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동물 배우들의 촬영 뒷이야기 10 [1]
2006-08-16
글 : 신민경 (자유기고가)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개와 아이들, 보트와 관련한 영화는 절대 만들지 말라”고 했다. 그만큼 동물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찍기란 매혹적인 만큼,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동물 배우들은 더디게 반응할지언정, 반드시 날것 그대로의 연기로 보답해준다. 인간이 하면 가식적일 법한 연기도, 동물이 하면 엄청난 페이소스를 발휘했음을 몇몇 수작들이 증명해주지 않았던가. 다음은 동물 배우들과 인간이 훌륭한 파트너십을 맺은 사례 10가지다. 그 시작은 국내 최초로 말을 주연으로 한 <각설탕>이다!

1. <각설탕>의 말

“최대한 안전하고 편안하게, 말은 예민하니까요”

“최대한 주변환경에 적응시킬 것!” <각설탕>의 예민하고 겁 많은 주연배우를 위해 조련사들에게 떨어진 특명이다. 주인공은 바로 시은 역의 임수정과 투 톱으로 캐스팅된 말, 천둥이다. 사실 천둥이 역에는 5필의 말이 동원됐는데, 그 중 임수정과 감정연기를 주로 했던 말은 이제 3살이 된 ‘천둥’(으로 아예 이름이 굳어짐)이다. 원래 말은 자기 그림자에도 놀랄 정도로 두려움이 많은 동물. 그러니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면 더욱 예민해지는 게 당연했다. 때문에 경주마 전문가, 황경도 반장을 중심으로 조련사들은 반드시 촬영 전에 다음 촬영지로 말들을 데리고 가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처음에 낯설고 두려워하던 말들도 점점 익숙해지자 배우와 스탭들에게 애정(?)을 표시한답시고 아프게 깨물기도 했다고. 연기 지도에서는 왕도가 없었다. 부단한 반복학습만이 길이었다. 다만 동물 배우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동물 배우당 3명 이상의 조련사와 말 전문가, 말 전용 분장사, 수의사들을 배치해 만전에 기하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TIP | 천둥 역에 캐스팅된 말은 서러브레드(Thorough-bred)종으로, 밤색 털과 이마의 다이아몬드 문양이 특징이다. 제목 ‘각설탕’은 말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자, 시은과 천둥을 이어주는 매개체 같은 것.

2. <투 브라더스>의 호랑이

“될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면 다 된다”

인간이 보기에 호랑이는 99% 비슷해 보이겠지만, 장 자크 아노 감독은 1%의 차이점을 찾기 위해 40~50마리의 호랑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형제 호랑이를 연기할 배우 4마리와 18마리의 대역 등 총 22마리를 캐스팅했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은 배우가 스스로 캐릭터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메소드 연기법’을 고집했다. 예를 들어 하품하는 신을 찍기 위해 호랑이에게 우유를 먹인 뒤 잠들 때까지 기다렸고, 초콜릿 가루 냄새를 맡게 해 재채기를 유발했으며, 새끼 호랑이가 형제와 헤어진 슬픔으로 먹이를 거부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미리 충분히 먹이를 주는 치밀함이 있었다. 물론 호랑이가 워낙 감정이 풍부한 동물이기에 희로애락의 표정들을 끌어낼 수 있었지만 말이다. 동물을 대할 때는 신인배우나 아역배우를 대하듯 해야 한다는 장 자크 아노 감독. 그는 사실적인 연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호랑이가 감정에 빠질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참을 인(刃)자 셋이면 수작이 탄생한다’는 걸 증명한 셈.

TIP | 영화에서는 진한 형제애를 보여줬으나, 사실 호랑이는 아주 독립적인 동물이어서 형제끼리 함께 다니는 경우는 드물다. 새끼 호랑이들이 어미와 함께 생활하는 것도 생후 2년 동안만이다.

