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호프먼과 카포티 [2]
2006-05-31
글 : 김도훈

콤플렉스를 씻고 새로운 경지에 서다

<미션 임파서블3>

그리고 <카포티>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어디에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조연배우의 한계를 벗어난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당도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정점에 도달했다. 패배자이건 드랙퀸이건 자유로운 영혼이건 악당이건, 과거의 호프먼은 언제나 호프먼이었다. 심지어 관객의 속을 고통스레 뒤집어놓는 토드 솔론즈의 <해피니스>에서도 호프먼의 비루하고 처참한 캐릭터는 등을 토닥거려주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놈이었다. <카포티>는 그런 욕망과는 조금 다른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호프먼은 주책없을 정도로 명성과 재능에 눈이 먼 천재 작가의 초상에 인간적인 약점을 덧붙이고,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카포티를 존경하는 동시에 경멸하고, 사랑하는 동시에 미워하도록 만든다. 이를테면 호프먼은 <카포티>로 카포티 같은 괴물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호프먼이 이제 할리우드식 휘황찬란한 카리스마를 갖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카포티> 이전이었다면 <미션 임파서블3>의 악역은 그저 유능한 성격파 배우의 악역 나들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카포티>와 오스카 이후에 당도한 <미션 임파서블3>의 호프먼은 스타의 아우라를 폭풍처럼 휘몰아쳐 톰 크루즈의 아우라를 종종 덮어버린다.

혹시 호프먼은 이같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불편해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섣부른 걱정을 하기 전에 호프먼이 원래 예민한 예술가 타입의 인간이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을 일급의 캐릭터 배우로 만들어준 외모에 대해서도 불평을 늘어놓을 줄 아는 젊은 배우였다. 그가 <리플리>에 출연한 이후 “주드 로처럼 생겼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다”고 고해한 것을 애써 마음 넓은 조연배우의 귀여운 투정이라 웃어넘길 일은 아니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나의 외모에 대해서 쓰는 기사들에 대해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영화로 내 외모를 지켜보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 외모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건 신경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만약 내가 어떤 역할에 마음을 모조리 부어넣어 연기했는데도 사람들이 외모 때문에 그 연기를 거부한다면, 그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카포티>는 호프먼이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신체적, 정신적 콤플렉스를 완벽하게 벗어던진 일종의 씻김굿일지도 모른다. 호프먼은 트루먼 카포티의 영혼을 씻김굿하듯이 비범한 메소드 연기에 자신을 쏟아부었고, 영화는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라는 배우의 영혼을 씻김굿한 셈이다.

<25시>
<펀치 드렁크 러브>

마지막 질문은 남는다. 훌륭한 캐릭터 배우가 화려한 스타 이미지의 광풍을 만났을 때 어떤 경지로 진화할 것인가. 호프먼은 21세기가 오기 전의 한 인터뷰에서 신경증적으로 예술가의 고뇌를 고한 바 있다. “나에게 연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직업이다. 연기가 성에 차지 않거나, 스스로에게 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 나는 정말로 불행해진다. 나는 참으로 가련한 존재가 아닌가. 나는 내 자신의 조각들을 모조리 연기에 부어넣는다. 그리고 그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순간 정말로 수치심을 느낀다. 나는 두렵다. 사람들은 ‘호프먼이라면 다른 것도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못하는 배우가 될까봐 두렵다.” 그는 14년 동안 37편의 영화를 통해 잠재워온 두려움을 <카포티>를 통해 온전히 버렸다. 새로운 경지에 올라선 동시에 또 다른 위태위태한 걱정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톰 크루즈보다 다섯살이 젊은 나이에 위대한 배우가 되어버린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대변해온 캐릭터 배우라는 이름과 스타 이미지의 균열을 스스로 이어붙여 극복해야만 한다. 하지만 <인 콜드 블러드> 이후 한권의 책도 쓰지 못한 채 알코올중독자로 죽은 트루먼 카포티의 절정을 그가 따를 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젊은 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은, 이미 한번 카포티였기 때문이다.

호프먼의 차기작

시드니 루멧과 작업하려나

현재 그의 앞에는 단 두편의 프로젝트만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호프먼이 촬영에 가담하고 있는 영화는 폭스서치라이트 픽처스가 제작하고 <비버리 힐즈의 아우성>(1998)의 타마라 젠킨스 감독이 연출하는 <야만인들>(The Savages). 그는 이 작품에서 소원하게 지내던 아버지의 병 수발을 강제로 떠맡게 된 남매를 로라 리니와 함께 연기한다. 젠킨스 감독은 “지금 세대의 가장 흥분되는 배우와 영화를 만드는 것은 모든 영화감독들의 꿈”이라는 말로 호프먼과의 작업을 표현했다. 촬영이 진행 중인 <야만인들>보다 흥미를 끄는 작품은 시드니 루멧의 신작인 <너의 죽음을 악마가 알기 전에>(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이 작품은 일군의 강도들이 계획하던 강도짓이 잘못 틀어진다는 간단한 시놉시스만 알려진 일종의 하이스트무비로, 호프먼은 아직까지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외에 호프먼은 호주에서 한동안 머무르며 시드니 시어터 컴퍼니와 함께 연극을 한편 연출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카포티>로 진을 뺀 호프먼은 조금 넉넉한 마음으로 수많은 대본을 뒤적이며 다음 영화를 결정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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