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컴백 이대근 [1]
2006-06-06
글 : 문석
사진 : 오계옥

이대근이 돌아왔다. 한국 영화사 속에서 걸출한 액션 스타로, 그리고 고전 해학극의 달인으로 남아 있는 그가 현재진행형의 역사를 쓰기 위해 영화 현장으로 컴백한 것이다. 현재 <이대근, 이 댁은> <무림 여대생> <아내의 편지> 등 세편의 영화를 찍거나 찍을 예정인 이대근을 만나 신작과 화려한 과거에 대해 들어봤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이대근의 액션영화에 심취했던 영화감독 오승욱이 그에 관한 아주 개인적인 글을 보내왔다.

1. “나 이대로 끝나지 않아∼!”

모두 깜짝 놀랐다. 이제 호호할아버지가 됐을 ‘왕년의 스타’를 기다리던 기자들과 영화사 직원들 앞에 나타난 건 팽팽한 얼굴과 단단한 근육의 사나이였다. 호적 나이로 예순넷, 그리고 본인에 따르면 “그보다 꽤 더 먹은” 이대근은 많아야 5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6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한국 마초의 아이콘’으로 불릴 정도로 진한 남성성을 뚜렷하게 각인시켜왔던 인물답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여전히 그를 둘러싸고 있는 듯했다.

영화로는 2002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 드라마로는 <그녀는 짱> <형사>(이상 2003년) 이후 잠잠했던 이대근은 최근 영화로 다시 대중 앞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도 1편이 아니라 3편을 통해서. 아예 그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붙인 <이대근, 이 댁은>(감독 심광진)과 <무림 여대생>(감독 곽재용)은 막 촬영에 돌입했고, <아내의 편지>(감독 하명중)도 머지않아 시작될 예정이다. 게다가 5년 전 사별한 아내의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졌던 자식들과 떠들썩하게 재회하는 한 쓸쓸한 노인의 이야기 <이대근, 이 댁은>에서는 오랜만에 주연을 맡았으니, 박모 개그맨 식으로 말하면 이대근에게 지금은 ‘제10의 전성기’쯤 될 것 같다.

-굉장히 오랜만에 영화에 출연하십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연기생활을 한 40년 하다 보면 쉬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요. 무슨 얘기냐면, 이미 눈이 렌즈로 바뀌었단 말이지. 그리고 머릿속에는 창작이 가득 차 있어. 그렇게 피곤하게 지냈어요. 그리고 그동안 바빠서 못 만났던 친구들, 선배, 후배도 만나고 미국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도 보러 왔다갔다하고.

-<이대근, 이 댁은>은 상당히 오랜만의 주연작입니다. 어떻게 출연을 결정하셨습니까.
=처음에 작품이 왔기에 내 이름을 갖고 무슨 영화냐, 하고 봤더니 작법이 좋더라고. 물론 테마도 좋고. 개인주의가 판치는 시대이다보니 혼자 외롭게 사는 노인도 많아졌고, 자식과 부모의 갭도 벌어졌어요. 내가 보기에 이 작품의 테마는 ‘세상에서 가장 큰 병은 외로움이다’란 건데, 그런 게 좋았어.

-제목에 실제 이름이 들어가서 부담도 됐을 것 같은데요.
=영화 제목에 내 이름이 들어간 건 두 번째요. 첫째가 <대근이가 왔소>지. 그땐 잘나갈 땐데, 마도로스로 출연해서 액션을 하라고 해서 봤더니 제목이 그렇더라고. 선배들이 ‘야, 이렇게 오래 연기를 해도 제목에 내 이름을 딴 적은 없어. 영광으로 생각해’라고 했지. 게다가 이번에는 성까지 들어갔으니…. 그런데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일이 좋아서 미쳐서 하는 것뿐이지.

-본격적인 노역 연기는 거의 하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요.
=영화에서 노역을 제대로 한 것은 문제가 생겨서 완성을 해놓고도 지금껏 영화진흥위원회에 묶여 있는 조문진 감독의 <만날 때까지>라는 작품이야. 고무신 한 켤레 사러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분단을 맞은 사람 역이었어. TV로 치면 아주 초창기부터 KBS의 <박서방>이라는 드라마에서 노역을 했고, 김종학이 연출한 <고산자 김정호>에서도 70대 연기까지 했지. 그런데 액션영화, 사극, 향토물, 사회비판물, 멜로드라마까지 여러 장르의 영화를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오랫동안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만약 내가 한 캐릭터를 했다면 이 시간까지 못 왔어. 젊은 역도 하고 노역도 해야 생명력이 있는 거라고 봐.

-다른 두 영화도 소개해주십시오.
=<무림여대생>은 자세히 소개할 수가 없어. 하여간 여기서는 오랜만에 액션연기도 보여준다고. 홍콩 스탭들이 많이 참여해서 제대로 된 액션을 보여줄 거야. <아내의 편지>는 최인호 소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하는데, 40대 중반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연기를 하게 돼. 두 작품 모두 조연이지.

