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삼국시대라는 판도라 상자 연 대형사극 <주몽>
2006-05-18
글 : 김소민
사진 : 정용일 (<한겨레21> 선임기자)
“또 하나의 남성판타지 이번엔 연인도 당찬 여자”

‘허준’ ‘올인’의 작가로 능력 검증
“민족 자긍심 대신 재미 살릴터”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젊은날
작가활동에 비장의 무기

기원전 108년부터 기원전 37년까지 60부작에 담아낼 예정인 드라마 〈주몽〉(연출 이주환·김근홍)은 지난 15일 시청률 16% 남짓 끌어가며 시원하게 출발했다. 액션과 전쟁 장면 등을 역동적으로 잡아내 눈을 사로잡았다. 전남 나주에 4만5천평 규모로 만든 세트장도 한몫했다. 7m 높이의 동부여성, 철 생산 광산, 해자 성문 등이 세트장을 채웠다. 드라마 초반에 나온 현토성 장면은 중국 상하이에서 찍었다. 〈주몽〉의 성공 여부가 관심을 모으는 까닭은 삼국 시대를 배경 삼은 영웅의 이야기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6월엔 에스비에스 50부작 〈연개소문〉, 8월엔 한국방송 100부작 〈대조영〉이 펼쳐진다. 광개토대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김종학 프로덕션의 〈태왕사신기〉도 제작 중이다. 정운현 문화방송 드라마 책임피디는 “삼국시대는 엄청난 소재를 담은 판도라의 상자”라며 “동북공정 논란이 불거지기 전부터 이 시대는 관심거리였다”고 말했다. 문화방송이 삼국의 통일 과정을 담은 김정산의 소설 〈삼한지〉의 드라마 제작 판권을 3년 전 산 것도 이 때문이다. 정 피디는 “〈삼한지〉와 시대가 겹치는 서동요와 연개소문을 에스비에스가 치고나와 〈주몽〉을 먼저 추진하게 됐다”며 “10년 동안 이어졌던 〈조선왕조 500년〉처럼 삼국 시대를 풀어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MBC 월화드라마 ‘주몽’ 최완규 작가

고구려 건국 과정을 좇아가는 문화방송 드라마 〈주몽〉(월·화 밤 9시55분)은 사극의 소재를 삼국시대 초기로 훌쩍 끌어올렸다. 검증되지 않은 광활한 이야기의 세계에 검증된 두 작가가 버팀목이 됐다. 〈종합병원〉 〈허준〉 〈상도〉 〈올인〉 등의 최완규(42) 작가와 〈다모〉의 정형수 작가다.

〈주몽〉의 뼈대인 역사적 사실은 비어있거나 애매모호하다. 기록대로 주몽이 알에서 깨어날 수는 없지 않나. 신의 아들로 알려진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고조선의 독립 투사로 형상화됐다. 서울 여의도 작업실에서 만난 최완규 작가(사진)는 이렇게 말했다. “〈삼국유사〉 등에도 고구려 건국에 대해 몇 줄 안 나온다. 학설도 분분하다. 이야기를 펼칠 공간이 넓다. 민족적 자긍심을 강조할 계획 없고 그 시대 공간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드라마는 재밌어야 한다.”

최완규의 영웅들=〈허준〉 〈상도〉 〈올인〉…. 남성 영웅의 이야기다. 도덕적 결점은 거의 없는 사람들이다. 쉽게 감정이입 할 수 있는, 평면적인 영웅을 내세워 성공 판타지를 풀어낸다. “작가 욕심으로야 전형적인 캐릭터가 답답하다. 하지만 설명해야 할 게 많은 사극에서 주인공에게 복잡한 캐릭터를 주면 드라마가 너무 어려워진다. 시청자들은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판타지나 인생의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를 변형해 새롭게 포장하는 게 문제다.” 주몽(송일국)도 그의 주인공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함께 자란 형제들한테 위협을 당하는 주몽은 초기에 유약하고 정치적 야심이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진짜 아버지가 해모수라는 걸 알고 바뀐다. 전형적인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된다.”

최완규의 영웅들에겐 ‘환상 속의 그대’가 있다. 〈허준〉의 황수정, 〈상도〉의 김현주 등은 예쁘고 착하고 똑똑한, 하지만 조력자에 머무는 여성을 연기했다. 영웅을 향한 해바라기 사랑만으로도 만족하며 기꺼이 ‘밟고 가소서’라고 말할 만한 순정파다. “내 드라마는 여성 판타지보다 남성 판타지에 기댄다. 여성 시청자들은 ‘재수 없다’ 할 수 있다.” 주몽과 연인이 될 소서노(한혜진)는 어떤가? “소서노는 주체적이고 대단한 여자다. 사실이 그렇다. 주몽과 소서노가 연인이 된 데엔 정치적 이해도 끼어든다. 고구려를 주몽과 함께 다지고 난 뒤 주몽의 첫 부인이 낳은 유리가 부상하자 소서노는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아들들과 내려와 백제를 세운다.”

최완규와 작가들=선이 굵은 작품들을 내놓은 최 작가와 감상적인 면모도 도드라졌던 정 작가의 글쓰기는 어떻게 만날까? “매회 무엇을 쓸까 함께 결정하면 쓰는 거야 누가 맡아도 된다. 재미있는 쪽으로 맞춰가니 힘들지 않다. 정 작가는 무협물에 대한 이해와 감각이 뛰어나 내가 도움을 많이 받는다.”

최 작가가 꿈꾸는 작업은 〈주몽〉에서처럼 작가 두 명이 머리를 맞대는 상황을 뛰어넘는다. 지난해 최 작가는 작가 중심의 제작사인 ‘에이스토리’를 만들었다. 정형수 작가뿐만 아니라 김영현, 정성주 등 기존·신인 작가 40명이 함께 한다. “작가 한 명이 전체를 쓰면 〈과학수사대(CSI)〉처럼 전문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없다. 할리우드에선 크리에이터 한명과 작가 10명 남짓이 함께 만든다. 그런 시스템이 목표지만 아직은 한국 작가층이 얇다. 신인 작가도 키우고 소설가도 영입하려 한다.” ‘에이스토리’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은 〈에어시티〉 등을 기획하고 있다.

이야기꾼 최완규=드라마 작가로서 그처럼 운 좋은 사람도 드물다. 1993년 문화방송 베스트극장 극본 공모에 당선된 뒤 다음해 〈종합병원〉을 써 스타 작가로 떠올랐다. “마니아 정서를 그리고픈 욕구가 있지만 처음부터 대중적인 작가로 자리 잡았다. 방송국이나 시청자나 내게 그런 작품을 기대한다. 어쩔 수 없다. 말이 되고 나쁜 기운을 내뿜지 않는 드라마를 쓰고 싶을 뿐이다.”

지금이야 그의 순탄하지 않았던 젊은 날을 되레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대학을 중퇴하고 박스공장, 가구공장, 철공소 등에 다녔던 경험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의 밑자락이 아니냐는 것이다. “20대에는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소설가를 꿈꿨지만 한편도 못 썼다. 글 잘 쓴다는 소리도 못 들어봤다. 작가가 좋은 건 어디서 어떻게 살았건, 성공이건 실패건 모두 본인에겐 비장의 무기가 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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