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비열한 거리>의 유하 감독 [3]
2006-06-20
글 : 이종도
사진 : 오계옥

3. 연기 조련사와 악인 사이에서

-배우들 연기가 매번 훌륭하다. 어떻게 했기에 그런가.
=첫 영화 망하고 반성한 게 영화 연출은 연기 연출이라는 거였다. 중국에선 ‘도연’이라고 하지 않나. 연기를 잘 지도하는 사람이 감독인 거다. 미장센은 두 번째고. 첫 작품 연기가 되게 어색했다. 좋은 배우를 썼는데 왜 그럴까 싶었다. 그 뒤로 시나리오 쓸 때부터 자연스레 연기를 생각하고 구성했다. 멋스러운 대사니 앵글이니 다 포기하게 되더라. 난 리얼리스트다. 상황을 진실에 육박하게 하려면 멋진 건 다 버려야 한다. 배우의 자연스러움이 첫 번째다. 현장에서 배우들이 자연스러운 동선을 만들 때까지 리허설을 한 다음에야 앵글을 짠다. 콘티에 배우를 우겨넣지 않는다. 그리고 배우들과 얘기를 많이 한다. 어떤 어투가 자연스러운지 부자연스러운지 간파한다. 그리고 배우의 발음과 구강구조에 맞는 대사를 준다. 영화는 결국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문학도 문체가 이상하면 안 읽히지 않나. 그래서 재촬영을 하기도 하는데, 남들은 이상하지 않다는데 나는 그런 부자연스러운 연기에 민감하다.

-배우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36시간 연속 촬영(<말죽거리…> 고고장 장면) 등으로 지옥으로 내몰거나 하여 배우들에게 정신을 차리게 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건 여배우에게도 통하지는 않을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배우들에게 많이 준다. 불만이 있겠지. 그래서 난 착한 감독이 아니다. (조)인성이도 스트레스받고 살 많이 빠졌다. 배우는 감독이랑 너무 ‘아삼육’(호흡이 잘 맞는다)이면 안 된다. 감독을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해야지 감정이 나온다. 여배우에게는 그러면 안 된다. 최대한 세심하게 연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준다. 인지상정이다. (웃음) 재촬영을 하는 방식으로 경각심을 주기도 하지만.

-다 큰 배우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 건가, 꺼리는 건가.
=송강호 같은 배우와 일하고 싶다. 그런 배우와 일하면 편할 거다. 완성된 배우보다 미완성의 배우를 데리고 하는 건 더 힘들다. 재미는 있다. 내 시가 키치적이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건데 내 영화에서도 아직 연기자로 완성되지 않은, 도정 위에 있는 배우를 데리고 하는 게 더 재미있다.

-어떻게 연기술을 익혔나. 어떻게 연기를 지도하나.
=대학 때 연극을 한편 했는데 무지하게 자괴감을 느꼈다. 김성수 감독이랑 함께한 영어 연극이다. 믹싱실에 가면 배우들이 나를 힘들어한다. 현장에서 OK를 낸 건데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다시 간다. 현장에서 안 되면 후시라도 해서 간다. 그런 뉘앙스가 쌓이면서 영화가 자연스러워진다. 난 시나리오를 쓰면서 내가 직접 시연을 하면서 한다. 입에 대사가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하며 말이다.

-어떤 연기가 좋은 연기라고 생각하나.
=열연이 좋은 연기라고 보지 않는다. 배우의 존재감없이 신을 완성할 수 있는, 튀지 않는, 벽돌 쌓이듯 쌓인 감정을 집적해 전달하는 연기가 좋은 연기다. 배우는 모든 신을 열연하려고 한다. 그런데 매신에 주제를 다 주면 안 되고 매신 연기를 다 살려서도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은 연기를 죽이고 살리고 강약 조절을 하는 조율사이자 지휘자다.

