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 vs 만화 천재열전 [2]
2006-05-29
글 : 김나형

범죄본능 제지본능

<캐치 미 이프 유 캔> vs <데스노트>

<캐치 미 이프 유 캔> 프랭크 애버그네일-칼 핸러티
천재라고 꼭 착한 일을 하며 사는 건 아니다. 고딩 프랭크는 남을 속이는 데 비상한 재주를 발휘한다. 그는 전학 간 첫날 선생 행세를 하기 시작, 일주일 동안 학생들을 데리고 수업하고 숙제 내주고 시험까지 치게 했다. 하나 여기까지는 애들 장난이다. 방년 17살의 가출 꽃돌이는 여객기 승무원·의사·변호사 등을 사칭, 공짜 비행기를 타고 병원에 취직하고 변호사집 딸과 결혼했으며, 수표를 위조해 3년간 140만달러(약 130억원)를 조달해 쓴다. 이 정도 거물 행각을 하면 빚내가며 잡으러 다니는 놈도 있게 마련. FBI요원 칼 핸러티가 그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소심한 수재는 천재의 재기에 매번 당하지만, 종국엔 핸러티의 끈기가 프랭크를 잡는다. 하지만 꼭 이런 관계에는 요상한 애정이 싹트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결국 핸러티가 프랭크를 FBI에 취직시켜줬다는 훈훈한 미담이 전해온다.

<데스 노트> 라이토-류자키
프랭크와 핸러티가 천재-수재 커플이었다면 라이토와 류자키는 천재 대 천재로서 스파이크를 일으킨다. 똑똑하고 대담한 라이토는 이름을 적어 넣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신의 명부를 얻게 된다. 라이토는 일본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망상환자 기질을 보이며 악한 자들을 처단하여 새 세상을 세우겠노라 한다. 짧은 시간에 흉악범과 범죄자들이 한꺼번에 숨을 거두자 인터폴이 뒤집히고 정체불명의 L(류자키)이 등장, 인터폴의 히든카드로서 수사를 시작한다. 둘은 서로 실체를 모른 채, 보드게임 ‘클루’를 노는 사람들처럼 트릭을 걸고 피해가면서, 잡고 죽이려는 게임을 시작한다. 음침한 웃음을 웃다가 천사표 모범생으로 돌변하는 라이토나 의자에 닭 같은 자세로 올라앉지 않으면 추리력이 40%로 떨어진다는 류자키나 별나긴 마찬가지. 심지어 류자키는 잘 때도 그 포즈로 잔다는 소문.

천재, 그대 이름은 요리왕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vs <미스터 초밥왕>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티타
누군가에 약간 마음이 가 있다. 그런데 그가 요리를 너무 잘한다. 이럴 때 대개 마음이 확 쏠리게 되어있다. 훌륭한 요리솜씨는 본능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리에 특수한 재능이 있는 티타는 다른 의미로 사람을 잡게 된다. 사연인즉 이러하다. 티타는 페드로와 첫눈에 강렬한 사랑에 빠졌다. 페드로는 티타의 집에 달려가 당장 청혼하지만 장모님 말씀이 “막내딸은 결혼 못해.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모시는 것이 관습이거덩. 큰딸이라면 괜찮네만.” 사랑하는 티타와 결혼을 못한다면 그녀와 한집에서 살기라도 하겠다는 일념으로 티타의 언니와 결혼하는 페드로. 타고난 요리솜씨를 가진 티타는 페드로에 대한 사랑, 욕망, 체념, 슬픔 등의 감정을 저도 모르게 요리에 투영한다. 그녀가 눈물로 만든 케이크를 먹고 하객들이 다 구토를 일으켰다고. 아니 그러게 요리 잘하는 처녀를 왜 시집 못 가게 하는 거야?

<미스터 초밥왕> 쇼타
두말이 필요없는 요리 만화계의 신동. 신동인 것도 모자라 근면성실하고 선량건전하기까지 한, 믿을 수 없는 모범청년이다. 악덕기업 사사초밥에 맞서 가족의 추억이 담긴 아버지의 초밥집을 살리려 초밥명가 봉초밥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그 뒤로 기업 홍보 책자에서 읽은 듯한 맨손 성공신화가 펼쳐진다. 재능있는 자가 초인적으로 노력하니 점점 큰 기회가 다가온다. 밥 짓는 데 쓸 최고의 물부터 간난신고 끝에 구해오는 온갖 재료들, 각종 조리비법, 심지어 와사비까지 쇼타가 정성을 쏟지 않는 부분이 없다. 사람들은 쇼타가 만든 요리를 먹으며 (티타의 경우와는 또 다른 이유로) 펑펑 눈물을 쏟는다. 요는 “그래, 바로 이 맛”이라는 것. 쇼타의 가장 큰 장기는 먹는 이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일이다. ‘궁극의 문어 맛’만큼이나 사람들 추억의 ‘소중한 맛’도 중요하달까. 장금이가 말하던 것도 다 그런 거라니까.

