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평론가 황진미가 <구타유발자들>을 비판하는 이유
2006-06-21
글 : 황진미 (영화칼럼니스트)
구타유발자 앞에 피해자의 관점은 없다

폭력과 성(性)은 동물적 본능에서 비롯되거나 원초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역학관계를 전제로 발동하며, 지극히 정치적으로 작동한다. 즉 우발적인 (성)폭력에 의해 강자와 약자가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 이전에 강자와 약자가 존재하며, 강자는 (성)폭력을 통해 자신의 힘을 행사한다. <구타유발자들>은 이러한 폭력의 정치적 속성에 주목한다. 목소리 큰 교수가 손을 떨자 폭력이 시작되는 것처럼, 여자가 성폭행 도중 도망쳤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성폭행이 재기되는 것처럼, 영화는 약자임이 확인되는 대상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정치적 속성을 세밀히 그린다.

영화의 폭력에 대한 발언 내용은 분명하다. 첫째,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다. 봉연은 제가 당한 대로 소년에게 행하고, 맞던 소년은 더 큰 폭력을 시도한다. 둘째, 그래봤자 한번 약자는 영원한 약자이다. “때리던 놈은 경찰되었는데, 맞던 놈은 졸라 맞지?”처럼 피해자는 강자의 벽을 넘지 못하고, 구타를 ‘유발’하다가 더 때려달라 ‘간청’한다. 소년도 용써보지만 결정적인 순간 삽에 찍히고 총도 뺏긴다. 셋째, 폭력의 진앙지는 학교, 군대, 경찰 등 공식기구이다. 봉연은 학교 왕따였고, 오근은 군대가서 “고막 나가고 정신 나가서” “동작 그만!” 을 외친다. 결정적 무기인 총은 경찰 것이고, 가장 악질이던 ‘야만인’은 경찰이 되었다. 이상 세 가지 ‘폭력의 도그마’는 지당하며, 그다지 새로운 통찰도 아니다.

문제는 관점이다. ‘구타유발’이라… 군대에서 쓰여왔고, 최근 <싸움의 기술> 등에 카피로 이용될 만큼 왕따 문화가 만연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쓰이는 이 단어는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논리를 깔고 있다. 이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등한 권리를 갖지 않은 상황, 즉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를 그대로 추인하는 상황에 적용된다. 가정폭력, 성폭력 등 가해자와 피해자가 젠더라는 권력장치에 의해 강자와 약자로 나뉜 경우나 군대 하급자나 학교 왕따가 맞았을 때 약자를 보호할 당위보다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할 경우에 사용된다. 즉 이는 가해자의 말이다. 이 영화엔 과연 구타유발자가 아닌 폭력 피해자의 관점이 존재하는가?

영화 속 피해자는 성차에 의해 둘로 나뉜다. 첫째, 피해자 남성은 도그마에 따라 가해자가 되며, 권력장의 한 위계를 점한다. 형에게 당한 봉연은 동생을 가해하고, 선임에게 당한 오근은 돼지를 팬다. 양아치들은 “시키는 대로” 소년을 구타하고, 소년은 직접 복수하는 데 실패하고 형에게 이양된다. 교수는 무시하던 경찰에게 개무시당한다. 그들이 권력장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으며, 강자의 우연한 죽음을 꿈꿀 뿐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그 수동적 판타지를 전유한다.

둘째, 피해자 여성은 도그마와 무관하고, 권력장의 열외가 된다. 그녀는 ‘데이트 성폭력’의 피해자다. 그녀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성추행은 계속되고, 그녀는 도망치지만 꼼짝없이 되돌아온다. 노팬티에 동행이었음이 드러나자, 봉연은 강간을 명한다. 이미 누군가에게 성폭력의 피해자, 아니 강간‘유발’자였던 그녀에 대한 마땅한(?) 처분이다. 그녀가 차 안으로 끌려들어간 뒤의 상황은 지난한 결투와 목욕에 가려 포커스 아웃된다. 경찰에게 벤츠와 자신이 입은 피해를 고하면서 여자의 피해는 누락하는 교수처럼 영화는 그녀의 고초보다 벤츠의 훼손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마지막 훼손된 차의 비주얼은 적나라하지만, 그녀는 어떤 차를 타고 가는지도 불분명하다. 내내 피해자던 그녀의 마지막 총질은 헛방이 되고, 경찰은 “미친년”이라며 총을 뺏는다. 교수에겐 “마누라한테 전화할까?”라 협박하며 “아무 일도 없었음”을 당부하지만, 그녀는 아예 신고할 가능성마저 배제당한다. 마치 법적 주체도 아니요, 신고가 그녀에게 불리할 것임이 자명하다는 듯이. 영화는 그녀의 자력구제력은 물론 법적 호소력마저 완전히 무시한다.

폭력의 정치적 속성을 비판하려는 듯한 이 영화의 관점은 피해자를 구타유발자로 규정하는 가해자의 관점을 재현할 뿐, 피해자 입장은 철저히 무시한다. 비판의 대상과 거리두기에 실패하고 완전히 흡수되어 버리다니, 미워하다가 닮는다는 폭력의 심연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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