2. “내겐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가 있어”

케이블TV를 통해 반복 방영되고 있는 <뽕> <변강쇠> 등을 통해서만 이대근을 접한 이라면, 그를 단지 ‘코믹한 에로 배우’ 정도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체계적으로 훈련된 정통 배우다. 이대근은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1960년대 극단 민예와 극단 성좌를 통해 연극무대에 섰고, 이후 공채 탤런트로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으며, 영화에 진출한 60년대 말부터 70년대 말까지는 최고의 액션 스타로 군림했다. 특히 <실록 김두한>을 시작으로 5부까지 이어진 ‘김두한 시리즈’는 그의 호쾌한 액션을 세상에 널리 알린 대표작이며, <거지왕 김춘삼> <제삼부두 고슴도치> <오륙도 이무기> <시라소니> 또한 그 특유의 ‘원투 스트레이트 펀치’ 액션을 화끈하게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 와중 이대근은 김수용 감독의 <화려한 외출>, 유현목 감독의 <장마>,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 정진우 감독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이장호 감독의 <어둠의 자식들> 등의 문제작에 출연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수많은 연예인들로 하여금 ‘마님∼’이라고 하는 성대모사를 하게 한 그의 ‘에로영화’ 경력은 1985년 이두용 감독의 <뽕>으로 시작된다. 이후 그는 <변강쇠> <호걸춘풍> <가루지기> <고금소총> 등 여러 편의 과거를 배경으로 해학과 에로티시즘을 곁들인 작품에 출연하면서 ‘정력남’ 또는 그의 출연작 제목이기도 한 ‘대물’의 이미지를 굳히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적지 않은 오해가 자리한다.

-액션영화를 굉장히 많이 찍으셨습니다.
=300여편에 출연했는데, 그중 절반이 액션영화야. 한창때는 하루에 7편을 ‘가께모찌’(동시 출연)하기도 했고, 1년 동안 17편인가 18편에 출연한 적도 있어. 김두한 시리즈가 인기있을 때인데, 하루는 부산에 내려갔더니 깡패 30명이 둘러싸더니 ‘네가 싸움을 그렇게 잘해?’ 그러는 거야. 웃통 다 벗고 죽기 살기로 한번 붙자는 거야. 내가 ‘이건 영화요’라고 해도 계속 싸우자고 하더라니까. (웃음)

-액션연기를 할 때 대역은 쓰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예전에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이야. 당수, 그러니까 지금 말로 태권도지. 거기에 아마추어 레슬링, 아마추어 복싱, 그리고 기계체조도 잘했어요. 내가 마흔일곱살에 배를 밟고 사람 키를 뛰어넘었어. 내 영화에선 대역이 나온 적이 한번도 없어. 그러다보니 다치기도 많이 다쳤고, 죽을 고비도 수없이 넘겼지. 커다란 유리를 몸으로 뚫고 나가는 장면인데, 한 선배에게 ‘이것 뚫어봤습니까?’라고 물어봤더니 ‘그럼 뚫어봤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달려드는데, 커다란 유리조각이 떨어지고 해서 많이 다쳤다고. (웃음) <제삼부두 고슴도치> 때는 신성일씨가 간첩인데 배를 타고 도망가면 내가 물에 뛰어들어 쫓는 장면을 찍었는데, 작업복 같은 것을 입은 채 물에 들어가니까 옷이 물을 빨아먹는 거야. 꼼짝 못하겠더라고. 다행히 배가 발동이 덜 걸려서 NG가 나는 바람에 살아난 거야. <오륙도 이무기>를 찍을 때는 배가 달려가다가 섬에 부딪혀 폭발하고 나는 그 직전에 물에 뛰어드는 장면을 찍었어. 나는 물속에 들어가면 충격이 없겠지 했는데, 다이너마이트를 많이 실었는지 폭발하는 충격으로 물고기가 모두 바다 위로 떴는데 나라고 안 떴겠냐고. (웃음)

-액션연기의 모델이 된 분이 있습니까.
=모델이라기보다 내가 보기에 전세계에서 주먹이 제일 예쁜 사람이 박노식 선생이에요. 액션영화에서는 주먹이 예뻐야 하거든. 그리고 상대의 주먹이 날아오기 한참 전에 피하면 폼이 안 나거든, 스치기 직전에 삭 피해서 한방 날려야 멋이 있지.

