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요정이 함께하는 슬픈 연민의 영화
아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부모가 살해당하고 집이 무너지고 친구가 사라지는데도 이유를 묻지 못한 채 그저 살아남아야만 한다. 옛날이야기로 시작되는 <판의 미로>는 잔인하고 거대한 세상의 한복판에 던져진 그 아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전쟁을 견디었는지 기억해주는 영화다. 겁먹지 않고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어린아이. 2001년 <악마의 등뼈>에서 죄없이 죽은 소년과 보호받지 못하는 고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는 그 영화의 “거울 이미지이자 쌍동이 같은” <판의 미로>에서도 차가운 돌바닥에 누운 소녀를 위해 서글픈 자장가를 불러준다.
<판의 미로>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39년이 배경이었던 <악마의 등뼈>와 비슷한 시대의 이야기다. 1944년 스페인, 몇몇 게릴라들은 내전이 끝났는데도 산속에 숨어 독재자 프랑코 정권에 저항하고 있다. 오펠리아는 어머니와 재혼한 비달 대위가 게릴라들과 싸우고 있는 캠프로 이사가지만, 새아버지는 어린 오펠리아를 무자비하게 대한다. 그날 밤 오펠리아는 방 안에 찾아든 요정을 따라 미로를 통과하고 지하로 내려가 판이라는 신비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판은 오펠리아가 오래전에 바깥 세계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채 죽어버린 지하세계 공주의 영혼이 다시 태어난 아이라고 일러준다. 그러나 오펠리아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파시즘은 조금씩 영혼을 잠식해간다”고 말했던 기예르모 델 토로는 오래된 요정 이야기처럼 보이는 오펠리아의 모험에 그 아이를 뒤흔드는 냉혹한 현실을 뒤섞었다. 오펠리아는 다정한 가정부 메르세데스와 마을 의사가 아무도 모르게 게릴라들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면서도 오펠리아는 비밀을 지키지만, 젊은 게릴라가 포로로 잡혀오면서, 메르세데스와 의사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어둡고 아름다운 영화
기예르모 델 토로가 첫 번째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는 <판의 미로>는 요정 이야기와 전쟁이라는 동떨어진 소재를 튼튼한 밧줄처럼 엮어냈다. “스페인 내전과 요정 이야기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요정 이야기에는 괴물이 있고, 정치가들 사이에는 전쟁이 있다.” 자기보다 커다란 두꺼비에게 다부지게 대드는 오펠리아는 반항과 자유를 용납하지 않는 파시스트인 비달 대위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다. 지하세계 공주는 지상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지만, 거친 바람을 만난 나뭇잎처럼 떨면서도, 오펠리아는 자신과 어린 동생을 지키고자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판의 미로>는 영웅담은 아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울었다는 기예르모 델 토로는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자신의 세계를 필사적으로 움켜쥐려는 오펠리아와 아무 의문도 없이 파시즘에 복종할 수는 없었던 게릴라들의 이야기를 애틋하게 전해준다. 죄없이 남은 핏자국을 애석해한다. 고아들을 위해 죽어서도 고아원을 떠나지 못하는 보호자를 보내주었던 <악마의 등뼈>가 그랬듯이, <판의 미로>는 무엇보다도 연민의 영화이다.
보고 있으면 울어버릴 수밖에 없는 <판의 미로>는 매우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아들을 잡아먹는 농업의 신을 그린 고야의 <새턴>을 보고 이목구비가 없는 식인괴물 ‘창백한 남자’를 창조했지만, 이미지의 근본이 되어준 이는 섬세한 윤곽과 신비로운 화풍의 요정 일러스트로 유명한 아서 래컴이었다고 말했다. 풍요의 뿔과 파괴의 눈동자를 지닌 고대의 목축신 판, 대지만큼이나 나이를 먹은 지하 미궁, 황금빛을 뿌리는 지하세계의 왕좌, 소라 껍데기처럼 이어진 계단을 밟고 오르면 나타나는, 푸르지만 빛바랜 풀밭. 프로덕션디자이너 윌리엄 스타우트는 바스크 시골의 건축물을 참고하여 <판의 미로>의 마을을 세웠지만 판타지에 속하는 모든 세트와 캐릭터는 온전한 상상만으로 창조했다. 컴퓨터그래픽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수공으로 완성한 <판의 미로>의 이미지는 한 사람만을 위해 공들여 그리고 묶은 그림책처럼 프레임마다 정성과 소망이 배어 있다.
