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수퍼맨 리턴즈> 읽기 ① 신과 인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
2006-07-19
글 : 듀나 (영화평론가·SF소설가)
슈퍼맨을 슈퍼맨답게 만들다

브라이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는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기 가장 어려운 부류의 영화이다. 심지어 같은 원작을 다룬 다른 <슈퍼맨> 각색물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 시리즈는 미국 대중문화의 가장 빛나는 아이콘에 대한 진지한 예찬과 그 순진무구함과 어처구니없음에 대한 발랄한 농담이 반반씩 섞인 영화였다. <로이스와 클라크>은 거의 신격화된 만화 캐릭터들을 텔레비전 연속극의 공간으로 끌고 와 현실의 문제와 소프 오페라의 연애 공식 모두에 대입시킨 로맨틱코미디였다. <스몰빌>은 <슈퍼맨> 전설을 10대 소년의 성장기에 대입시킨 통과제의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들은 일단 방향만 잡으면 한없이 화제를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는 그 모든 새로운 해석들을 거부한다. 그의 <수퍼맨 리턴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고 단순하다. 싱어의 슈퍼맨은 소외된 10대 소년을 대변하지도 않고, 다정다감한 소프 오페라 로맨스의 주인공도 아니다. 그는 그냥 슈퍼맨이다. 빛의 속도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독특한 분자구조 때문에 엄청나게 힘이 세고 (안경잡이 신문기자 클라크 켄트라는 가짜 아이덴티티를 빌린 것만 빼면) 거짓말을 하지 않고 크립토나이트에 약한 쫄쫄이 복장의 덩치 큰 보이스카우트 말이다. 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 놀려대고 싶어 몸이 달 텐데, 싱어는 그냥 심각하다. 심지어 그는 그 말도 안 되는 유니폼을 놀려댈 생각도 하지 않는다. <엑스맨>에서 싱어가 오리지널 유니폼들을 작정하고 쓰레기통에 갖다버린 걸 기억하는가? 하지만 로고에 엠보싱을 주고 채도를 조금 낮춘 것만 빼면 <수퍼맨 리턴즈>의 유니폼은 전통에 충실하다. 덕분에 영화는 작정하고 피상적이 된다. <수퍼맨 리턴즈>에는 어떤 숨은 의미도 없다. 싱어가 슈퍼맨 캐릭터에 대한 관습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동성애 서브텍스트를 거부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정도야 만화 팬들과 퀴어 비평가들이 몇 십년 동안 해온 이야기라 특별히 신선할 것도, 튈 것도 없는 이야기이고 심지어 자기 자신도 게이이면서 싱어는 인터뷰를 통해 그 토론 자체를 잘라버린다. 그가 부정하는 것은 슈퍼맨이 게이라는 게 아니다. 그가 부정하려는 건 자신이 만든 영화와 주인공에게 어떤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싱어의 영화는 이야기와 내용이 피상적이고 일차원적일 때 가장 자기 역할을 분명히 한다.

이런 영화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평범한 청년인 스파이더맨/피터 파커나 온갖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신경증 환자인 배트맨/브루스 웨인은 별다른 어려움없이 현대적인 드라마의 소재가 된다. 하지만 슈퍼맨/클라크 켄트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타란티노가 언젠가 지적한 적 있지만, 이들 사이엔 분명한 구분이 있다.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은 피터 파커와 브루스 웨인의 분장이지만 슈퍼맨의 경우 분장은 슈퍼맨이 아닌 클라크 켄트이다. 작정하고 기존 설정을 파괴한 <로이스와 클라크>와 <스몰빌>도 이 공식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이 얄팍한 보이스카우트의 내면 세계에 어떻게 현대적인 갈등을 구겨넣을 것인가? 액션은 어떤가? 제대로 된 공식을 따른다면 슈퍼맨은 결코 이상적인 액션물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약점이 거의 없고 능력이 지나치게 거대하며 대적하는 악당은 그냥 보통 인간이다. 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크립토나이트라는 말도 안 되는 장애가 등장해 위기 상황을 연출해주긴 하지만 그래도 액션과 위기 상황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한다. 싱어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박진감 넘치는 액션장면은 슈퍼맨의 모험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슈퍼맨을 구출하는 보통 사람들의 액션이다. 그러나 싱어의 선택은 기본적으로 옳다. 넘쳐나는 능력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려면 <스파이더 맨> 영화를 만들면 된다. 우린 슈퍼맨에 공감할 필요도 없고 같은 눈높이에 놓고 그의 모험에 동참할 필요도 없다. 그는 조각상이고 롤모델이고 구세주이고 신이다. 슈퍼맨을 슈퍼맨답게 만들려면 구차하고 평범한 보통 인간의 이야기를 덧입히는 대신 그를 신으로 묘사해야 한다. 굳이 인간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슈퍼맨 대신 성모마리아이자 프시케인 로이스 레인과 부동산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프로메테우스인 렉스 루더에게 충분한 장면을 주면 된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성경과 그리스 신화가 그런 것처럼, <슈퍼맨 리턴즈>는 신과 인간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슈퍼맨의 갈등이 충분히 인간적이거나 입체적이지 않다고 투덜대는 것은 그가 슈퍼맨이라고 투덜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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