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 속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캐릭터들 [1]
2006-09-06
글 : 이종도

어찌나 힘이 장사인지 부두에서 소금을 한번에 네 부대나 지게로 나르는 동구(류덕환). 어쩐 일인지 밤에 팬티를 빨면서 서럽게 울고 있다. 꿈을 꾸었는데 “드디어 우리 동구가 해냈구나. 고맙다. 정말 고마워”라고 일어 선생님(초난강)이 칭찬을 해줬던 것이다. 칭찬의 내용은 뭐고, 왜 동구는 일어나 팬티를 빨고 있을까. 그것도 서럽게 울면서. <천하장사 마돈나>는 신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을 말하는 영화다.

<다세포 소녀>에도 동구 못지않은 꿈을 꾸는 소년/소녀가 있다. 두눈박이가 그 주인공인데, 어찌된 일인지 차분하게 생긴 소녀가 마루에서 오빠를 마구 쥐어패고 있다. 오빠 외눈박이가 욕을 한 것도 아니다. “이것이 현실이다”라고 한마디했을 뿐이다. 스커트 속에 숨길 수 없는 그 무엇을 발견하고 두눈박이는 자신의 현실을 아프게 꼬집은 오빠 외눈박이를 두들겨팬 것이다. 스커트를 입어도 남자 화장실에 가서 서서 일을 봐야 하는 두눈박이의 아픔은 동구의 아픔 못지않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어린 고등학생인데도 벌써 적금을 부어 미래의 그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한다. 수술이 완벽하게 신의 뜻을 거슬러 그들이 새롭게 여자로 태어날 수 있을까. 목에 있는 아담의 사과도 없애주고, 여자 같지 않은 넓은 발도 날씬하게 해줄까? <헤드윅>의 헤드윅처럼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적어도 오랫동안 굳게 자물쇠로 잠겼던 꿈이 봉인을 풀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동구와 두눈박이는 행복하다.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의 소망, 또는 남자의 몸에 갇힌 여자를 풀어내려는 것이 그들의 꿈이다. <천하장사 마돈나>는 <헤드윅>처럼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의 꿈을 그린 영화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여자가 되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씨름부로 뛰어든 동구(류덕환)의 꿈은 낯설지만 소중하다. 일어 선생님(초난강)에게 품은 연모의 정은 어떻게 될까. 씨름대회에서 장학금은 탈 수 있을까. 동구의 많은 것이 궁금해지는데, 동구가 자신과 가족을 소개하겠다고 나섰다. 핏줄 가족이 아닌 영화 가족이다. 동구 못지않은 개성으로 보건대, <로얄 테넌바움>의 괴짜 천재 가족을 능가하는 면면이다.

“붉은 치파오 입은 제 모습 장만옥 같나요? 호호호호~”

<천하장사 마돈나>의 오동구

안녕. 난 동구예요. 오동구. 나이는 열일곱. 제 인사하는 포즈가 좀 이상하다구요. 살짝 무릎을 구부리고 고개를 옆으로 젓는다구요, 무릎은 붙였는데 다리가 한참 떨어져 있다구요? 계집애같이? 음, 마치 절 괴롭히는 우리반 쌍둥이처럼 말씀하시는군요. 걔네는 나더러 왜 여자 화장실에서 옷 안 갈아입느냐고 괴롭히거나, 내 등에 음탕한 낙서를 붙이는 애들이죠. 샅바를 잡으면서 새끼손가락 올리는 게 너무 앙증맞다구요? 저 씨름하는 거 보셨나봐요. 가슴 젖판에 붙인 둘리 밴드랑, 제 몸에서 나는 이상한 좋은 냄새랑 다 어색하다구요? 이거 비밀인데, 제 몸에 체취가 있어요. 그런데 왜 남 옷 갈아입는 걸 유심히 지켜보세요. 부끄럽게. 자 다 입었어요. 붉은 치파오 입은 모습이 장만옥 같지 않아요? 너무 꽉 끼어서 터질 것 같다구요. 쉿. 아니 그렇지 않아도 종만이한테 혼나요. 종만이네 중국집 종업원 누나가 퇴근하는 틈을 타 몰래 입은 거거든요. 아, 웬 치파오냐구요. 여기는 인천하고도 차이나타운이거든요. 항구와 공장으로 가득한 노동의 도시.

<천하장사 마돈나>

노동 하니까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나요. 포크레인 기사인 아버지가 근처에 오면 벌써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가로등은 다 일시에 꺼져버리고 땅이 진동하면서 갈라지죠. 저는 화들짝 놀라 장을 본 콩나물이며 대파 따위가 든 시장 가방을 놓치곤 해요. 정말 공포영화가 따로 없답니다. 아시안게임 때 동메달을 딴 복서 출신이라 저랑 동생 동철이랑 맞기 시작하면 정신없어요.

종만이 덕분에 씨름부에 들어가면 장학금 500만원을 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그때부터 씨름반에 들어갔어요. 내 사랑 일어 선생님(초난강)도 그걸 아시더라구요. 언젠가 그분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그날까지, 선생님이 약혼자랑 결혼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늘 선생님 꿈을 꾸거든요. 선생님은 조금 어색해서 더욱 포근하고 섹시한 발음으로 “오동그(오동구), 전화하께(전화할게)”라고 말씀하세요.

이건 제 보물서랍이에요. 털이 북실한 형광 핑크 깔개, 액세서리, 화장품, 때가 꼬질꼬질 묻었지만 예쁜 마론 인형, 우울할 때마다 바르는 립스틱! 또 제가 꽃단장을 끝내는 작업을 할 때 필수품인 족집게. 이거 뭐냐믄요, 제 입술 위에, 마돈나랑 똑같은 위치에 점이 있거든요. 여기서 한 가닥씩 꼭 털이 나요. 나자마자 뽑아줘야 해요. 화장하는 거 좋아하는 거 보면 저는 헤드윅 이모(<헤드윅>), 엄마 옷 즐겨 입는 걸 보면 마이클(<빌리 엘리어트>), 돈 모아서 수술비를 마련하는 꼼꼼함에서는 두눈박이(<다세포 소녀>)를 닮았어요. 이들이 바로 제 패밀리예요. 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꿈으로 이어진 내 가족을 소개합니다. 만나보실래요?

트랜스젠더 시늉만 내는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동구의 변신담처럼 남성의 여성으로의 변신은 코미디 장르의 단골 소재. AFI(American Film Institute)가 뽑은 최고의 코미디영화 가운데 1위와 2위는 여장남자들이 주인공인 <뜨거운 것이 좋아>와 <투씨>다. 로빈 윌리엄스가 여자 가정부로 나오는 <미세스 다웃파이어>도 67위에 올라 있는 등 성전환 코미디가 많다. <미스터 주부퀴즈왕>이 이런 계열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성전환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이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건 올바른 정치적 태도와 거리가 멀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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