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4] - 양은용
2006-08-02
글 : 이영진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웃음으로 슬픔을, 눈물로 웃음을 전할 수 있을 때까지

<양아치어조> <내 청춘에게 고함>의 양은용

“제가 여기 껴도 되는 거예요?” 안부 묻고 수다 떠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새침한 새색시마냥 입술 물고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양은용이 조심스레 답한다. “다른 분들은 다 유명하시잖아요. 난 아직 몇편밖에 안 했는데….” ‘독립영화’ 배우라는 낙인(?)은 기꺼이 받겠으나, 독립영화 ‘배우’라는 명명은 아직 부담스럽다면서, 그는 쑥스러워한다. 1997년, SBS 공채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춘 지 10년째. 아직 사람들도 <비단향꽃무> 같은 미니시리즈나 <드라마시티> 같은 단막극에 자주 출연한 탤런트로 그를 기억한다. <양아치어조>를 시작으로 <팔월의 일요일들> <내부순환선> 그리고 최근 <내 청춘에게 고함>까지, 4편의 독립장편에 내리 출연한 독특한 배우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독립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양아치어조>를 만나기 전까지 양은용은 ‘독립영화’ 까막눈이었다. “믿을 만한 감독”이라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조범구 감독과의 첫 만남도 실은 “정중하게 출연제의를 거절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고. “무턱대고 안 하겠다고 잡아뗄 순 없잖아요.” 혹 떼러 갔다 복 받는 경우도 있는 법. 촬영 직전까지 현진 역을 구하지 못하고 있던 조범구 감독은 커피숍에서 시나리오나 한번 읽어보라고 제안했고, 마지못해 받아들였던 양은용은 말 못할 사연을 품은 ‘안쓰러운’ 여자 현진에게 빠져들었다. “직접 연기해보고 싶다”는 의욕 앞에서 턱없이 적은 출연료 100만원이나 여배우라면 다들 꺼리는 노출장면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첫발을 떼기란 쉽지 않았다. 당시 매니지먼트사에서는 “돈이 안 되는 독립영화에 출연해서 뭣할 거냐”고 만류했고, 양은용 또한 한때 “싸우기 싫고 고집 부리기 싫은 성격”을 핑계로 <양아치어조> 출연을 포기했다. “못하겠다고 한 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게 진짜 중요한 게 뭔가 하는.” 결국 그는 “군 홍보영화는 출연시키면서 저예산영화는 안 된다고 하는” 매니지먼트사와 결별했다. 그리고 고생길을 택했다. “첫 경험이요? 같이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죠. 단역들까지 모니터할 정도였으니까. 현진은 원래 설정으로는 좀 단순한 꽃뱀이었는데, 감독님이랑 함께 신비스러운 여자로 바꿨죠. 시간에 쫓기는 드라마나 단역으로 출연한 상업영화에서는 못해본 경험이었어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것이 양은용에게는 제2의 출발을 가능케 했을지도 모른다. “지독한 염세주의자였어요. 무기력, 무채색 청춘이었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이젠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죽기 전에 뭐 하나 의미있는 일 해보자고 한 게 연기였고. 그러니까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은 애초부터 없었어요. (웃음)” 연극 <배뱅이>를 본 뒤 “함께 만드는 창작”을 동경하게 됐고, 곧장 극단 산울림에 들어갔던 그는 ‘흘려보낸’ 지난 시간이 이제는 아쉽다. “산울림 뒤에 극단 유 생활도 오래하지 못했고, 서울예대 영화과에 들어갔지만 곧바로 공채가 되는 바람에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했고. 조금씩 쌓아두었으면 지금 어떨까 하는 후회가 들죠.”

<팔월의 일요일들>을 양은용이 아쉬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배우가 저기서는 알아서 채웠어야 하는구나 싶은 부분들이 뒤늦게 보이더라고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원했던 건 저게 아닐 텐데 싶고.”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 ‘초짜배우’라고 본인은 자책하지만, 독립영화인들의 반응은 다르다. “얼굴 예쁜 탤런트가 고민이 있겠냐는 편견이 있었죠. (웃음) 그런데 완전히 예술가 마인드예요. 게다가 깡다구도 대단해요. 하루는 스탭들도 내복 입고 벌벌 떠는데 밤샘 촬영 내내 감정 잡는다고 바깥에 서 있더라고요.”(조범구 감독) “무엇보다 성실하죠. 탤런트 맞아, 그랬으니까. 그 생활 오래하면 건방떨기 쉬운데.”(<팔월의 일요일들> 조영각 프로듀서)

뭔가 얻으려 하기보다 버리려고 했던 지난 삶의 그림자 때문일까. 영화 속에서도 매번 당하고만 살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여성으로 주로 나왔다. 영화 속 이미지와 반대로 칼을 숨긴 악녀 컨셉의 사진촬영을 요구하면서 이제는 다른 걸 좀 해보고 싶지 않으냐고 묻자,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은 건 없어요. 다만 몇 십년 연기했는데 기계적인 스킬만 늘어난 배우로 남고 싶진 않아요. 웃음으로 슬픔을 주고, 눈물로 웃음을 전달할 수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죠” 한다. 술 한잔 마시면 눈이 호기심 많은 카메라 렌즈가 되는데, 이 기이한 버릇을 바탕으로 써둔 시나리오를 언젠가 단편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그는 요가학원과 재즈댄스 강사 일을 겸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더라도 독립영화의 친구로 남겠다 했다.

필모그래피

장편- <내 청춘에게 고함> <사랑을 놓치다> <8월의 일요일들> <양아치어조> <케이티> <공공의 적> <재밌는 영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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