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레네는 <내 미국 삼촌>과 관련해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껏 영화를 만들며 매 단계 모든 장면에서 ‘이해 가능성’을 놓고 다짐해왔다”라고 했다(어렵기만 한 레네의 영화가 과연?). 그리고 한술 더 떠 “<내 미국 삼촌>은 아주 재미있는 코미디이며, 사람들이 분명 크게 웃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내 미국 삼촌>에는 그의 그런 노력이 많이 엿보인다. 레네는 생물학자 앙리 라보리가 쓴, 인간 행동에 관한 책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주제로 영화를 만들면서 아예 라보리 교수를 출연시켰다. 세 주인공이 등장해 그들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고통에 대해 스스로 발언할 기회를 주는 사이사이에 라보리 교수가 나와 ‘동물행동학’에 관한 강의를 들려준다. 동물행동학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레네의 행동이 그렇게 생뚱맞은 것도 아닌 것이, ‘뇌와 행동과 기억과 자유연상, 기억의 조합’은 레네가 그간 익숙하게 다뤄온 주제가 아니던가. 레네의 혁신적 면모는 영화의 진행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 속에 캐릭터가 등장·설명되는 게 아니라, 인물이 연기하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곁에서 혹은 밖에서 주제에 관한 이론과 실험이 따로 펼쳐지고 이야기를 돕는다. 그렇다고 영화가 세 인물로 대표되는 인간의 행동 유형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나 답을 제시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환경의 영향, 인간과 동물행동 유형의 차이점, 외부 환경에 반응하는 인간의 의지’ 등을 계속 질문하면서 영화를 보게 된다. 레네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한 행동유형인 것 같다. 제목에 쓰인 ‘내 미국 삼촌’은 실재 여부와 상관없이 ‘항상 기다리는, 그러나 결코 나타나는 법이 없는 존재’를 의미한다. 영화에서 세 주인공은 각자 분투하는 삶을 살지만 셋 모두 고통과 난관의 순간에 부닥친다. 그럴 때 ‘내 미국 삼촌’에 기대다 결국 낙심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어떤 삶과 행동을 유지해야 하는가? 레네가 질문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예전에 영어자막으로 본 <내 미국 삼촌>은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었다(프랑스어로 된 동물행동학 강의를 영어 번역으로 본다고 생각해보라). 한글자막이 입혀진 DVD가 반가운 건 그래서다. 아주 유익한 강의를 영화적 감흥과 함께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어찌 안 즐겁겠나. 그간 구할 수 있었던 미국 뉴요커 비디오판 DVD의 열악했던 화질과 비교했을 때, 이번에 출시된 한국판 DVD의 월등한 화질 또한 반가움을 더한다. 여기에 라보리 교수의 극중 강의(사진)를 영화의 부록으로 갈음한다면 별다른 부록이 지원되지 않는 점도 눈감고 넘어갈 만하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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