-액션영화를 찍던 시절이 그립지는 않으신지요.
=그때는 모든 게 미약할 때야. 기술, 돈, 여건도 없을 때였지. 지금은 여건이 좋아졌으니, 나이를 먹었더라도 숀 코너리식으로 젊은 애들과 같이 액션 연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만 갖고 있을 뿐이지. 우리 때는 위험하니까 매일 아침 ‘이 작품이 끝난 뒤에 죽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어요. 중간에 죽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니까. 하루는 제주도 성산 일출봉 꼭대기에서 싸우는데, 카메라가 아래쪽에 설치돼 있어서 벼랑 끝에서 싸워야 보이는 거야. 아래는 새까만데, 둘이 치고 구르고…. 그런데도 이혁수 감독은 안 보인다면서 ‘더 나와, 새끼야’라고 소리치고. (웃음)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젊은 연예인들이 변강쇠 스타일의 성대모사를 하곤 하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으십니까.
=나는 나쁘게 안 봐요. 예전에 <거지왕 김춘삼> 할 때인데, 초인종이 울려서 누구냐고 물으니까, ‘거지요’ 하는 거야. 거지가 한 50명은 왔어. 그래서 전부 밥들 먹여 보내고 했다고. 그리고 김두한 연기할 때는 다들 ‘저기 김두한 간다’ 그러고 시라소니 연기할 때는 ‘시라소니 간다’ 그랬다고. 다들 자기가 본 것만 기억하는 거니까 흉내내는 것을 나쁘게 보진 않아. 단지 지금 사람들은 나를 에로 배우로 생각하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팬티 한장 벗어본 적이 없었어.

-어떤 점을 섭섭하게 느끼시나요.
=<변강쇠>를 예로 들면, 나도 처음엔 엄종선 감독이 각본을 가져왔을 때 ‘네가 정신이 있냐’고 했어. 그런데 제대로 읽어보고선 내가 사과했어. 예전 우리는 유교적 전통에서 살았잖아. 여자가 시집을 갔는데, 첫날밤을 지내고 눈을 떠보니 남편이 죽어 있는 거야. 우리 할머니들은 평생 그 집에서 살았지만 옹녀는 나온다고. 또 남자도 서자나 상놈으로 태어나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별볼일 없었어. 변강쇠도 상놈일 거라고. 게다가 아랫도리가 큰 것은 일종의 불구였다고. 그런 제도 속에서 피해를 봤던 변강쇠와 옹녀가 제도를 떠나서 살면서 사랑을 하는 거야. 마지막에 변강쇠가 장승을 뽑아서 불쏘시개로 만들곤 죽는데, 제도에 저항하는 개인은 죽는 거요. 나도향 원작의 <뽕>은 그것으로 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내가 나온 영화들은 잘 보면 우리 민족의 문화가 녹아든 영화들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에로영화와는 격이 다르다고.

3. “정치에서 죽고 싶지 않아, 예술에서 죽고 싶지”

아직도 반공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는 이대근은 인터뷰하는 도중 간간이 자신의 보수적인 사회관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그에게선 동시에 타고난 야인으로서의 자유로운 기질과 서민적인 풍모가 배어나온다. 이대근은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 모습을 그대로 품고 있는 듯도 보인다. 자식들에게 늘 엄격한 모습을 보이지만, 뒤돌아 흘린 눈물자국이 자식의 마음을 울리는. 사실, 배우를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는 그의 사상적 스펙트럼은 별 의미가 없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직도 닿지 못한 연기의 궁극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는 것이니까.

-비슷한 연배의 동료들께서 정치를 경험하셨습니다. 정치권에서 제의를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옛날엔 많았죠. 나는 정치, 아니 무엇을 하더라도 순교적 정신을 갖고 해야 한다고 봐. 거기서 순교할 정신이 없으면 그만두라 이거지. 그런데 나는 정치에서는 죽고 싶지 않아. 예술쪽에서 죽고 싶지. (웃음)

-CF 제의도 많았을 텐데 많이 안 나오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많이 들어와. 그런데 안 하는 이유가 있어. 난 가격을 세게 부르는데 그걸 안 주면 안 해요. 내 욕심이 많다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이 만들어줬어. 그런데 광고하는 상품과 나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나를 길러준 사람들과 함께 쓰려는 거야.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나는 시한부 인생인 셈이라고. 그러니까 연기인생에 관한 한 몇 작품을 더 할 수 있겠냐는 말이야. 한 작품 한 작품을 아주 소중하고 성실하게 할 생각만 품고 있어요. 배고프게 연극을 하다가 조금 더 주는 TV란 곳으로 밥을 해결하러 갔는데 이상하게 영화에서 나를 잡아당겼어. 고향인 연극으로 꼭 돌아오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갔는데, 나도 물질의 노예가 됐는지 몰라도 영화쪽에서 돈을 많이 주니까 여러분들이 보기에 소모품 같은 작품을 무지하게 했다고. 그런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소모품 같은 작품이든 어떤 작품이든 딱 하나만, 희미하게라도 ‘아, 이대근이가 어떤 영화의 어떤 컷에 나왔지’라고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난 만족할 거예요.

장소협찬: 그랜드 하얏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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