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노폴리> <럭키 넘버 슬레븐> 등 반전을 꽁꽁 감춘 영화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른바 ‘반전영화’는 장르로 인정받는 명칭이 아닌데도 인터넷상에서 꾸준히 인기 검색어에 오르고 있다. 사실 반전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기법이 아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물론이고, 스릴러나 공포·범죄영화 등의 장르에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관객의 예상을 뒤집는 결말을 위해 반전 기법이 흔히 쓰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반전이 마치 유행성출혈열처럼 퍼지게 된 이유는 뭘까?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 이후, 반전 강박증처럼 ‘반전, 반전’을 고집하게 된 여러분에게 반전의 비밀을 ‘노골적으로’ 공개하려 한다. 반전영화들이 마지막 반전을 위해 영화 내에 배치한 요소들을 거꾸로 짚어보면서 반전영화 만드는 법을 알아본다.
스포일러 경고: 다음 영화 가운데 한 작품이라도 보지 못한 게 있다면 이 글을 읽지 마시라. 반드시 후회한다.
<모노폴리> <식스 센스> <유주얼 서스펙트> <올드보이> <리크루트> <왓 라이즈 비니스> <텔미썸딩> <메멘토> <공공의 적> <마인드 헌터> <프라이멀 피어> <비독> <아이덴티티> <와일드 씽> <자카르타> <수어싸이드 킹> <데이비드 게일> <베이직> <쏘우> <디 아더스> <더 로드> <아이 인사이드> <파이트 클럽> <포가튼> <싸인> <지구를 지켜라!> <오픈 유어 아이즈> <바닐라 스카이> <멀홀랜드 드라이브> <범죄의 재구성> <뷰티풀 마인드> <H> <데이비드 게일> <더 게임> <스위밍 풀> <블랙아웃>
반전영화의 법칙 하나. 범인에서 시작하라
모든 영화는 인물에서 시작한다. 어떤 인물을 설정할지 결정하고 나면 그 이후의 플롯은 인물이 알아서 만들어간다는 것, 이것이 캐릭터 중심의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들의 굳건한 믿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물은 당연히 플롯의 ‘열쇠를 쥔 자’다. 열쇠를 쥔 자? <매트릭스>의 키 메이커를 말하냐고? 천만에. 흔히 반전영화에서 열쇠를 쥔 자란 ‘범인’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얼굴에 칼자국, 불룩 솟은 양팔에는 ‘一心’ 따위의 문신 등 한복판에는 철길처럼 길게 뻗은 수술 자국이 있는 사람일까? 관객은 순진하지 않다. “내가 범인이야” 할 바에야 광고를 하지, 왜 영화를 만들겠는가. 게다가 <식스 센스> 이후 눈이 부쩍 높아진 관객이라면? 지능적인 관객과의 두뇌 플레이에서 지기 싫다면 미리 아인슈타인 우유라도 마셔두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어떤 범인을 어떻게 지능적으로 숨길 것인가?
첫째, 범인들은 인륜을 따지지 않는다.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를 만든 직후, 한 인터뷰에서 “금지된 것을 시도하는 것은 예술가의 특권”이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예술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반전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예술가 편에 설 필요가 있다. 바로 ‘범인’이란 예술가다. 범인들로 하여금 금기에 도전하도록 만들자. 아내든 남편이든 상관없다. 관객이 범인 추론 과정에서 첫째로 배제하는 사람은 주인공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날 배신할 리가 없다고 믿을 테니까. 하지만 반전영화에서 한번쯤은 나오는 대사를 상기해보자. “가장 가까운 사람을 믿지 말라” 혹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어익후! 뻔하다 못해 뻔뻔스러운 말이지만, <리크루트>의 형과 <왓 라이즈 비니스>의 남편, <텔미썸딩>에서 희생자의 애인, <메멘토>에서 아내를 죽인 남편 등이 범인으로 밝혀지면서 이 대사들은 신빙성을 갖추게 된다. 또 만일 <공공의 적>을 반전이 있는 스릴러영화로 만들었다고 생각해보자. 살해당한 어머니가 범인의 손톱을 삼킨 부분이 앞에 나왔을 테고, 나중에 친아들이 살인자로 밝혀졌다면 관객은 당혹감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범인과 인륜은 천적 관계란 사실이다.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반전의 영향력은 커진다.
둘째, 범인은 언제나 의외의 인물이다. 관객은 뒤통수를 맞아야 쾌감을 느끼는 이상한 동물이다. 오해가 있을 듯하니 부연설명해보겠다. 세인들이 보호해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약한 사람, 예쁜 사람, 불쌍한 사람들이다.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의 소외계층,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 혹은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가 바로 범인의 첫째 조건이다. 너무 가혹한 기준 아니냐고? 착각 마시라. 소외된 사람들은 ‘현실’에서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관객이 영화에서 바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다 풀어낼 수 없는 욕망과 쾌감, 자유 등일 것이다. 관객은 이중 잣대를 갖고 있다. 그들은 영화가 현실적이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이기를 바란다.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자. 우리는 ‘현실’의 눈으로 로저 버밸 킨트(케빈 스페이시)의 다리를 본다. 온전하지 못한 다리와 수동적이고 약한 이미지 탓에 우리는 ‘당연히도’ 용의선상에서 그를 제외한다(물론 장애인은 범인이 아닐 거라는 예상이 맞을 때도 있다. <마인드 헌터>에서 시종일관 음울한 모습을 보이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빈스는 관객이 범인 0순위로 착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낚시꾼’이다). <프라이멀 피어>는 어떤가? 말더듬이에 언뜻 보면 미소년 같기도 한 19살의 애런(에드워드 노튼)의 착하고 소심해 보이는 성격만 보면 그는 ‘절대로’ 대주교의 손가락을 자르고 생식기와 눈알을 파낸 범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비독>에서 살인사건을 해결하려는 미소년(?) 기자 역시 관객의 눈썰미를 피해간다. 하지만 이들은 <아이덴티티>의 범인에 비하면 약과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하게 하는 이 영화에서 모텔의 인물들을 죽여나간 범인은 놀랍게도 다중인격자 속에 존재하는 천사 같은 외모의 어린 소년이란 인격이다.