4. 중독과 반성 사이에서

-젊었을 때 대중문화 중독자인 당신이 요즘은 오히려 물러서 있거나 비껴서 있는 점이 흥미롭다.
=젊었을 때는 오디오, 재즈, 경마 등등에 중독되었는데 어느 순간 다 시들해지더라. 요즘은 영화 만드는 데 중독되어 있다. 술도 잘 안 먹고 잡기도 다 끊었다. 결혼을 해서 그런가. 애들도 둘 있고. 그렇다고 젊은 시절을 동경하진 않는다. 인간의 길을 가는 거다. 결혼이 사람을 경직되게 하는 게 있다. 영화는 시 쓰는 것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젊은 날 허송세월했다는 느낌이다.

-시가 가장 영화적인 장르일 수도 있다고 했지만, 영화는 많은 관객을 계속 근심하고 기다리고 배려해야 한다.
=스트레스가 많다. 시 쓰는 거야 눈치 안 보고, 모니터링을 안 해도 되고.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도 한마디씩 다 하고, 사공도 많고.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더 재미있기는 하지만.

-시인이었을 때 받던 평단의 대우와 영화감독일 때 평단의 대접이 다른 것에 대해 서운하지는 않나.
=실망스럽기도 하다. 나도 인간이니까. 문인에서 영화로 건너와서 방외인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 피해의식도 있지만 그건 도움이 안 된다. 시를 쓸 때도 상을 늦게 받았다. 주목받은 거에 비하면 늦게 받은 거다. 그런 게 호승심을 되레 주고 독려가 된다. 그런 걸 즐긴다. 어렸을 땐 속상했지만 지금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니 행복하다. 나는 내수용 감독이고 남들처럼 해외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덜하다. 해외에서 초청을 해도 나간 적이 없다. 칸에서 감독주간 초청을 할 테니 비디오테이프를 보내라 했는데 귀찮아서 안 줬다.

-재즈광이자 오디오광인데 영화에선 오히려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겸손하게 낮추고 있다. 끝에서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가 나오는 정도다.
=조폭영화니까 뽕짝 부르는 게 리얼리티다. 조인성이 랩이 아니라 <땡벌>을 부르는 게 자연스럽다. 데이비드 린치의 <블루 벨벳>에서 조폭들이 <인 드림스>를 부르는 게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럽지 않나.

-의리없는 비열한 거리를 말하면서, 친구인 김영하의 작품을 슬쩍 끼워넣는 것은, 자신은 의리를 아는 사람이라는 뜻일까.
=지인들도 챙겨줘야지. (웃음) 병두 동생 선옥의 대사에 ‘오빠가 돌아올 거야’란 게 있는데 그래서 쓴 거기도 하다.

-<어바웃 어 보이>에 보면 휴 그랜트가 집안 어른이 만든 캐럴송으로 평생 먹고사는 게 나온다. 시집들 인세로 나중에 자손들이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잊을 만하면 인세가 들어온다. 가장 많이 팔린 건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다. 16만부쯤 된다. <말죽거리…> 이후엔 <세운상가 키드의 생애>가 잘 팔리더라. 그외에는 안 나간다. 연출부 술 사줄 돈은 된다.

-<천일마화> 이후 시는 안 쓰나.
=써야 되는데, 그런데…. 문학상 시상식장에 참석하면 기분이 묘하더라. 주인의식이 있었는데 이젠 객 같더라. 장정일이 ‘시가 떠났다’고 그래서 ‘똥폼 부리냐’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내가 그렇더라. 시인은 자기가 버림받았다는, 핍박받는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관객과의 대화니 인터뷰니 하면 시가 안 나온다.

-시인이 먼저였나, 영화감독 꿈이 먼저였나.
=영화감독이 먼저 되고 싶었다. 천성이 게을러서 연출부 하기가 싫었는데 미적미적대다가 결국 연출부 안 하고 연출부터 했는데 그게 쥐약이었다. 현장에서 남들 찍는 거 철저히 시뮬레이션 해보지 않고 낙하산으로 간다는 게 얼마나 부조리한가.

-남들이 가지 말라는 곳을 가는, 그런 시인의 흥취가 아직 당신에게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건 이제 별로 없는 것 같다. 가끔 경마장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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