DNA의 힘! 무적 천재 가족

<로얄 테넌바움> vs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

<로얄 테넌바움>
두 아들이 천재인 걸로 모자라, 입양한 딸까지 천재인 집안이 있다. 이름하여 로얄 테넌바움가. 첫째 채스는 어려서부터 월스트리트 비지니스맨처럼 행동했다. 금융관련 책들을 독파하고 6학년 때 달마시안쥐를 만들었으며 10대가 가기 전 부동산 업계에 뛰어들었다. 초등학교 이래로 방에서 혼자 식사하면서 그나마도 시간이 아깝다고 커피로 때웠다고. 이 천재는 위장도 강했던 모양이다. 12살 때부터 골초 생활을 시작한 둘째 마고는 극작가였으며, 9살때 5만달러 상금을 탔고 11살 때 첫 희곡을 초연했다. 막내 리치는 3학년 때부터 테니스 챔피언. 17살 이후로 US 오픈에 3년 연속 우승했고 그림에도 재능을 보였다. 교육에 막대한 관심을 쏟은 엄마 에슐리가 이 천재들을 길러낸 모양. 그러나 로얄 본인은 썩 좋은 아버지가 못 됐다. 호방한 낙천가 타입의 로얄은 자기 외의 일에는 워낙 무심한데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아무 말이나 막 해대는 버릇으로 빈축을 샀다. 결국 로얄은 가족들로부터 쫓겨나고, 반짝이던 로얄가 남매들도 기행만 저지를 뿐 왠지 시들해져간다. 어른이 된 채스는 사고에 대한 강박으로 매일밤 아들을 깨워 대피훈련을 해댔다. 마고는 7년간 글이라곤 쓰지 못했고 결혼생활은 꿀꿀했다. 마고를 사랑해온 리치는 누나의 결혼 소식을 듣고 좌절, 테니스를 관뒀다. 어째 천재들의 우울한 몰락을 그린 영화 같다고? 으응.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더라구. 종국엔 왕따 아부지가 괴상한 방식으로 가족의 화합과 재기를 도모했으니. 천재들도 인간사로 고민하는 건 범인들과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주식회사 천재 패밀리>
여기 또 다른 천재 가족이 있다. 17살인데도 대기업 회사원 같은 얼굴을 한 나츠키와 그의 엄마 요시코, 그녀와 재혼한 소스케, 그리고 소스케의 아들 하루다. 천재 패밀리라고는 하지만 이 일가 중 일반적 의미의 천재는 나츠키 하나뿐. 그는 7살에 뉴스를 애청했고, 라디오와 사전으로 영어회화를 마스터했으며, 유치원에서 방정식을 다 뗐다. 옆집 아주머니가 건담 프라모델을 줬을 때 그의 첫마디는 “건담이 뭐예요?”, 결론은 “공짜니까 받아두죠. 친구에게 팔아야지! 한정판이니까 묵혀두면 값이 오르겠군”이었다고. 어쨌거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나츠키는 대기업 부장인 엄마를 보좌하여 신제품 기획, 주식투자 등의 갖은 활약을 펼쳐, 집을 새로 사고 엄마를 승진시켰다. 그런 인물이니 엄마가 노숙자 비스무리한 두 남자를 데려와 가족이 되겠다 했을 때 경악하는 것이 인지상정. 심지어 새아버지는 무직자 주제에 터무니없이 낙천적이고, 동갑내기 이복동생은 학교를 소 닭 보듯 하며 산으로 들로 풀을 뜯으러 다니더란 말이지. 나츠키는 둘을 외계인 취급하지만, 그의 홀대(아니 학대)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소스케-하루 부자는 막강한 생활력과 삶의 참의미를 깨닫게 하는 가치관으로 나츠키에게 긍정적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집엔 먹을 것이 많이 있고 언제라도 배불리 먹을 수가 있는데 바빠서 먹을 시간이 없을 만큼 일하고 몸이 망가지도록 일한다면 우리의 생활 어디가 풍부하고 뭐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지?” 하는 그들. 이들이야말로 이 미친 세상에 필요한 진짜 천재들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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