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피도 눈물도 있는 액션 짝패, <짝패>의 류승완, 정두홍
2006-05-26
글 : 김현정 (객원기자)
글 : 김도훈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피도 눈물도 없는 짝패가 만났구나. 장소는 서울 근교의 황량한 폐건물과 잡초 무성한 야산이렷다.
류승완과 정두홍이 만났구나. 장소는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의 으리으리한 박찬욱 감독집. 그 옆에 붙어 있는 서울액션스쿨과 잡초 무성한 뒷마당이렷다.
오늘 그들의 미션은 거대한 암흑의 조직으로 급습하는 것이렷다. 얼굴엔 상처 가득하고 주먹엔 힘줄 빳빳하니 쌈박질할 준비는 날 때부터 다 되얏다.
오늘 그들의 미션은 <씨네21> 표지 사진을 찍는 것이렷다. 거참 붉게 상기된 표정이 쑥스럽기 그지없구나. 분장한 상처와 반창고는 자꾸 떨어져내리니 이를 어찌할꼬.
까만 정장 반드르르 걸치고 들판에서 호령하니, 짝패 앞엔 천하에 무서운 놈 하나 없구나.
해는 중천에서 쪄대는데 검은 정장은 흡성대공으로 자외선을 쑥쑥 흡수하는구나. 원 참 뜨거워서 모델 노릇 못하겠다는 표정 못 보여드려 죄송하구나.
정두홍은 눈빛으로 벚꽃을 떨구고, 류승완은 이단발차기로 매화를 떨구니, 이거 어디 무서워서 카메라나 들이대겠느냐.
정두홍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류승완은 틈만 나면 호통질에 장난질이니. 우리 사진기자, 정신 사나워 못해먹겠다는 말이 입 밖에 나오는 듯하구나. 그럼. 이 짝패들 빤지르르한 외양 말고, 진솔한 속내 어디 한번 들어볼까나.

류승완이 말하는 <짝패>

본질적인 액션영화의 흥분을 느끼고 싶었다. 어릴 적에 극장에서 보았던 액션영화를 향한 두근거림과 갈증이 있었는데, 그 세계의 방점을 찍지 않고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면 후회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르영화를 벗어난 <주먹이 운다>를 찍으며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정두홍 감독과는 ‘우리 진짜로 생짜 액션 해보자’는 이야기도 있었고. 나는 <짝패>가 내가 만드는 순수한 형태의 액션영화로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두홍 감독도 나이가 있기 때문에 스크린에서 완숙한 경지의 액션을 펼치는 건 마지막일 수도 있을 거다. 헤이리에 거주하시는 박모 감독은 말리기만 했지만(웃음), <주먹이 운다> 인터뷰를 하며 투자를 위해 자주 <짝패>를 언급했더니 관심을 가져주는 데가 있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류승완이 말하는 무술감독 정두홍

<피도 눈물도 없이>를 하며 처음 정두홍 감독과 일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면을 찍고 나면 현장편집하는 친구 옆에 가서 뭐라고 말을 거는 모습이 간섭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그 친구에게 물어보니 몸으로 영화를 체득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더라고 했다. 정두홍 감독은 그처럼 행동하는 사람의 숭고함 같은 것이 있다. 나는 아직도 현장을 두려워하지만, 정두홍 감독은 현장이 부딪쳐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자신에게 굉장히 엄격하다. 현장에서 장난처럼 젊은 친구들과 턱걸이 내기 같은 걸 해도 절대 안 지려고 하고(웃음), 모니터를 볼 때마다 속상해한다. 고등학생들과 패싸움하는 장면을 찍는데 이사람이 점프력이 너무 좋다보니 간판까지 뛰어올라 얼굴이 찢어진 거다. 빨리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정두홍 감독이 꿰매면 촬영에 차질이 생긴다며 일단 얼음찜질만 하겠다고 우긴 일도 있었다.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보니 류승완과 정두홍의 매뉴얼 같은 것도 생긴 듯하다. 요즘은 정두홍 감독이 아무 말 없이 삐져 있을 때가 있는데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든 액션 중에서 훌륭한 장면은 대부분 그렇게 싸움과 긴장 끝에 나온 것들이다.