<판의 미로>는 또한 매우 어둡다. 기예르모 델 토로는 “켈트 문화도 이 영화에 영향을 주었다. 앵글로 색슨 세계에 도달하기 전에 켈트 문화는 스페인 북부를 거쳐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신공양과 어둠과 함정으로 얼룩진 켈트의 신화는 판과 그가 머무는 미로에 선악을 판단하기 어려운 음울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누구도 진실과 거짓을 대신 판단해주지 않고 한번 내딛은 걸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미로에서, 오펠리아는 오직 혼자서 세 가지 과제를 완수하고 비달 대위의 폭력과 마주해야만 한다.
<미믹> <헬보이> 같은 블록버스터로 유명한 기예르모 델 토로는 “내가 칸에서 만난 최고의 영화”라는 평론가 앤드루 오헤어의 언급을 비롯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1개 부문도 수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판의 미로>는 하얀 잠옷을 입은 조그만 아이, 파시즘과 전쟁에 마음을 찢기면서도 필사적으로 용감해져야만 했던 오펠리아의 가엾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영화다. 이 영화는 트로피를 갖지 못했지만 어둠과 돌의 냉기에 얼어버린 어린 소녀의 손을 잡아준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인터뷰
“영화의 판타지는 현실과 대면하기 위한 것”
-<판의 미로>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보기 드문 판타지영화다. 어떻게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되었는가.
=이 영화는 처음부터 <악마의 등뼈>의 일부였다. <헬보이>를 마치고 나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했기 때문에 복잡한 작업이 되었다. 다행히 <판의 미로>는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크로노스> <악마의 등뼈>는 장르영화에 가까웠지만 <판의 미로>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장르가 뒤섞여 있고, 호러와 요정 이야기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판타지영화가 좀더 존중받는 영화들의 반대편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는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들은 판타지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싶다. F. W.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와 장 콕토의 <미녀와 야수>, 마리오 바바의 <악마의 가면>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영화들이다.-이 영화는 <악마의 등뼈>처럼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삼았다. 당신이 스페인 내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의 모국인 멕시코는 스페인 내전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나처럼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던 아이들 중에는 스페인 내전 이후 멕시코로 망명해온 가족의 아이들이 많았고, 내게 아버지와도 같았던 이도 스페인의 망명자였다. 스페인 내전은 1930년대에 일어났지만, 그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많은 가정이 아버지와 아들을 잃었고, 형제가 형제를 살해했다. 스페인 내전은 잔인한 방식으로 가족을 파괴했던 것이다.-고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는데.
=나는 전쟁과 그 색채, 전쟁이 주는 불안을 매우 싫어한다. 하지만 고야의 그림에 담겨 있는 색과 열정은 내게 영감을 주었다. 그의 그림을 되살리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창백한 남자’와 그의 방에 있는 그림을 보면 고야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고야가 아들에게 바친 벽화 <새턴>에서 영향을 받았다.-<판의 미로>는 세트와 소품 등을 모두 창조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내가 대략적으로 스케치한 이미지를 실제로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12주밖에 없었기 때문에 밤낮으로 일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찍으며 일주일에 3kg씩 빠졌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작년까지는 사람들이 나를 마이클 무어나 피터 잭슨으로 착각하곤 했으니까. (웃음) 아마도 관객은 <판의 미로>를 보며 제작비가 3천만, 4천만달러일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작비는 그 1/3에 불과하다.-오펠리아는 <악마의 등뼈>의 아이들처럼 잔인한 세계와 맞서 싸운다. 그 아이에 관한 당신의 느낌을 듣고 싶다.
=<판의 미로>에서 가장 용감한 인물은 오펠리아다. 아이가 되기 위해서는 매우 용감해야만 한다. 어른들은 언제나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펠리아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세계와 대면하기 위해 판타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