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과의 대화 [2]
2006-05-24
사진 : 이혜정
정리 : 홍성남 (평론가)

오해를 푸는 것이 비평가로서의 임무라 본다

홍성남: 앞에서 거론했던 마스무라나 루이즈처럼 혹은 ‘현재의’ 알랭 레네처럼, 어떠한 이유로든 남들이 비평적 영토에서 배척한 영화감독들에 대해 꾸준히 글을 써오고 있다. 당신이 (재)조명하는 미국 감독들, 예컨대 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앤서니 만, 니콜라스 레이, 오토 프레밍거 같은 이들 사이에서도 어떤 공통점이 보이는 것 같다. 이를테면 그들은 모두 당대에 어떤 ‘오해’를 받았던 감독들이지 않나.

조너선 로젠봄: 맞는 지적이다. 오슨 웰스도 그 리스트에 포함된다. 오슨 웰스에 대해서는 다음 책을 준비 중이다. 그들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이 비평가로서 내가 가진 임무가 아닌가 한다.

홍성남: 오슨 웰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책이 나와 있는 걸로 아는데, 그것들과는 다른 입장의 책일 것 같다.

조너선 로젠봄 =내가 과거에 웰스에 대해 쓴 글들의 모음집이면서 새로 쓴 글들도 들어 있다. 새 글들은 웰스에 대한 잘못된 자료와 오해를 바로잡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웰스가 영화산업 내에서 일한 사람 같지만 실제로는 영화산업 밖에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매우 많다. 나는 많은 자료조사를 했고, 피터 보그다노비치 같은 이와도 인터뷰를 했고, 게리 그레이버(웰스의 생애 후반기에 촬영감독으로 웰스의 가까운 협력자 역할을 한 사람으로 현재 오슨 웰스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다)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내 자신이 마치 이들이 오슨 웰스에 대해 느낀 점들과 알고 있는 점을 제대로 전달하는 일종의 중간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재미있는 것은 가장 잘 팔리고 유명한 책일수록 잘못된 정보가 많다는 것이다. 웰스에 대한 데이비드 톰슨의 책(<로즈버드: 오슨 웰스 이야기>)은 페이지마다 틀린 정보가 수두룩하다.

홍성남: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조너선 로젠봄: 틀린 정보를 전할 뿐 아니라 편견도 심해서 문제다. 전쟁사가 전쟁에서 이긴 나라의 입장에서 쓰여지듯, 영화사도 감독 입장이 아닌 스튜디오의 입장에서 쓰여진다. 심지어 찰스 하이엄같이 훌륭한 학자의 저서(<오슨 웰스: 한 미국인 천재의 흥망>)도 스튜디오의 입장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편견으로 가득하다. <로즈버드…> 같은 경우 웰스는 자기 중심적이고 비도덕적이고 아무것도 끝내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고 써내려간 책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변호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 톰슨의 책엔 자신이 조사해서 쓴 게 하나도 없다.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다시 한번 글로 써서 남긴 것뿐이다. 예를 들면 웰스는 부유한 혁명가들만 좋아한다고 했는데 절대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웰스의 주변에는 가난한 빈털터리 혁명가 친구들이 많았다. 내 책의 제목은 <오슨 웰스의 발견>(Discovery of Orson Welles)인데, 이미 완결된 상태이고 출간은 내년쯤에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흔히 웰스가 이런 사람이라고 확실한 결말을 짓고 싶어하는데, 찰스 디킨스 전집을 갖고 있으면 그를 모두 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웰스를 완벽하게 안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의 세계란 퍼즐과 같다. 그를 이해하는 과정은 곧 발견의 과정이고, 우리는 소실된 부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홍성남: 웰스의 <오셀로>에 대해 당신이 쓴 글을 본 적 있다. 왜 미국에서 이 영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가에 대한 내용인 걸로 기억한다.

