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송해성, 공지영의 대담 [1]
2006-09-25
글 : 이성욱 (<팝툰> 편집장)
글 : 최하나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이름난 시나리오 작가가 감독 데뷔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걸, 재능있는 감독의 공급이 수요를 못 맞춘 탓이라고만 봐야 할까. 글로 완성해낸 1차 창작이 영상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긴장감의 산물일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감독이 각본을 어떻게 독해하느냐에 따라 시나리오의 영상화는 얼마든지 새 길을 갈 수 있다. 그 길찾기에서 작가와 감독은 행복한 동행이 되기도 하지만, 서로의 해석과 감성을 둘러싸고 등을 돌리기도 한다. 하물며 소설이 원작인 경우에는 불화의 가능성이 더욱 짙어진다. ‘이야기’라는 공통분모를 빼면 소설과 영화는 닮은 것보다 다른 점이 훨씬 많지 않은가. 소설가 공지영과 감독 송해성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같은 제목과 같은 이야기를 놓고 끝까지 행복한 동행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감독은 소설에 담긴 무수한 재료를 놓고 짙은 고민에 빠졌지만, 원작을 크게 흔들지 않고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작가는 이 점을 기뻐했고, 상찬했다. 실은 그들은 강동원, 이나영이라는 두 젊은 배우를 통해 자기들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게 됐다는 점을 다른 그 무엇보다 반가워했다. 창작의 곡절이나 고뇌를 앞다퉈 내밀기보다 두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끊을 듯 끊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소설가 공지영과 감독 송해성이 꺼내든 이야기들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송해성: 어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일반시사 끝나고 Q&A 시간이 있었어요. 어떤 친구가 “책에서 빠진 장면이 굉장히 많은데 왜 그랬냐”고 묻더라고요. 그 친구가 소설책을 굉장히 감명 깊게 본 거예요. 그래서 영화가 만들어지면 이런 게 있겠지 하고 상상한 이미지들이 있었는데 영화가 그것과 일치하지 않으니까 그런 질문을 한 거죠. 그래서 그냥 “안 찍었습니다” 했어요. (웃음) 기본적으로 영화는 영화만이 갖고 있는 것들이 있고, 소설은 소설로서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있는 거니까요. 사실 제가 이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이 공 작가님이 책을 주면서 소설을 어떻게 영화화해도 상관없으니까 편한 대로 만들라고 하셨던 거였어요.

공지영: 저도 작가 입장에서 영화를 어떻게 봤냐고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근데 사실 세계의 어떤 작품이건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가 허술해 보여요. 왜냐하면 활자는 디테일을 꼼꼼히 담아낼 수 있는데, 영화는 뭉텅뭉텅 이미지로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거꾸로 영화를 보고 원작을 보면 굉장히 지루해요. 이미지를 보며 감정을 이미 느꼈는데 활자로 일일이 그걸 묘사하고 있으니까 뻔해 보이는 거죠. 장르별 특색이라고 봐야죠. 이번에 송 감독님이 그런 부담을 많이 안으신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어요.

송해성: 부담, 있었죠. (웃음)

공지영: 영화 보면서 소설과 영화가 이렇게 다르구나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대사였어요. 인물들의 대사를 우리가 일상에서 주고받는 막말로 다 바꾸셨는데, 정말 애쓰셨다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제 소설의 말투를 그대로 쓰면 완전히 닭살이 돋았을 거예요. (웃음)

송해성: <파이란>은 10페이지도 채 안 되는 단편소설을 영화로 재창조했었죠. 하지만 <우리들의…>는 장편이고, 그 안에서 보여주었던 수많은 내용들이 있잖아요. 시나리오 작업부터가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어제 그 친구가 했던 질문처럼, 어떤 장면들은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감독 입장에서는 이 장면이 없어도 됨에도 불구하고 자꾸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거든요.

단순한 사형제 폐지가 아닌 소통 이야기

송해성: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영화 보면서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이 블루노트예요. 블루노트가 윤수라는 아이의 성장사를 보여주면서 심금을 울리잖아요. 찍고 나서 보니까 정말 슬퍼요. 근데 편집을 하는데, 이야기가 주인공에게 넘어가질 않는 거예요. 윤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 워낙 센 것들이라. 빨리 주인공들이 주도권을 갖고 뭔가를 해야 하는데 이야기가 애들에게 계속 머무는 거예요. 그래서 편집을 많이 했죠.

공지영

공지영: 영화 속에 아이들 장면이 세번 정도 나오는데, 다 잘 표현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화장실에서 은수가 피 흘리는 장면이 좋더라고요. 영화적으로 표현이 잘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윤수 엄마 대사도 좋았고.

송해성: 제가 <역도산>을 마치고 나서 참 분노가 많았어요. 정말 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영화라는 게 결국 감독이 대중에게 화해하자고, 소통하자고 손을 내미는 건데, 관객은 내가 손만 내밀면 거부를 하더라고요. 한마디로 영화들이 흥행이 안 됐다는 이야기죠. (웃음) <역도산>은 제가 찍으면서 컷마다 안 울었던 적이 없었어요. 가슴속에서 막 진동이 왔어요. 그래서 잘될 거라고 확신했었어요. 근데 이게 잘 안 됐죠. 나 욕하는 건 상관없는데, 같이 하는 배우의 진심까지 평가절하되는 게 속이 상하고 분노가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분노가 많았을 때, 내가 누구와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할 때, 이 작품을 발견하게 됐어요.

