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엔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도쿄 좀비>는 도쿄가 죽음의 도시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죽은 사람들을 마구 버린 쓰레기 하치장은 ‘검은 후지산’이라고 불리는데, 주인공 후지오와 미츠오는 실수로 죽인 사장 시체를 버리러 그곳에 갔다가 되살아난 시체들, 즉 좀비들의 습격을 받는다. 공포영화에 걸맞은 설정은, 그러나 사토 사키치 감독의 연출 아래 촌철살인 코미디로 거듭난다. 사토 사키치 감독은 <도쿄 좀비>를 들고 제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찾았다. 야쿠자 같은 요란한 셔츠 차림과 수줍게 웃는 표정의 기묘한 균형은 <도쿄 좀비>가 가진 공포와 유머의 균형감각 바로 그것이었다.
-<도쿄 좀비>로 데뷔했지만 이력이 특이하다. <이치 더 킬러>의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잡지 <키네마준보>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자나 평론가는 아니었고 무서운 아저씨 사장님의 비서였다. 해외에 일본영화를 소개하는 일을 했던 3~4년간은 일본에서 제작되는 모든 영화를 보기도 했다. 영화 관련 워크숍 진행을 도울 때는 일본 전역에서 오는 몇 백편의 시나리오를 읽어야 했다. 30대가 돼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내가 쓴 <금발의 초원>이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되어 뒤에 이누도 잇신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TV드라마도 몇편 썼고, <이치 더 킬러> <극도공포대극장 우두>와 같은 액션극의 시나리오도 썼다.
-<킬 빌> <이치 더 킬러>를 비롯한 몇몇 작품에서는 배우로도 활동했는데.
=시나리오작가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볼링대회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상하게 생겼다. 그런데 시나리오도 쓴다며?” 하는 이유로 매니지먼트사에 발탁되었다. <킬 빌> 캐스팅은 우연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이치 더 킬러>를 좋아해서 시나리오작가인 나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타란티노 감독이 날 보자마자 “찰리 브라운 닮았다. 미국 사람이라면 당신을 보고 찰리 브라운을 떠올릴 것이다”라며 영화에 출연하라고 했다.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라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나중에 정말 연락이 와서 찰리 브라운 역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킬 빌>은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였지만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다.
-<도쿄 좀비>에는 코믹한 요소와 잔혹한 요소가 섞여 있어, 머리로는 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웃게 되는 장면이 꽤 있다. 웃음과 공포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싶었나.
=웃음에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지함이 근본에 깔린 웃음이라는 게 중요하다. 살다 보면 잔혹하거나 슬픈 상황에서도 웃음이 터지는 일을 겪게 되는데, 왜 나는 그런 순간에 웃게 되는가 자문해보게 된다. 살아가는 데 있어 잔혹함, 어긋남을 끄집어내고 싶다. 깔끔 떠는 것은 제치는 거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관객이 따라오건 안 따라오건 극단까지 가는 영화를 만드는데, 나는 그렇지는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건 해피엔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들에서처럼 환상이건 실재건 결국은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