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와 <삼색 삼부작>의 감독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1991년작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폴란드와 프랑스에 베로니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젊은 여인의 교차하는 삶을 반추해 바라보면서 유럽의 구질서 붕괴와 근대 철학의 몰락, 그리고 그 카오스의 소용돌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휴머니티의 새로운 씨앗을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폴란드 출신이라는 변방에서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90년대 유럽 문명의 대변혁과 가톨릭의 기운이 존재하는 폴란드의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성경을 재해석한 <십계>를 만들면서 현대의 존재론을 사유했던 그의 영상 세계가,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와 유럽의 대통합이라는 새로운 정치사회적 명제 앞에서 휴머니즘의 방향과 인간 연대의 희망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해 깊이 사유한 결과가 바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다. 근대주의의 결정론적 세계관에서 탈피하여 인간과 인간의 연대의 끈이 과연 어디에 존재하며 동시에 이 혼란의 과정에서 인간성의 본류는 어디에 위치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그의 관조적 시각은 뒤에 <삼색 삼부작>으로 완성된다. 영국에서 출시된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DVD는 비슷한 시기에 먼저 출시된 프랑스 MK2판과 거의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아나모픽을 지원하는 화면은 키에슬로프스키 특유의 관조적인 우울한 화면을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있으며, 돌비 5.0을 지원하는 오디오 채널은 즈비그뉴 프라이스너의 고풍스러우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트랙을 잘 울려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에디션의 장점은 서플먼트에 있는데, 살아생전의 키에슬로프스키와의 대화록과 폴란드에서의 영화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키에슬로프스키-폴란드인 필름메이커>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여, 같이 수록되어 있는 이렌느 야곱의 인터뷰가 도리어 빛을 잃을 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키에슬로프스키의 단편영화 3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로즈영화학교에서 그의 스승이었으며 자신에게 영향을 준 감독 중 하나라고 밝힌 다큐멘터리 작가 카라바츠의 다큐멘터리 <음악가들>이 수록되어 있어 그의 영화세계가 어떻게 완성되어왔는지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돕고 있다. 이번 여름에 북미판도 발매 예정이지만 북미 출시사의 관행을 미뤄 짐작건대 그리 안심하고 퀄리티를 믿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현재로선 영국판이 이 작품을 DVD로 구매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되겠다. 사족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불륜-에로영화를 연상시키는 기존 번역제목은 이제 지양하고 <베로니카의 두 인생> 같이 영화 본연의 의미에 걸맞은 새로운 제목으로 불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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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에슬로프스키의 세계가 완성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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