공지영: 어떤 인터뷰에서 왜 송 감독에게 이 작품을 줬냐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저는 소설을 쓸 때 항상 커뮤니케이션이 사람을 얼마나 구원할 수 있냐에 중점을 둬요. 감독님이 이 소설을 단순히 사형제 폐지 소설이라 하지 않고, “소통의 이야기, 우리가 진심으로 소통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라 말해서 원작자의 진심을 알아봤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원래 감독님과 인연이 있어요. 91년에 <숲속의 방>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 때, 송 감독님이 같은 영화사의 조감독이셨어요. 그때 술자리에서 한번 만나 오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굉장히 인상이 깊더라고요. 나중에 좋은 감독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혼자 이름과 얼굴 기억해뒀었어요.

송해성: <역도산> 때 메인 카피가 “인생은 승부다”였는데, <우리들의…>가 저에게는 어떤 승부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쉽지 않았죠. 이번 영화가 제가 지금까지 찍은 영화 중에 클로즈업이 가장 많아요. 원래 뒷모습을 찍는 걸 더 좋아하는데, 이렇게 잘생긴 남자, 여자를 데리고 뒷모습을 찍으면 남들이 나를 때릴 것 같은 거야. (웃음) 그래서 앞모습을 찍었는데, 그러다보니까 TV드라마를 찍는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괴로웠어요. 또 이나영이나 강동원이 대사를 많이 해본 적이 없는 배우들이어서 굉장히 고민스러웠어요. 완성된 영화를 봐도 애들이 굉장히 느려요. 말만 좀 빨리 했어도 빠진 신이 몇개는 더 들어갔을 거예요. (웃음) 본인들도 굉장히 아쉬워하더라고요.

한 인간의 죽음이 다른 인간을 구원하는 시간

공지영: 제가 요즘도 한달에 한번씩 사형수들을 찾아가는데, 영화 촬영 다 끝나고 이나영씨랑 강동원씨가 찾아온다고 연락이 왔어요. 영화 찍기 전에 사형수들 만나서 두어번 같이 밥을 먹었는데, 그때 약속을 했대요. 영화 끝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사실 촬영 전에는 취재를 위해 왔어야 했지만, 끝나고 나서는 꼭 올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근데 두 사람이 정말 오겠다고 해서 속으로 젊은 배우들인데 정말 좋은 사람들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마지막날 촬영현장에 갔었거든요. 사형장면 촬영하는 날이었는데, 감독님이 절 보자마자 “왜 이렇게 소설을 어렵게 써서 나를 애먹이냐” 하셨어요.

송해성: 사실 마지막 장면이 너무 어려웠어요. 3일 동안 찍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 죽이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 정말 죽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84년인가 86년에 명보극장에서 <파리 텍사스>를 봤는데, 예전부터 샘 셰퍼드를 정말 좋아했었어요. 영화 대사들을 다 외우고 다닐 정도였죠. <파리 텍사스>에서 해리 딘 스탠튼와 나스타샤 킨스키의 얼굴이 중첩되면서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딱 덮었을 때,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장면을 어떻게든 영화에 써봐야겠다 생각하면서 찍었는데 힘들더라고요. 원작과도 많이 달라졌고. 원작에서는 윤수가 죽는 것을 못 보잖아요. 하지만 두 사람을 어떻게든 만나게 하고 싶었어요.

공지영: 원작과 다르긴 하지만 대세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영화적 장치니까.

송해성: 근데 이나영이 감정이 너무 격해져서 윤수를 아예 못 쳐다보더라고요.

공지영: 엄청 울더라 진짜.

송해성

송해성: 그래서 계속 이야기를 했어요. 쳐다봐야 한다. 너는 끝까지 쳐다봐야 얘를 기억 속에 남기고 그게 너의 행복한 시간이다. 한 인간의 죽음이 또 다른 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시간을 네가 눈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영화 속에서 잘 표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참 힘들게 찍었어요.

공지영: 저는 강동원씨 연기는 걱정 안 했어요. 윤수 캐릭터 자체가 크게 복잡하지는 않잖아요. 이나영씨는 만나고 나서 걱정을 했어요. 문유정이라는 캐릭터는 산전수전 다 겪어서 곰삭은 캐릭터라 굉장히 성숙해야 하는데, 이나영씨는 너무 예쁘고 유리 같은 거예요. 근데 영화 보고 나서는 정말 이나영씨가 120%를 해줬다고 생각했어요. 원작의 문유정이 곰삭고 인생을 통찰하는 사람이었다면, 영화 속 유정은 유리같이 깨지기 쉬운 날카로움들이 있으면서 동시에 맑기도 하고, 그 모든 것을 젊음으로 표현해줬어요. 저로서도 신선한 유정이를 영화에서 발견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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