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가이드]
현실과 가상의 줄타기, <욕망>
2006-09-14
글 : 남다은 (영화평론가)

새로운 소재를 찾아다니던 사진작가 토머스(데이비드 헤밍스)는 텅 빈 공원을 배회하는 남녀를 발견한다. 그는 주저없이 이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하고, 이를 알아차린 여자(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사진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며 그의 집까지 쫓아온다. 토머스는 여자의 불안한 반응에 호기심을 느끼며, 그녀에게 다른 필름을 건네주고 현상을 시작한다. 그런데 확대된 여러 장의 사진들 속에는 비밀이 숨어 있다. 영화를 보는 관객도, 사진을 찍는 토마스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무언가가 확대된 사진 속에 얼룩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간 시공간에 분명 존재했으나, 아무도 보지 못했던 그것은 남자의 시체다. 토마스는 다시 공원으로 돌아가나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러한 줄거리로만 본다면, <욕망>(Blow Up)은 마치 한편의 추리물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관심은 그 시체를 둘러싼 사건의 전말이나 추리 대상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있지 않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본심은 영화의 끝에 드러나는데, 이 마지막 장면들은 갑작스러운 마임, 구경꾼으로 물러난 주인공의 위치, 비현실적인 얼굴들 등 때문에 그 자체로는 모호하지만, 영화 전반의 모호함에 대해 탁월한 설명을 제시해준다. 얼굴에 흰 칠을 하고 말 대신 몸짓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테니스장에 들어선다. 그들 중 두명이 공도 없이 테니스를 친다. 토머스는 테니스장 밖에서, 즉 게임 외부에서 관찰자가 된다. 그러나 공이 테니스장 밖으로 나가자(정확히 말하면, 마임을 하는 두 선수가 공이 날아간 시늉을 하자) 토머스는 잠시 멈칫한다. 결국 그는 실체없는 공을 주워 테니스장 안으로 높게 던진다. 바로 이 순간, 즉, 안토니오니가 토머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공을 집어들게 만든 순간, 토머스는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공은 보이지 않지만 공의 소리는 들린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무엇이 사건을 지배한다. 이 영화에서 시체 역시 이야기를 풀어가는 열쇠가 아니라, 이야기를 지탱해주지만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존재다.

그러므로 <욕망>은 실체를 추적해가는 영화가 아니라 현존과 부재,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영화다. 여기에는 관객의 눈이 포착할 수 없는 실재의 얼룩을 보여주는 동시에 관객의 시선을 능가함으로써 그 시선을 조정하는 또 다른 시선이 있다. 그것은 낯선 남녀를 따라가는 토머스의 (카메라) 시선이자 토머스의 시선을 관찰하는 안토니오니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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