3. <에이트 빌로우>의 썰매개

“가르치고 또 가르쳐라, 석달이면 표정연기도 한다”

남극에 1년 이상 남겨져 기적적으로 생존한 8마리의 썰매개 이야기. 텅 빈 남극을 배경으로 한 단출한 스토리지만, 동물 배우들의 페이소스 묻어나는 표정연기 때문에 감동이 배가됐다. 여덟 개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제작진은 4마리씩 총 32마리의 연기자들을 모셨고(?), 촬영 석달 전부터 추위에 적응시키는 것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얼음 위를 걸어다니는 장면, 눈더미에 갇히는 장면 등 모든 신들은 100% 훈련을 통해 이끌어낸 것. 또 날아가는 새를 잡아먹는 장면은 장난감을 줄에 매달아 훈련시킨 결과이며, 바다표범을 공격하는 장면은 모형표범 위에 땅콩버터를 발라 리얼하게 연출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각 연기자들의 다채로운 이력들. 이미 스타가 되어 전용 담요를 덮어줘야만 움직이는 개가 있었는가 하면, 집 없는 개 신세에서 시작해 전문배우가 된 케이스도 있다. 현재 <에이트 빌로우>의 동물 연기자들은 동물쇼의 인기 출연자로, 유명 숙박업소의 썰매개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TIP | 썰매개, 허스키는 <에이트 빌로우>에 나온 것처럼 뛰어난 결속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리더가 필요하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시키면 죽을 듯이 신음소리를 내는 등 독립심이 강한 동물이기도 하다.

4. <꼬마 돼지 베이브>의 돼지

“돼지는 결코 불결하지 않다, 빨리 성장할 뿐”

돼지, 오리, 개, 양, 고양이 등 온갖 동물들이 모여 사랑하고 싸우며, 화해하는 곳. 꼬마 돼지 베이브가 사는 곳은 인간은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소우주, 동물농장이다. 1995년 영화계의 작은 수확, <꼬마 돼지 베이브>는 그야말로 동물 연기의 최고봉을 보여주었다 할 수 있는 작품. 아마 쉽게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970여 마리 동물 연기자와 60여 명의 조련사들로 북적이는 촬영장의 모습을. 특히 돼지는 워낙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항시 16~18주 사이의 돼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다 찍고 보니 베이브를 연기한 돼지는 무려 47마리에 이르렀다. 촬영 전 미국, 호주, 뉴질랜드 각지에서 온 조련사들은 1년 반 동안 동물들과 생활하면서, 특정 소리에 따라 각기 다른 연기를 펼치도록 훈련시켰다. 그 결과 컴퓨터그래픽이 동원되긴 했지만, 80% 이상이 실제 동물들의 연기로 채워지게 됐다. 베이브와 양치기 개 플라이의 키스 신 역시, 두 동물 연기자가 진심에서 우러나와 연기한 것이라고.

TIP | 어쩌다가 돼지가 지저분함의 상징으로 굳어졌을까? 돼지는 절대 불결한 동물이 아니다. 오히려 잠자리도 깨끗하고, 대소변도 일정한 장소에서 해결한다. 다만 인간이 만들어놓은 돼지우리가 더러워도, 워낙 탈없이 잘 지내는 무쇠체력 탓이다.

5. <아름다운 비행>의 기러기

“기러기는 의외로 빨리 자란다”

마천루 위를 지나가는 경비행기, 그리고 그 뒤를 따르던 한 무리의 철새들. 제목 그대로 ‘아름다운 비행’을 펼쳐놓은 이 영화에선, 안나 파킨과 16마리의 기러기들이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장엄한 광경 뒤에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니! 일단 기러기들의 성장속도가 너무 빨라 60여 마리 캐나다 기러기들이 교체되며 촬영됐고, 비행기 속도와 기러기들의 비행속도를 맞추기 위해 경비행기 중량을 150파운드로 낮춰야 했다. 게다가 기러기들은 비행기나 자동차 등 움직이는 것은 뭐든지 따라가려는 습성이 있어, 조련사들이 이를 통제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번은 새끼 기러기들이 변기 주변을 걸어다니는 장면을 찍는데, 기러기들이 변기 속 물을 보더니 본능적으로 뛰어들어 스탭들을 한바탕 웃게 만들기도 했다. <아름다운 비행>은 100% 실제 기러기들을 데리고 촬영했으나, 안전상의 이유로 컷을 나눠 찍거나 컴퓨터그래픽으로 합성하는 일이 많았다.

TIP | 영화에 등장하는 ‘캐나다 기러기’는 날씨가 추워지면 미국의 남부지역으로 이동해 겨울을 보낸다. 이들은 이동시 항상 V자 형태로 나는 습성이 있다. 선두에 있는 기러기의 날갯짓이 기류 상승 효과를 내, 뒤따라오는 기러기들이 좀더 쉽게 날 수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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