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에 쓰인 반전의 기법 & 실패한 반전들 [2]
2006-06-28
글 : 권민성

반전영화의 법칙 셋. 다중반전보다는 간단명료한 반전을 노려라

<베이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이란 말은 다중반전의 탄생을 예고한 말이었을까? 연속적인 반전은 강하다. 사람들은 흔히 “한번 속지 두번 속나?” 한다. 진짜 그럴까? 영화에선 아니다. <와일드 씽>에서 주인공들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범인 역을 맡았을 때 관객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 한 패거리라는 것이 드러났을 때는 “젠장, 또 짜고 치는 고스톱이군” 하고 말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시 똑같은 형식으로 진범이 수지임이 드러나면서 관객은 허를 완전히 찔리게 된다. ‘설마, 이걸 또 뒤집겠어?’란 상식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먹기 좋은 떡이라도 자꾸 먹으면 질리고 끝내는 체하고 만다. <베이직>이 다중반전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뒤집고 또 뒤집고 완전히 빈대떡 부치는 수준이다. 그렇게 관객을 완전히 지치게 만든 뒤 보여준 결말은 생존자와 수사관, 교관,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까지 전부 한통속이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주제를 부각하기 위한 제대로 된 반전인지, 반전을 위한 반전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오히려 진정한 반전은 <식스 센스>처럼 간단명료해야 한다. 영화 종료 30분 전, 즉 결말의 초입에서 관객의 긴장감과 의문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뒤, 막판 5분을 남기고 간단히 시점을 뒤집어버린 것은 하나의 도박이었다. <식스 센스>는 딱 한번의 반전이 여러 번의 ‘삽질’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수작이다. <디 아더스> <더 로드> <아이 인사이드> 등 ‘유령’을 모티브로 한 아류작들이 있지만 <식스 센스>의 충격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시점 조작은 의외로 간단하다.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1인칭 주인공이 느끼는 흥분을 똑같이 느끼게 하면 된다. 즉, 관객=주인공으로 완전히 감정이입하게 만들어 주인공의 신념, 의지 등을 관객이 믿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내 눈엔 귀신이 보여요!”라고 끊임없이 칭얼거려주는 소년이 옆에 있어주면 더욱 좋다. 원래 도박은 옆에서 거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성공률이 높은 법이니까.

반전영화의 법칙 넷. 반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

<지구를 지켜라!>

반전영화 붐이 일면서 반전영화들 사이에서도 유행이 돼버린 소재들이 있다. 다중인격, 유령, 외계인, 현실과 가상현실, 정신분열증, 최면 등이 그것이다. <아이덴티티> <프라이멀 피어> <파이트 클럽> 등에서 범인이나 영화 제작자는 다중인격을 트릭으로 사용했다. <포가튼> <싸인>처럼 범인이 외계인이라는 설정의 영화가 있는가 하면, <지구를 지켜라!>처럼 정신이상자인 주인공의 입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외계인의 존재를 허무맹랑한 것이라 믿게 만든 다음, 주인공이 싸우는 적이 진짜 외계인이라는 반전으로 뒤통수를 때린 영화도 있다. <오픈 유어 아이즈>나 <바닐라 스카이> <멀홀랜드 드라이브>처럼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범죄의 재구성>의 쌍둥이, <뷰티풀 마인드>의 정신분열증과 <모노폴리>의 키덜트 주인공의 공상, <올드보이>와 <H>의 최면 등 반전의 소재는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반전강박증은 영화를 보는 맛을 단순화시킨다. 영화의 전개야 어찌 됐든 반전만 탁월하면 뭐든 용서된다는 안일한 사고방식도 영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한다. 반전을 위한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반전은 영화의 재미를 배가하는 부차적인 장치일 뿐, 영화의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유주얼 서스펙트>가 ‘명품’이 된 것은 의외의 범인, 많은 힌트, 간단명료한 반전, 그리고 레고처럼 꽉 짜인 플롯 등이 골고루 섞인 덕분이다. 이 영화에서 속이기 위한 반전은 딱 한번뿐이다. 킨트가 쿠얀 형사 앞에서 5명의 용의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진술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 가운데 킨트가 구체적으로 진술했던 유일한 사람은 키튼이다. 쿠얀 형사가 키튼에게 집요한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눈치챈 킨트가 교묘하게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운다. 쿠얀 형사의 심문에 수긍하듯 “키튼이 카이저 소제였다”고 시인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에서 킨트가 연기하는 사실을 눈치챌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결국 킨트가 절던 다리을 펴면서 경찰서를 나올 때쯤에야, 관객은 킨트가 왜 진술 중간중간에 “스코키에서 4중창을 했을 때…” 하면서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는지 눈치채게 된다.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재치와 두뇌로 혐의에서 벗어난 킨트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실패한 반전들_ 너희가 반전을 아느냐?