조너선 로젠봄: 데이비드 톰슨의 저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웰스를 ‘실패한 할리우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를 ‘성공한 독립영화감독’이라고 보고 싶다. 몇번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이용할 기회가 있었던 성공한 독립영화감독으로서 말이다. <오셀로>는 <시민 케인>에 비견될 만큼 훌륭한 작품이고, 촬영방법과 예산을 모은 방법 등에서는 <시민 케인>보다 혁신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이 영화는 제작비 문제로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여러 장소를 전전하며 찍은 것으로 유명한데 웰스는 그같은 시공간적 ‘간극’들을 훌륭하게 메워낸 완성본을 만들어냈다). 이를 실패한 할리우드영화로만 보면 이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홍성남: 웰스가 할리우드에서 배척당하는 것을 당신이 지적하는 것은, 허우샤오시엔이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현재 미국의 극장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놓여 있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조너선 로젠봄: 미국 관객은 어떤 영화가 되었든지 간에 여러 유형의 영화들을 꽤 잘 받아들이는 편이다. 단지 앞에서 이야기한 감독들이 선보일 기회, 노출될 기회가 없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 관객에겐 <오셀로> 같은 작품이나 허우샤오시엔, 키아로스타미 같은 감독들을 접할 기회가 없을 뿐이지 그들이 그런 감독의 영화를 특별히 거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해 알고 또 그들의 영화를 봐야 거부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 않겠는가. 정보가 없는 게 문제라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키아로스타미가 미국 대중에게 소개되기만 하면 그가 단번에 스필버그처럼 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점은 바로잡고 싶다. 많은 이들이 ‘대중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단정짓는데 그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건 대중도 모르는 일이다. 또 한 가지, 박스오피스 수치가 대중이 원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중은 자신들이 알고 있고 고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영화들을 보는 것뿐이다.

비평가들이 더 많은 영화를 알아야 한다

홍성남: 앞에서 이야기한 미국의 영화문화는 당신에게 중요한 문제의식인 것 같다. 하지만 종종 당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문제 해결에 있어 당신이 너무 이상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냐고 반문하곤 한다. 여하튼 당신은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조너선 로젠봄: 우선 비평가들이 더 많은 영화를 알아야 한다. 돈을 들여 홍보가 잘되는 영화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다른 영화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 다른 건 60년대의 이상적 조건에 대한 것인데, 당시에는 어떤 영화나 감독들이 소문이나 전설을 통해 퍼졌다. 고다르도 주류에 의해 알려진 것이 아니라 관객이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하면서 알려졌다. 이런 현상들이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더 잘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편으로, 미국은 영화 티켓 판매 정도보다 DVD 판매 정도가 더 높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박스오피스만 보고 영화문화가 이렇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다.

홍성남: (빼도 무방할 것 같은 사항)자신보다 젊은 시네필 평론가들에 대해 얘기하면서, 외계에서 온 이들이 서로 모르면서 지구에 흩어져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 있다. 그런 이들의 존재가 지금의 고쳐져야 할 영화문화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고 생각하나.

조너선 로젠봄: 그렇다. 내가 알기론 그런 힘이 될 비평가들이 전세계에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버라이어티>에 있다가 <로스앤젤레스 위클리>에서 글을 쓰고 있는 스콧 파운대스는 아주 공격적이고 진지한 글을 쓴다. 내가 좋아하는 캐나다 잡지 <시네마 스코프>에 DVD 리뷰를 쓰는 필자들도 훌륭하다. 미국에서 인터뷰를 하면 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로 진행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지구 반대편인 한국에서 내 저서를 심도 깊게 읽고 와준 것도 고맙고 놀랍다.

홍성남: 마스무라 야스조에 대해 말하길, 그가 직접적인 연결이 없으면서도 동시대를 산 다른 감독들, 새뮤얼 풀러, 더글러스 서크, 니콜라스 레이, 프랭크 태슐린 등과 동일한 관심사를 공유하더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흥미가 갔다고도 했고. 그러면서 ‘전지구적 동시성’(Global Simultaneity)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최근에 그런 현상을 발견한 대상이 또 있었나.

조너선 로젠봄: 사실 <무비 뮤테이션즈>(Movie Mutations, 로젠봄과 에이드리언 마틴이 편집을 맡아 2003년에 출간된 책) 자체가 그런 관심사에서 나온 산물이다. 그것에 참여한 세계 각국의 1960년대생 시네필들, 예컨대 니콜 브레네즈(프랑스), 켄트 존스(미국), 에이드리언 마틴(호주) 등에게서는 비슷한 취향이 공유되고 있음이 발견되더라. (내 취향은 아니지만) 필립 가렐, 몬티 헬먼, 존 카사베츠 같은 감독을 좋아하는 성향 말이다. 그래서 ‘전지구적 동시성’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요즘은 전세계 어디서나 영화의 역사를 공유한다. 단순히 모든 나라에서 대형 제작사들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통분모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결속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가령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시를 싫어하고, 미국인들도 부시를 싫어한다. 그러나 이 공통성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 공통분모를 연대로 이어갈 수 있는 기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홍성남: (빼도 무방할 것 같은 사항)키아로스타미에 대한 책을 이란 사람(이란의 영화감독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메흐르나즈 사에드 바파)과 같이 썼다. 그것도 그런 국제적 결속의 한 노력이지 싶은데, 앞으르도 그런 식으로 작업할 생각이 있는가.

