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 소녀들에게 행해지는 할례를 다룬 걸 봤다. 그런데 아프리카 여성과 해외 NGO의 여성 할례 폐지 노력을 보여주고자 했음에도 머릿속에 남은 건 문명이 자리잡지 못한 아프리카 모습뿐이다. 같은 소재를 다룬 <물라데>의 감독 우스만 셈벤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가치와 상징이며, 우리의 문화를 존중하면서 영화작업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밖의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기준으로 아프리카 문화를 평가하곤 한다. 제3세계 영화의 하나로 분류되는 아프리카영화라는 말 자체가 우스운 건, 아프리카에 한 종류의 영화밖에 없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며 작업을 해나가는 아프리카의 감독들은 독자적인 미적 가치, 영화와 세계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고자 힘쓰는 자들이다. 슐레이만 시세가 연출한 <광채>는 아프리카영화를 언급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작품이다. 문자보다 말을 통해 이야기와 문화가 전수되는 아프리카의 양식, 그러니까 이야기가 영화를 이끌고 배우들은 이야기의 지시로 대사를 읊는 듯한 <광채>는 말리의 옛 전설을 바탕으로 한다. 불타는 태양과 새의 이미지 그리고 잃어버린 신화의 세계에 서구 평단이 매혹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나, <광채>의 주제는 좀더 보편적인 곳에 있다. 전통을 거스른 아들과 그를 죽이려는 아버지가 투쟁하는 가운데 서아프리카의 땅과 민속문화를 거치는 여정은 생명과 파괴, 정화, 용서, 저주, 희생을 품고 있다. 한 얼굴의 두 아버지를 비추며 삶과 죽음, 선과 악의 양면성을 끈질기게 파고들다 결국 선을 택하는 미래의 아이에 이르러 희망을 노래한 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물라데>는 아프리카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셈벤의 근작이다(<할라>가 세계를 뒤흔든 게 언제인데 그의 작품을 고작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한 칸영화제는 어리석었다). ‘전통 관습에 희생당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다룬 <물라데>의 영역은 표면적인 주제를 넘어 근대화 과정에 따른 권력다툼, 강압적인 폭력에 맞서 여성 해방을 외치는 여전사의 탄생, 전통 문화와 현대 미디어의 충돌에까지 폭넓게 닿아 있다. 가히 아프리카영화의 한 방향을 제시한 문제적 작품이라 하겠다. 프랑스 제작사 등 외국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아프리카에서 영화 한편이 만들어지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한다. 그러니 거의 접하기 힘든데다 수용 단계에서 다시 난관을 겪는 아프리카영화는 우리에게 영원히 변방의 영역으로 머무를 것 같다. 그들에게 격려와 함께 관심을 갖자고 섣불리 말하기조차 쑥스러운 이유는 그렇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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