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비열한 남자에 대한 거친 동정, 조인성 주연의 <비열한 거리>
2006-06-07
글 : 강병진

말죽거리에서 자란 그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유하 감독의 2003년 작 <말죽거리 잔혹사>는 지식은 주입식으로, 폭력은 산교육으로 가르치던 ‘대한민국 학교’를 보여주었다. 힘으로 모든 걸 제압하려던 선도부장과 정정당당함을 잃고 비겁하게 상대의 뒤통수를 날리던 현수는 모두 프랑켄슈타인의 연구실에서 탄생한 괴물이었던 것이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신작인 <비열한 거리>는 “쌍절곤을 비겁하게 휘두르며 탄생한 조폭이 결국 어떻게 소비되고 기능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말죽거리’에서 잔혹하게 자란 괴물은 결국 ‘비열한 거리’로 흘러갔다.

서른이 코앞에 다가온 병두(조인성)는 조직의 보스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틈에서 기회 한번 제대로 잡지 못한 조직의 2인자다. 하는 일이라곤 고함치고 난장판을 벌여가며 떼인 돈을 받아주는 게 전부. 하지만 병든 어머니와 두 동생까지 책임져야 하는 그에게 남은 것은 쓰러져가는 철거촌 집 한채뿐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조직의 뒤를 봐주는 황 회장(천호진)은 미래를 보장할 테니 자신을 괴롭히는 부장검사를 처리해달라고 부탁한다. 고심 끝에 위험하지만 빠른 길을 선택한 그는 더 이상 가족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영화감독이 되어 자신을 찾아온 동창 민호(남궁민)와의 우정도, 첫사랑 현주(이보영)와의 사랑도 키워나가며 이제야 사는 것 같은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꿈 같은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병두는 제 편이라고 믿는 민호에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속내를 털어놓는다. 과연 이 비열한 거리에 병두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전작과 연대기를 형성하는 <비열한 거리>는 역시 조폭을 미화하는 조폭영화가 아니다. 감독은 조폭인 병두를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조직 내에선 위아래 치이는 여느 샐러리맨과 같은 고단한 인물로 그린다. 또 직접 조폭을 만나가며 취재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조폭을 소비하는 또 다른 축을 발견한 유하 감독은 ‘민호’를 통해 장르영화의 메타드라마적인 속성을 견지하는 한편, 자신에 대한 ‘반성’을 이루려 한다. 조폭이란 이미지에 매혹되어 그것을 욕망한 데 대한 반성이다. 조폭의 힘으로 자신의 안위를 살피는 ‘황 회장’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조폭의 은밀한 일화를 영화로 옮기려는 자신 역시 조폭을 착취하는 존재로 본 것이다.

하지만 조폭을 다룬 영화로서 액션은 매우 필연적인 부분일 터. <비열한 거리>의 액션은 화려함보다 처절함에 주력했다. <말죽거리 잔혹사>로 유하 감독과 호흡을 맞추었던 신재명 무술감독은 조폭을 미화하는 것도, 도덕적으로 심판하려는 것도 아니라는 감독의 의도에 부응하기 위해 그는 스탭들이 ‘날 액션’이라 부를 만큼 살기 위해 악을 쓰는 조폭들의 싸움을 그려냈다고. 이렇듯 여러모로 조폭영화의 낭만을 제거하려 한 <비열한 거리>는 조폭성에 대한 가장 경멸적인 시선이 담겨 있는 동시에 가장 동정어린 감정이 스민 영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인성

드라마 <봄날>의 정은(고현정)이 말했듯 그는 주로 ‘찌질이’를 연기했다. <봄날>의 은섭이나 <발리에서 생긴 일>의 재민, 그리고 <남남북녀>의 철수는 모두 부잣집 귀한 아들이면서 그 덕에 응석받이다. 하지만 그만큼 조인성이 연기한 캐릭터는 아이들처럼 솔직했다. 수정(하지원)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것이나, 정은에게 면도해달라고 투정부리는 모습들은 오히려 측은해 보였을 정도. 하다못해 <피아노>에서 그토록 원망하던 억관(조재현)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면서 드러나는 흔들리는 눈빛도 애처로웠다. <비열한 거리>의 병두에게서 느껴지는 날선 기운의 틈새에서 한숨이 보이는 것 또한 그런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인성이 ‘조폭’을 연기한다는 것은 의외의 소식이다. 큰 키에 긴 팔다리가 액션을 돋보이게 할 것 같기는 하지만, 조인성이 사미시칼를 들고 사람을 쑤시는 장면은 얼른 그려지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하 감독은 조인성의 순수하다 못해 측은한 눈빛의 한쪽에서 비열한 느낌을 감지했다. 그는 <말죽거리 잔혹사>를 촬영하던 도중 우연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재민이 수정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이던 장면을 보게 되었고, 차승재 대표에게 조인성을 추천했다. 조인성 역시 감독의 안목에 누가 될까 “실제 조폭처럼 늙어갔다”고 할 정도로 영화에 헌신적으로 임했다. 50회차가 넘는 영화를 촬영해본 적이 없던 그는 이 영화로 거의 두편에 해당하는 촬영량을 견뎌야 했고, 8시간에 걸쳐 용문신을 그려넣었는가 하면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전라도 사투리를 배워야 했다. “부끄럽지 않은 작품에 출연하게 되어서 고맙다”고 했던 권상우처럼 아마도 <비열한 거리> 역시 영화배우 조인성에겐 ‘찌질이’를 벗어나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폭의 상징, 문신

문신은 조폭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디테일이다. ‘차카게 살자’ 같은 코믹문신이 있는가 하면, 화려한 ‘꽃’ 문신도 있고 분위기 자체로 섬뜩한 ‘전갈’문신도 있다.

<비열한 거리>에서 병두의 온몸을 휘감은 문신은 바로 ‘용’. 용의 머리는 가슴에서 시작되고 등을 타고 넘어 엉덩이 꼬리뼈에 용의 꼬리는 안착한다. 실제 전문 타투이스트가 제작한 조인성의 용문신은 제작비만 1천만원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병두는 문신을 이용해 떼인 돈을 받으러 간 가정집에서 채무자를 협박하기 위해 겉옷을 벗고 용문신을 보여주는가 하면 출장 마사지사를 집 안으로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제작진의 조사에 따르면, 조폭들은 조직 내의 위치에 따라 문신의 크기가 다르다고 한다. 로타리파의 넘버 투 병두 역을 맡은 조인성을 당연히 등을 가득 채우고 가슴까지 넘어오는 큰 문신을 해야만 했다. 계속되는 촬영 때문에 3일 정도 유지되는 문신을 했기 때문에 촬영하는 동안 땀을 조금만 흘려도 문신이 지워져 새로 작업을 해야 해서 연기 하는 배우와 촬영 하는 스탭 모두에게 힘겨운 작업이었다. 한 편, 조인성 외에 로타리파 조직원들에게도 각기 개성있는 문신이 새겨졌다. 병두의 오른팔 종수(진구)는 물망초, 하마(박효준)에게는 하마를 그려넣으며 조연 캐릭터들에게 맞는 문신들을 하나하나 디자인하고 작업을 한 총비용은 무려 5천만원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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