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일,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등 미국 주요 도시의 27개 상영관에서 개봉하는 <태풍>의 진로가 남다르다. 5월18일 <태풍>의 레드 카펫 프리미어 행사가 열린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아크라이트 극장 앞. 환호하는 한국 교민과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계 미국 팬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레드 카펫을 밟은 두 주연배우 장동건과 이정재. 지금도 아시아 곳곳 한류 열풍의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낯익은 이미지지만, 무심한 듯 힐끗거리며 지나가는 행인들이 여기는 할리우드임을 낯설게 상기시킨다. 지금껏 한국영화 개봉의 현장에서 느끼지 못한 이 낯섦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에 배급되는 한국영화가 공식적으로 감독과 주연배우를 초청해 팬들과 언론에 영화를 홍보하는 프리미어 행사와 미디어 정킷을 개최한 것은 <태풍>이 처음이다. <태풍>은 또한 <집으로…> 이후 파라마운트 클래식과 두 번째로 손잡은 CJ엔터테인먼트가 직배 형식으로 미국에 개봉하는 첫 번째 한국영화다. 텃세 심한 미국시장에 첫걸음을 내디디며, CJ엔터테인먼트는 ‘구색 갖춘’ 마케팅 캠페인을 시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배급사를 통해 개봉한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예술영화나 특정 장르영화 팬들을 타깃으로 한 틈새시장에서 단기간 상영, DVD나 비디오 발매라는 전철을 통해 제한적으로 미국 관객과 만났다. 최근 한국 영화산업의 비약적인 성장과 한류 열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영화제를 통해 감독을 초청하고 언론 홍보를 하는 방식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 취향이 아닌 일반 관객을 타깃으로 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의 경우, 영화의 규모와 상업적 가능성에 대한 한국과 현지의 기대 차이로 판매, 배급, 마케팅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등은 아예 한국 동포가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시카고 등 일부 도시에서 영어자막 없이 한국 동포 관객을 위해 제한 상영되기도 했다. <태풍>의 경우, 미국 내 외국영화의 지위를 고려하되 ‘한국 블록버스터’라는 정체성을 살리는 나름의 마케팅을 고민한 듯하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 따르면,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 영화산업과 한류의 위상이 <태풍>을 자리매김하는 데 가장 큰 발판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부분 상영, 이후 확대’라는 플랫폼 상영 방식을 따르기는 하지만, 한국 교민뿐 아니라 범아시아 커뮤니티로 타깃을 확대하고 할리우드영화에 버금가는 기술적 완성도, 한류 스타 장동건, 이정재의 스타 파워를 최대한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고.
린킨 파크, 브룩 리 등 현지의 스타들과 언론 관계자들, 팬들이 참석한 프리미어 행사는 이런 맥락에서 <태풍>을 제대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를 반영하듯, 시사회에 앞선 무대 인사에서 곽경택 감독은 <태풍>을 “현재 한국 영화제작 기술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영화로 소개했다. 장동건 역시 “한국영화 역사상 그리고 개인적으로 미국에서 정식 프리미어 행사를 가지는 뜻깊은 자리”라고 소감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30여 매체가 참석한 미디어 정킷 행사에서 장동건, 이정재 두 주연배우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역시, 한류 열풍과 한류 스타로서의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한다. 곽경택 감독은 “아시안 마이너리티 언론계가 대거 참석해서인지 <태풍>을 한국영화로서만이 아니라 범아시아영화로 접근하는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이 인상 깊다”고 전한다. 한편 현지 언론은 “정치적 내용을 다룬 액션블록버스터”라는 점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는데, 탈북자 미국 망명 등이 이슈가 되고 있는 현 상황이 <태풍>의 흥행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마침 홍보행사 중 곽경택 감독은 한국 문화원에서 재향군인회가 수여한 ‘평화의 사도’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 개봉되는 <태풍>은 상영시간을 103분으로 줄이고, 스토리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재편집한 인터내셔널 버전이다. 17살 이하의 한류 팬이 관람하기엔 까다로운 조건인 성인 보호자 동반 의무, R등급을 받았다. 비록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글로벌 마케팅 켐페인의 규모에 비교할 수 없지만, 한국영화의 위상을 위해 형식을 갖춘 마케팅 켐페인을 시도한 <태풍>의 사례는 분명 진화하는 한국영화 배급의 새로운 모습이다. 이 노력의 결과인 흥행 성적이 어떨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제대로 소개받는 형식도 중요하지 않은가. 한국영화가 한국 교민의 품을 벗어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