셋째, 범인은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수법이다. <와일드 씽> <자카르타> <수어싸이드 킹> <데이비드 게일> <베이직>이 이에 해당한다. 범인의 존재가 양파껍질처럼 하나하나 벗겨지면서 그들이 모두 한 패거리란 점을 알게 되는 경우다.
넷째, 범인은 죽었을 수도 있다. <식스 센스>를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쏘우>를 예로 들어보자. 영화 초반부터 죽어 지하실에 있었던 시체가 마지막에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고 무릎을 탁 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반전영화의 법칙 둘. 최대한 헛다리를 많이 짚게 하라
반전(反轉)이란 뭔가? 부시의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것? 농담이다. 반전이란 뒤통수치기다. 관객은 왜 반전영화에 뒤통수를 맞을까? 시체나 어린이, 사랑하는 가족이 범인이라서? 단지 범인의 숨겨진 정체 때문만은 아니다. 황당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황당함조차 인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황당한 범인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이 바로 힌트다. 반전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페어플레이다. 힌트, 즉 관객에게 보이는 것이 많을수록 관객은 게임이 흥미롭다고 느끼게 된다. 힌트를 많이 주어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추리, 다시 말해 다양한 헛다리를 짚게 하는 것이 반전영화를 만드는 자의 의무(?)다.
그럼 어떻게 헛다리를 짚게 할 것인가? <쏘우>에서 왜 관객은 시체를 용의선상에서 배제할 수밖에 없는가? 그들이 범인이라고 의심하던 사람, 즉 병원 직원 제프가 딸과 어머니를 묶어놓고, 마치 범행을 즐기는 듯한 과정 등이 보여지면서 관객은 점점 영화 속 주인공들과 더불어 제프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역시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고든 박사의 가족을 납치하고 죽여야 하는 제프의 미션임이 드러나면서 관객은 ‘제대로 헛다리 짚었군’ 하고 깨닫게 된다. <아이덴티티>는 어떤가? 영화는 애초부터 에드(존 쿠색)가 수사관들 앞에서 진술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폭풍우 치는 밤, 외딴 모텔에서 10명의 사람들이 하나둘 살해된다. 사람들의 생일이 전부 같고, 이름에 도시 이름이 들어간다는 공통점, 여기에 밀실 같은 현장에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열쇠가 남는다는 점 등이 힌트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힌트들은 영화 중간에 에드가 죽어버리면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수사관들 앞에 앉아서 사건을 진술하는 에드는 누구란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때에야 비로소 영화는 진실을 조금 내비친다. 바로 범인이 다중인격자란 사실 말이다. 범인의 체포로 영화가 별 반전 없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이 들 때야 비로소 영화는 속내를 드러낸다.
<마인드 헌터>에서 범인은 멈춘 시계로 살인을 예고하고 피해자들은 각자의 특성대로 죽어간다. 늘 맨 앞에 섰던 제이디는 헬륨통의 액화질소가스에 몸이 부식돼 죽고, 커피 귀신인 바비는 커피를 마시고 죽고, 손재주가 좋았던 레이프는 물탱크의 손잡이를 돌리다가 죽는 식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바로 범인이 훈련생들을 잘 아는 내부인이란 사실일 것이다. 영화는 휠체어에 타고 다니며 늘 총기를 소지하는 빈스나 시뮬레이션을 기획한 해리스, 법무성 조사원인 게이브 등을 범인으로 몰고 가면서 반전을 꾀한다. 하지만 여러 번 헛다리를 짚은 뒤에야 루카스가 진범이란 것을 깨달을 계기가 올 것이다. 되짚어보면 루카스와 사라는 보트 폭발로 죽을 뻔한 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이는 다른 훈련생들이 한방에 죽어버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범인은 자신이 범인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언제나 피해자인 척 가장한다. 사라에게 연정을 품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루카스가 지나치게 사라를 감싸는 점, 레이프에게 물탱크 손잡이를 돌리라고 명령한 점, 총에 맞고도 방탄조끼를 입고 살아난 점 등은 분명 루카스가 범인임을 암시한 힌트들이다. 평소 공부 안 하는 것처럼 보이던 학생이 수능시험에서 ‘운 좋게도’ 대박 맞은 것을 종종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우연은 없다. 복선이 있고 암시가 있어야 마지막 반전에서 관객은 허를 찔리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이다. 학생이 수능 대박을 맞은 것은 남들이 안 보는 틈틈이 집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 외에는 별다른 비결이 없다는 얘기다. 흔히 놓치기 쉬운 작은 힌트들을 영화 곳곳에 얼마나 꼼꼼하게 배치하느냐가 반전영화 성공 여부를 가름하는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