1. 주제를 헷갈리게 하는 반전 - <데이비드 게일>

기자인 빗시 블룸은 강간살해범으로 6년간 수감생활 끝에 사형집행을 앞둔 데이비드 게일을 구하려 애쓴다. 게일은 텍사스 오스틴대학의 철학과 교수이자 사형제도 폐지운동 단체인 데스워치(Death Watch)의 회원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제자 벨린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고 모든 지위와 명예를 하루아침에 박탈당한다. 그에게 남은 친구는 데스워치의 회원이자 동료 교수인 콘스탄스뿐. 하지만 백혈병을 앓던 그녀는 성폭행당한 뒤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다. 부검 결과 콘스탄스의 몸에서 게일의 정액이 검출되자 게일은 살해범으로 구속된다. 사형집행까지 3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빗시는 그의 무죄를 입증해내려 애쓴다. 콘스탄스의 최후가 찍힌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 빗시는 콘스탄스가 살해된 것이 아니라 자살한 것임을 알고 언론에 알리려 하지만, 게일은 결국 사형되고 만다. 여기까지는 ‘사형제도 반대’를 위해 애쓴 주인공의 좌절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맨 끝에 반전이 있다. 사형집행 뒤, 그녀에게 배달돼온 한 비디오테이프에는 콘스탄스의 자살현장에 함께 있던 게일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 내용은 이렇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던 콘스탄스와 게일이 사형제도 비판을 위해 각본을 짠 것이다. ‘무고한 사람도 죽을 수 있는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일념하에 살신성인한 셈. 그러나 타인의 자살을 방조해 사형제도의 폐지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인다.

2. 모든 게 짜여진 각본이다 - <더 게임>

니콜라스 밴 오튼은 성공적인 사업가다. 그는 돈과 자신의 사업에만 전념하는 냉철한 사람으로 이혼한 뒤 회사와 자신의 대저택만을 오가는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형 니콜라스의 생일에, 한참 동안 소식이 없었던 동생 콘래드가 갑자기 나타나 무료한 형에게 지루한 일상에서 탈출할 것을 권유하며 CRS(소비자 오락 서비스)라는 이상한 게임의 안내장을 주고 사라진다. 니콜라스는 자신에게 터지는 이상한 사건들에 당황하며 자신이 게임의 틀에 걸려들었음을 알아챈다.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게임의 전모에 대해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이 모든 게 동생이 형의 생일을 위해 짜놓은 각본이라는 결론을 알고 나면 허무해진다.

3. 씨만 뿌리고 거두지 않는 경우 - <스위밍 풀>

범죄 미스터리 작가 사라 모튼은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편집장의 별장을 찾는다. 수영장까지 딸려 있는 분위기 좋은 별장에서 글쓰기에 돌입하던 그녀. 그런데 어느 날 밤 편집장의 딸이라는 줄리가 별장에 나타난다. 선탠과 섹스를 즐기는 자유분방함에, 예쁘고 늘씬한 줄리를 보며 사라는 몹시 심란해진다. 하지만 곧 줄리에게 호기심이 생긴 그녀는 줄리의 일기장까지 훔쳐보며 줄리에 관한 글을 쓴다. 어느 날 밤 줄리는 별장으로 사라가 내심 좋아했던 프랭크란 남자를 데려온다. 그런데 다음날, 수영장에는 핏자국만 남아 있고 프랭크는 사라진다. 사라는 프랭크의 행적을 추적한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서 사라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줄리를 보게 되는데, 그녀는 치아교정기를 끼고 주근깨 가득한 모습이다. 결국 예쁘고 몸매 착한 줄리는 모두 사라의 환상임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영화는 무책임하게도 여기서 끝을 낸다. 왜 수영장에 핏자국이 있었는지, 줄리가 프랭크를 죽인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끝내 나오지 않는다.

4. 보인다 보여, 뻔한 반전 - <블랙아웃>

샌프란시스코 강력반계 최초로 여자경관이 된 제시카. 그녀는 뛰어난 실력을 지녔지만 여자란 이유로 남자 경찰들의 시샘을 산다. 사실 그녀는 어렸을 적 끔찍한 기억을 갖고 있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 당시 6살이었던 제시카는 아버지의 경찰 파트너였던 부장 존 밀스의 도움으로 경찰로 성장한 것. 존과 함께 그녀를 격려해주는 또 한 사람은 파트너인 마이크다. 어느 날 해변가에서 몸이 난도질당한 시체가 발견되자, 직감적으로 연쇄살인임을 알아챈 제시카. 그러나 피해자들은 모두 제시카가 하룻밤을 보낸 남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그녀는 큰 혼란에 빠진다. 네 번째 희생자가 시체로 발견된 날 제시카는 알리바이를 댈 수 없어 용의자로 지목된다. 결론적으로 범인은 친아버지 같았던 부장 존 밀스다. 제시카 주변에 있으면서 마이크를 범인으로 몰려고 했으며, 제시카의 과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 특히 제시카가 술 마실 때 오버랩되는 흑백장면을 보면 어린 시절 제시카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이자 연쇄살인마가 밀스임을 알아채기는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