조너선 로젠봄: 그 책뿐만 아니라 <무비 뮤테이션즈>도 동일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노력을 계속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메흐르나즈 사에드 바파가 프랑스 잡지 <트래픽>에 글을 쓸 때, 그녀의 이름만 올라 있지만 그 글의 형상화에 내가 도움을 줬다. 그 역시 내가 이란의 비평가들과 얘기할 때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책에 실린 두 사람의 대화 부분이 이란과 호주 잡지에 동시에 실린 것을 보고 기뻤다. 이 책을 쓸 때 키아로스타미와는 팩스를 통해서 인터뷰를 했다. 그 과정에서 페르시아어로 내 이름 쓰는 걸 배우기도 했다.

홍성남: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뀌려는 조짐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영미권 비평에서는 고다르에 대한 논의가 어느 시점에서 멈춰져 있는 상태이고 그의 ‘현재’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다르의 현재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갖는 몇 안 되는 영미권 평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나.

조너선 로젠봄: 전세계적으로는 고다르에 관한 커다란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고다르 영화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책도 있고, 일본에서는 <영화사> DVD가 훌륭한 모양새로 나왔다. 사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갖는가보다 그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들이 얼마나 열정적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글도 아무 생각없이 500만명이 읽는 것보다 5명이 읽고 감동받아 세상을 바꾸자고 생각한다면 그게 더 중요하다. 영화에서도 스튜디오 마케팅 때문에 수치에 연연하는데, 나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상업영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홍성남: 고다르와 동년배이면서 점점 더 비평적 주가를 높여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그에 대한 당신 글은 그리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조너선 로젠봄: 사실 이스트우드에 대해서도 글을 많이 썼다. 그의 영화들 가운데에는 <추악한 사냥꾼>(White Hunter Black Heart)을 가장 좋아한다. 액션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대해서도 글을 썼고 매우 좋아한다. 그외에도 여러 가지 썼는데 지금 떠오르는 영화들은 이렇다. 그는 전적으로 어떤 대본을 갖게 되느냐에 좌우되는 감독이다. 물론 연출력이 출중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그는 이제는 사라져가고 있는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양식의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점 때문에 높이 살 만하지만 같은 이유로 과대 평가될 위험도 있다. 자신이 대본을 쓰지 않기 때문에 어떤 대본을 갖고 영화를 만드느냐에 따라 영화의 질이 들쭉날쭉하다. 사실 그가 개봉 전 시사회를 갖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선 찬사를 보낸다. 그럴 수 있는 자유를 높이 평가한다. 스필버그만 해도 개봉 전 시사회를 열지 않을까 싶은데. 그리고 덧붙이자면 나는 상업영화를 거부하거나 하는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스필버그의 <A.I.> 같은 작품은 최근 나온 영화 중 걸작이라고 할 만하다.

홍성남: (빼도 무방할 것 같은 사항)세르주 다네나 레이먼드 더그냇 같은 뛰어난 평론가들에 대해서도 꾸준히 글을 써왔다.

조너선 로젠봄: 두 사람 다 친구였다. 다네와는 특히 친했고 함께 작업한 적도 있다. 흔히 비평가들에 대해 얘기할 때 그들간의 경쟁에 주목하는데, 나는 비평가들 사이에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굉장히 영향력있는 비평가인 로저 에버트의 경우 그의 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인간적으로 친한 친구고, 시카고에서 시사회에도 자주 같이 간다. <무비 뮤테이션즈>에 참여했던 많은 비평가들과도 친하다. 크리스 후지와라 같은 이는 만난 적은 없지만 그의 글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도 매우 좋아한다. 비평가들이 서로의 글을 많이 읽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홍성남: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다른 시각문화들도 발전하면서 영화라는 존재가 예전보다 힘을 상실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시대에 영화의 지위와 영화에 대한 글쓰기의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너선 로젠봄: 영화는 여전히 굉장한 영향력이 있는 매체다. 단지 어떻게 영향을 주느냐 하는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 5편을 집에 두고 계속 볼 수 있는 시대, 그래서 영화와 더 친밀해져서 집안에서 그 영화로부터 영향을 받는 시대가 온 것 같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영화의 역사를 더 정확하게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시대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한다.

홍성남: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당신은 부당하게 간과되거나 무시당한 감독들에 대해 집중해왔다. 현재의 감독 중 그런 인물이 있다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조너선 로젠봄: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가장 최근에 그의 작품을 봐서 그런지 제임스 베닝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딱 이 사람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내 연배의 인물인데 그렇게 잘 알려지지는 않아서 미국에서는 DVD도 거의 안 나와 있다. 비평가협회에서 상을 받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는 굉장한 실험영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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