류승완이 말하는 영화배우 정두홍

사람들이 아는 정두홍은 칼날도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무서운 사람이지만 사실 그는 섬세하고 여린 구석이 많다. 함께 <너는 내 운명>을 보는데 내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어찌나 울던지. (웃음) 그런 예민한 성격이다보니 캐럭터와 자아를 분리하지 못해 <아라한 장풍대작전>처럼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주면 연기하기 힘들어한다. <짝패>의 태수는 실제 정두홍 감독과 비슷한 인물이다. 육체적으로는 강인하지만 고독과 두려움을 느끼는 연약한 남자라는 면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 정두홍 감독이 연기하는 몇몇 장면은 계산해서 나올 수 없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경찰서에 있는 후배가 빨리 서울에 올라오라고 하니까 “몰라, 몰라” 하고 전화 끊는 장면은 참 좋아한다. 운당정에서 필호를 바라보는 장면도 그렇다. 상대에 대한 연민과 자신에 대한 연민이 배어나온다.

오프 더 레코드

정두홍 감독은 배우협회에도 소속되어 있고(웃음) 연기자로 활동해왔지만 감정이나 화술 연기는 어려워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주로 소주나 맥주에 기대어 연기를 하곤 했다. (정두홍 감독이 극구 부인하자) 농담하지 말라고? 메이킹 필름 보면 다 나오는데 뭘 그러시나. (웃음)


정두홍이 말하는 <짝패>

솔직히 내가 직접 출연하려던 건 아니었다. (웃음) 처음엔 <거칠마루> 같은 영화처럼 저예산으로, 1억원만 가지고 액션영화를 만들어보자 했다. <장군의 아들>과 <테러리스트> 이후로는 그런 느낌의 영화가 없었잖아. 사실 1억원은 힘들고 딱 10억원으로 만들어보자고 시작했는데, 프로덕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20억원으로도 힘들겠다는 걸 알겠더라. 특히 프로듀서가 그 돈으로 스탭들 밥이나 제대로 먹일 수 있나 하고 고민을 참 많이 하더라. 그래서 아무리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더라도 그런 세세한 부분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의 비디오 대여점에 가면 일본과 홍콩 액션영화 DVD가 많이 꽂혀 있다. 하지만 한국 액션영화는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꼭 이런 순수한 액션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둘이 주연할 줄 알았으면 안 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처럼 악당 역이나 시킬 줄 알았지. (웃음)

정두홍이 말하는 영화감독 류승완

류 감독은 영화 한편을 끝내면 항상 성숙해진다. 그런데 영화에 몰입할 때는 그냥 제 성격이 나온다. 예민해지는 거다. <아라한 장풍대작전> 할 때는 메가폰도 집어던지고. 성격은 안 달라지는 거다. (웃음) 그 스타일을 알다보니까 <짝패> 때는 감독이 예민해질 때쯤 어디로 피하곤 했다. 부딪쳐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땐 그냥 ‘이렇게 가는 거 생각만 한번 해봐요’라고 말하고는 그냥 다른 데로 가버렸다. 나중에 류 감독이 류승범에게 전화해서 자기가 <아라한 장풍대작전> 때 얼마나 못되게 했는지 알겠다는 전화를 했다더라. 그 말 듣고는 참 반가웠다(류승완 감독 끼어들며 “그래도 카메라 뒤에 서니까 예전이랑 똑같아지던데”). (웃음) 류 감독이 예전보다 배우 마음을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게 나도 기분좋게 느껴지고. 사람은 원래 마음이잖아. 다 가슴에서 나와야 하는 거라니까.

정두홍이 말하는 영화배우 류승완

정말 훌륭한 배우다. 솔직히 굉장히 놀랐다. 저 인간 정말 잘하는구나 싶었다. 사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부터 주연으로 데뷔한 배우고, 또 이창동 감독 같은 사람들이 연기시키려고 섭외도 많이 한 걸로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도 첫날 엄마랑 대화하는 장면에서 연기하는 걸 보고는 같이 출연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긴장이 덜컥 되더라. 아우, 저 인간, 정말 배우구나. 감독이 아니라 배우구나 싶더라니까. 영화를 봐도 화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논다. 나는 대사를 하나만 줘도 금방 굳어져버리고 차에 앉는 장면만 찍으면 저절로 조는데. (웃음)

이번 영화를 하면서, 또 류승완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의 책임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이전에는 그저 속으로 ‘나는 배우가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카메라 앞에서 대사를 하고 연기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프 더 레코드

이번 작품 하면서 류승완 감독도 많은 걸 느꼈을 것 같다. 그동안은 몰랐지만 액션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는지 알게 되었을 거다. 나이 먹어서 제대로 액션해보니까 젊을 때 발악으로 하던 것과는 고통의 수위가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알았겠지. (류승완 끼어들며) “정재영, 전도연, 류승범, 아주 주마등처럼 스쳐가더라.” (웃음)

분장 이정민, 남무늬 스타일리스트 김은영 의상협찬 유니클로, 포니,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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