딩은 불가능하고, 결국 소녀들이 경찰서로 끌려가는 것처럼 비극적인 결말이 됐을 거다. 영화의 결말은 축구경기가 만든 셈이다.

-<오프사이드>는 각기 다른 사연으로 축구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다섯명의 소녀들 모두가 주인공이다. 각각의 캐릭터들은 실제 모델이 있나.
=축구를 보고 싶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영화의 마지막에 하나가 되었으면 했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고, 이를 위해서 무엇을 보여줘야 할 것인지, 그러려면 어떤 유형의 캐릭터가 필요한지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서 캐스팅에 들어갔다.

-이번에도 역시 비전문 배우와 함께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캐스팅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어떤 배우가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고 있었다. 얼굴의 생김새, 눈의 크기, 눈썹의 모양, 목소리의 느낌까지. 그걸 염두에 두고 소녀들을 만났다. 기준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저 누군가 오디션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의 이미지부터, 직접 대화를 나눈 뒤 알게 된 성격까지, 모든 것을 고려한다. 각각의 캐릭터별로 중점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은 있다. 예를 들어 정말로 남자 같고 담패를 피우는 소녀는 목소리가 중요했다. 그 배우는 실제로 중성적인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또다른 소녀는 내가 뭔가 질문했을 때, 대답하는 말투가 마음에 들어서 캐스팅하기도 했다. 2주간에 걸쳐서 3천명 가까운 소녀를 만났다.

-오디션은 어떻게 진행되나.
=일단 이미지를 보고 몇명을 추린 뒤에, 뭔가를 시켜본다. 그러나 시나리오는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나중에 촬영을 할 때도, 촬영 당일에 상황을 일러주곤 했다. 비전문 배우들에게 시나리오를 미리 주면 대부분은 대사를 외워서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리허설은 물론이고 연습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일단 카메라를 세워놓고 동선만 알려준다.

-엑스트라가 참 많은 영화다. 대사가 있는 인물은 모두 캐스팅해서 연출한 인물들인가.
=대부분은 그렇다. 하지만 경기장 앞의 검문장면은 그냥 실제 상황인 것도 있다. 이를테면 모자를 쓴 소녀가 경기장에 들어서려 할 때, 한 군인이 그녀의 모자를 들추는 장면. 그때 그 소녀가 나에게 어떻게 하냐고 묻기에, ‘그냥 뛰어’라고 말했다. 어차피 그날은 워낙 카메라를 든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이 촬영하는 걸 알고 있다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경기와 관련된 모든 장면을 하루 만에 찍은 건가.
=그렇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10만 관중이 있는 곳에서 찍어야 했으니까. 경기장이 보이지 않는 장면은 다른 날 찍었다. 소리를 통해서 그 상황이 경기가 이루어지는 동안 벌어졌다고 믿게 할 수 있었다. 알다시피 하루 만에 영화를 찍을 수는 없잖나. 소녀들이 경기장에서 나와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장면만 해도 10일이 걸렸다. 하지만 버스 밖으로 나가서 다들 춤을 추는 것은 경기가 있던 날 찍었다. 촬영 전체는 39일이 걸렸다.

-경기가 있던 날은 어마어마하게 바빴겠다. 카메라는 몇대를 사용했나.
=한대뿐이었다. 스케줄을 잘 짜서 소화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거울>처럼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절묘하게 섞은 영화를 찍은 경험도 있고 하니, 이런 종류의 영화를 찍는 데는 나름의 노하우도 있을 것 같다.
=다들 알겠지만 <거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큐멘터리처럼 표현된 부분까지 모두 픽션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관객이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진실을 찍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런 믿음을 준다면 그 픽션이 어느 순간에는 진실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관객에게 널리 알려진 이란 감독은 키아로스타와 마흐말바프, 그리고 당신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란의 일반 관객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방금 말한 그 감독들은 예술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고, 이란인들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이란은 TV를 비롯한 영상매체를 정부가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영화는 공식적으로 개봉된 적이 없다. 물론 DVD를 비롯한 매체를 통해 그런 영화를 볼 수는 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란 사람들 역시 좀더 상업적이고 스타가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예술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지식인을 비롯해서 소수에 불과하다. 문제는 많은 예술영화 감독들이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오프사이드>가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 정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은 베를린영화제가 그간 이란 정부에 대항하는 영화들에 상을 줬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다. 예술영화만 있다면 영화산업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겠나. 나는 그저 예술영화를 더 좋아하는 것뿐이다. 실제로 이란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70편 중 85%가 상업영화다.

-1년에 70편이라면, 생각보다 이란의 영화산업 규모가 큰 것 같다.
=만들어진 영화의 숫자만 생각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이란의 영화관 숫자는 아주 적다. 이슬람 혁명 전에는 500개 정도의 영화관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영화관이 혁명으로 파괴됐고 현재는 270개관 정도가 남아 있다. 이란의 인구를 생각하면 최소 3천개 정도의 스크린이 있어야한다. 그러니 70편 모두를 상영할 수 없고, 보여지지 못하고 사라지는 영화도 많다.

-차기작은 어떤 것인가.
=대충의 아이디어는 있지만 정말이지 어떤 영화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3년에 한편 수준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고, 영화를 만들 때마다 전작과는 다른 것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만일 내가 일년에 한두편씩 영화를 만든다면 기성복처럼 똑같은 영화만 만들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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